#Prologue : 사고
사고였다.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단 한 번도 예상한 적이 없다. 당연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흔하디 흔한 일인데,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인데 나뿐만 아니라 가족 어느 누구도 아버지가 그렇게 쓰러질 줄은 몰랐다.
2023년 4월 29일 토요일
주말 장사를 하러 가는 길은 언제나 차가 막힌다. 조금 일찍 나서면 될 것을 집에서 늦장을 부리다가 나왔다. 마음이 급했다. 날이 본격적으로 풀렸다. 게다가 5월 1일(근로자의 날)이 월요일이라 연휴주간이다.
바쁠 게 뻔했다. 좋은 매출이 예상되는 건 당연히 기쁘지만 긴장도 된다. 몸이 그만큼 피곤하기 때문.
성산대교로 이어지는 서부간선도로는 꽉 막혀있었다. 나와 아내는 아무 말도 없었다. 가게로 가는 길이 그리 기쁘지 않았다. 장사와 맞지 않는 우리가 식당을 시작하게 되면서 행복하다고 느낀 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오픈하자마자 코로나가 터지면서 더 그랬다. 몸은 힘들고 재료비와 월세를 내고 나면 남는 것도 없었다. 햇살이 유난히 좋았던 어떤 날, 가게로 가면서 둘이 펑펑 울었다. 그 작은 공간으로 가는 게 미치도록 지겨운 날이었다. 신호에 걸려 차를 멈췄는데 비현실적으로 파란 하늘을 바라보다가 덜컥 눈물이 쏟아졌다. 아내는 놀라지도 않았고 묻지도 않았다. 그녀도 울고 있었다. 울고 나니 조금 시원했다. 그리고 둘은 단단해졌고.
평소와 다르게 음악도 틀지 않은 차 안의 고요함을 깬 건 아버지의 전화였다.
“어디야?”
단 한마디로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술에 취했다. 스피커로 받았던 전화를 얼른 일반통화로 변경해 받았다. 낮 3시부터 취해있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아내와 함께 듣고 싶진 않았다.
“가게 가는 길이죠. 어디겠어요.”
“응. 그래. 오늘 아빠는 여기 도봉산에 행사가 있어서 왔어. 날씨가 좋다. 야. “
“엄마는요?”
“엄마는 집에 있지.”
“얼른 들어가세요. 지금도 취하셨네요.”
“야. 아부지가 한잔 먹은 게 넌 그렇게 싫냐?”
“……”
“가게는 어떠냐?”
“뭐 그렇죠. 뭐.”
“그걸 니가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니가 거기서 그런 장사를 할 때가 아닌데. 한창 일할 나이에 그게 뭐냐.”
“들어가세요. 저 운전 중이라 끊어요.”
뚝.
전화를 끊었다. 아버지는 뭐라고 하는 중이었다. 상관없었다. 길게 통화해 봤자 화만 난다. 다시 한번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받지 않았다. ‘건방지게 얘기 중에 전화를 끊냐느니, 버릇이 없다느니’ 뭐라고 할 게 뻔하다. 모든 걸 지켜 본, 모든 걸 다 알겠다는 아내는 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살피더니 얘기했다.
“전화 계속 오는 데 안 받아도 돼?”
“응. 술 취하셨어. 그냥 안 받을래.”
가게로 가는 길에 더 마음이 무거워졌다. 오픈 시간 40분을 앞두고 가게에 도착했다. 평소보다 많이 늦었다. 준비할 게 많았다. 실내가 조금 더운 듯하여 올 들어 처음으로 에어컨을 틀었다.
아내가 홀 청소를 하는 동안 나는 재료 손질을 했다. 평일과 다르게 손님이 몰리는 주말에는 많이 나가는 메뉴를 반조리 상태로 준비해 둔다. 그래야 늦지 않게 나갈 수 있다. 에어컨을 틀었는데도 땀이 줄줄 흘렀다. 누구를 탓하랴. 늦게 준비한 내 잘못이지. 다음 주부터는 시간이 남더라도 2시간 일찍 오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대충 준비가 다 끝나고 나니 허기가 찾아왔다. 전화가 울렸다. 주말에는 오픈 시간 즈음에 예약 문의 전화가 오곤 한다.
아버지였다. 받지 않았다. 이제 막 차분해진 마음을 다시 어지럽히고 싶지 않았다.
다시 한번 전화가 왔다. 아버지였다. 받지 않았다. 1분 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받았다.
“여기 저는 119 대원인데요. 아버지가 쓰러지셔서 와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
상황파악이 한 번에 되지 않았다. ‘아버지가 쓰러졌다’ 그 단순한 말을 나는 한 번에 이해하지 못했다.
“네?”
“아버지가 쓰러지셔서 지금 병원으로 후송을 해야 해요. 최대한 빨리 한일병원으로 오세요. “
“제가 아들인데요. 아버지가 쓰러지셨다고요? 지금 정신이 없으신가요?”
“네. 지금 의식이 없으세요. 한일병원 응급실로 오세요.”
전화를 끊었다. 옆에 있던 아내는 ‘왜?‘만 반복하며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놀라지 말고 들어. 아빠가 쓰러졌데. 지금 빨리 한일병원으로 가야 해. 빨리 택시 타고 가. 나도 지금 가게 문 닫고 갈 거야. 엄마가 먼저 가 있어. “
엄마에게 최대한 말을 전하고 나니 마음이 순식간에 조급해졌다. 어쩌지 어쩌지.
정신을 못 차리고 발만 동동 굴렀다. 어떻게 해야 할지 뭘 해야 할지 몰랐다. 나를 잠시 멈춘 건 아내였다.
