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끼니
5월 7일 일요일
집 청소를 했다.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더니 집이 엉망이었다. 아내는 밀린 빨래를 하고 나는 청소기를 돌렸다. 며칠만 신경을 안 써도 집은 금세 티가 난다.
화장실 바닥에도 유독 때가 많이 껴보였다. 락스를 바닥 줄눈에 뿌려 불린 후, 벅벅 닦아냈다. 금세 깨끗해졌다.
청소와 빨래를 마친 후, 아내와 침대에 누웠다. 조금 더웠다. 올 들어 처음으로 에어컨을 켰다. 은은한 에어컨 바람이 안방에 퍼졌다. 새로 갈아 낀 침대커버도 까슬까슬해서 기분이 좋았다. 잠이 왔다. 기분 좋은 졸음이었다. 아내는 잠이 들었고 나는 잠들지 못했다. 그대로 자면 되는데 이상한 죄책감이 들었다.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제 본가로 가서 하룻밤을 잔 모양. 아버지가 사고나기 며칠전에 코로나에 이미 걸려 격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동생은 사고 이후 엄마와 처음 만난 것이다.
“나가서 먹으려고 하다가 엄마가 냉장고에 재료 많다고 밥 해 먹자고 해서 그냥 집에서 먹었어.”
“잘했다. 엄마 뭐라도 좀 하는 게 좋은 거 같아. 너 가져갈 반찬도 좀 해달라고 해. “
“반찬 먹지도 않는데 뭐.”
“아니 반찬이 중요한 게 아니고 뭐라도 움직이는 일이 있어야 한다는 거야.”
“응. 알았어.”
동생이 오니 엄마가 냉장고를 뒤지면서 반찬이라도 한 것 같았다. 지난 일주일간 엄마에게 뭘 먹었냐고 물으면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제대로 차려 먹은 적이 없으니…..
우리 가족에게 끼니는 중요했다. 아버지는 먹고 싶은 게 참 많은 사람이었고 정말 다양하게 집에서 많은 메뉴를 만들어 먹었다. 그런 아버지와 살면서 엄마는 자연스럽게 끼니 챙기는 게 중요한 사람이 되었다. 간단히 먹는다 해도 간단히가 아니었다. 늘 4~5개의 반찬이 있었고 김치도 2~3종류가 상에 올랐다. 국은 기본이었고.
나는 그게 너무 당연한 거라 다른 집도 그렇게 차려 먹는 줄 알았다. 크면서 친구들하고 얘기하면서 밥을 차려주지 않는 엄마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좀 충격적이기도 했다.
“엄마가 밥을 안 차려 준다고?”
진심으로 놀라서 그렇게 물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끼니가 중요한 엄마는 막상 차려줄 사람이 없으니 끼니가 중요하지 않게 됐다. 김치도 없이 라면으로 때우고 빵으로 때우고 떡으로 때우고….
그렇게 엄마는 끼니를 때웠다. 나는 엄마가 씩씩할 줄 알았다. 감정의 변화가 많은 아버지에 비해 엄마는 늘 중심을 지킨 사람이었으니깐. 몇 번의 죽음의 문턱을 다녀온 아버지를 옆에서 보면서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생활력을 발휘한 사람이었으니깐.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엄마는 간호사에게서 기저귀가 필요하다고 전화가 왔는데 어디서 사는 게 좋겠느냐는 것까지 나에게 물었다. 사사건건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해서 묻는 통에 나는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래도 엄마에게 전화 좀 그만하라고 말하지 않은 건. 엄마가 나에게 뭘 묻기 위해서가 아니고 잠시라도 통화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도 불안했을 것이다.
나는 그 불안의 깊이를 짐작조차 못하겠다. 40년을 넘게 산 배우자가 생사를 넘나드는 것을 전화를 통해서만 소식을 들을 수 있다는 게 어떤 기분일까?
피곤한지 뒤척이면서 자는 아내의 얼굴을 보다가 머리맡에 있는 티슈 몇 장을 조용히 뽑았다.
5월 8일 월요일
어버이날이었다. 엄마와 통화를 하면서 일체 언급을 피했다. 말은 아껴야 할 때가 있다. 오늘이 그랬다.
오전 9시에 담당의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제 호흡기를 잠시 떼고 관찰했었는데 호흡이 불안해서 다시 호흡기를 달았다고 했다.
“선생님 지금 상황은 정확히 어떻고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호흡기를 뗐을 때, 환자분을 깨우면 이름도 말씀하시고 사지반응도 있으세요. 그런데 다시 호흡기를 달았기 때문에 다시 의식은 희미해지실 거고요. 일전에 말씀드렸다시피 호흡기를 달면 졸음이 오는 약을 함께 투여해요. 안 그러면 환자분이 고통스러워해서 다른 부분에 영향이 있을 수도 있죠. 뇌출혈은 현재 더 발생하지도 그렇다고 녹지도 않은 상태예요. 잠시 소강상태죠. 일반적으로 뇌출혈 양이 더 늘지 않으면 뇌에 차 있는 피가 조금씩 녹는 게 보이기 시작해요. 이게 하루아침에 피가 빠지고 이런 게 아니니까 시간을 두고 좀 지켜봐야 해요. 지금은 일단 폐렴이 좋아져야 하는 게 최우선입니다. “
아버지의 폐가 잘 버텨줄까? 지난 몇 년간, 아버지는 조금만 걸어도 숨차했다. 집 앞 중랑천에서 매일 조금씩 걸으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 함께 걸을 땐 숨을 거칠 게 몰아 쉬면서도 부축을 해주려고 하면 나를 멀리 떼어내고 혼자서 걸었다.
“내가 바보같이 왜 이럴까? 내가 바보같이 왜 이럴까?”
자기에게 말하는 듯, 누구에게 들으라는 듯 아버지는 그 말을 버릇처럼 반복했다.
집 앞에 마실 나가는 것도 힘들어했던 사람이 친구들과 술을 마시러 갈 땐 2시간 거리도 왔다 갔다 하는 걸 보며 나는 아버지가 선택적으로 아픈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숨이 차다’는 말을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것 같다.
어떤 병이 발생하던 노인들은 결국 폐렴으로 돌아가신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버지의 폐가 버텨주길 바랄 뿐이다.
엄마에겐 긍정적인 말만 전달했다.
“의사한테 전화 왔었는데 지금 호흡기를 다시 달긴 했다. 호흡이