“우리 정신 차리자. 일단 정리할 거 정리하고 빨리 가야지. 냉장고에 넣어야 하는 거부터 빨리 정리하자.”
아내의 말에 나는 정신을 차렸다. 그래 빨리 가는 게 먼저다. 반 조리해 둔 음식은 모두 버렸다. 재료는 냉장고에 모두 던져두었다. 다녀와서 다시 정리를 하면 되니까 냉동이든 냉장이든 마구잡이로 던졌다.
택시를 타고 가는 게 좋겠다는 아내의 말이 있었지만 나는 직접 운전을 했다. 병원에 가서도 급하게 차를 쓸 일이 있을 거란 생각이었다.
평소보다 더 차분하게 운전하려 노력했다. 사고라도 나면 더 미쳐버릴 노릇이다.
병원에는 이미 엄마가 도착해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응급실 안으로 맘대로 들어갈 수 없었다. 망할 놈의 코로나.
엄마는 응급실 안에 있는 아버지를 보고 나오는 길이었다. 의식은 있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환자당 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보호자 목걸이를 엄마에게 건네받아 이번엔 내가 들어갔다. 아버지가 누워있었다. 얼굴 곳곳에 피가 굳어 있었다. 귀에도 피가 흘렀다. 종종 아버지가 발버둥을 쳤다. 병원만 아니었으면, 흐르고 있는 피만 아니었으면 그냥 취해서 몸을 못 가누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아버지 등을 반복해서 쓸어내리며 작게 말했다.
“아버지. 여기 병원이에요. 움직이면 안 돼요. 한숨 자면 돼요.”
등을 쓰다듬어 주자 아버지는 말귀를 알아들었는지 발버둥을 치는 걸 멈췄다. 크게 다친 것 같진 않았다. 팔다리도 다 움직였고 눈동자도 괜찮았다. 숨도 괜찮았고. 다만 아직 술이 깨지 않았을 뿐이다. 다행이었다. 응급실에 하루 정도만 있으면서 술만 깨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다.
응급실 의사가 보호자를 불렀다. 엄마와 난 응급실에 있는 오래된 컴퓨터 화면을 의사와 함께 봤다.
“CT사진을 함께 보면서 말씀드릴게요. 여기 흰색 보이시죠? 이게 다 피에요. 여기 보이는 실금은 뇌를 감싸고 있는 뼈에 금이 가 있는 겁니다. “
”그런데 이렇게 왜 이렇게 귀에서 피가 계속 나올까요? “
엄마가 의사의 말을 끊고 자꾸 질문을 했다. 나는 엄마의 손을 지긋이 잡았다. 의사의 말을 끝까지 듣자는 표현이었다.
“귀에서 피나는 건 일단 뇌의 피가 흐르는 거고요. 자. 어쨌든 이 정도 실금은 자연스럽게 붙을 때까지 기다리면 됩니다. 문제는 피가 너무 많다는 거예요. 피가 녹으면서 뇌신경을 얼마나 건드리느냐의 문제인데요. 그건 지금 판단이 어렵습니다. 일단 다른 병원으로 이송하셔야 할 것 같아요. 여기서는 더 이상의 치료는 현재 어렵습니다. “
병원을 옮겨야 한다고 하니 생각보다 더 심각한 상황인 것 같았다. 술만 깨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머리에 피가 가득 차 있었다.
엠블런스가 왔다. 아버지는 누운 채로 버둥거렸다. 목적지는 경희대병원 응급실이었다. 엄마가 엠블런스를 함께 탔다. 아내와 난 차를 타고 따라갔다.
경희대병원에 도착하니 아버지는 입원 수속을 기다리며 한편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여전히 버둥거렸다. 어딘가 아주 불편한 느낌이었다. 아버지를 깨우고 싶어 조심스럽게 손을 만지며 불렀다.
“아부지. 아부지. 여기 병원이야. 좀 일어나봐. 괜찮아. 정신 좀 차려봐요.”
감고 있던 눈이 잠시 떠졌지만 이내 눈이 다시 감겼다. 응급실에 있는 의사가 와서 아버지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강하게 치면서 아버지를 깨웠다.
“환자분. 눈 좀 떠보세요. 여기요. 들리세요.”
저 정도로 강하게 자극을 줘도 되는구나라는 생각에 나도 아버지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몇 번씩 내리쳤다.
“아부지. 아부지. 일어나 봐. 일어나 봐. “
아버지는 의식이 없는 채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담당 간호사가 나와서 설명했다.
“중환자실은 면회가 안 되고요. 환자분 상황은 3일에 한 번 정도 담당의가 전화드릴 거예요. 궁금하셔서 전화를 주셔도 저희가 일일이 다 응대해 드릴 수 없고요. 특별히 전화가 가지 않으면 환자의 상황이 나쁘지 않다는 거니 중간에 전화가 가지 않는 게 어쩌면 좋은 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간호사는 차분하고 친절하게 얘기했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요는 그랬다.
-코로나 때문에 면회 불가
-3일에 한 번씩 담당의사가 전화할 것
-보호자가 궁금해서 전화해도 우린 대응 안 할 것
-환자상태가 응급상태면 당연히 전화함
-전화가 오지 않으면 환자가 응급이 아니라는 것. 그러니 전화 안 오는 게 좋은 것
전화가 오지 않으면 차라리 좋은 것. 전화가 오지 않으면 차라리 좋은 것. 전화가 오지 않으면 차라리 좋은 것.
나는 그 말이 계속 맘에 걸렸다. 이상한 말이었다. 묻고 따지지도 말고 그냥 시키는대로 하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병원과 환자. 아주 자연스럽게 갑과 을이 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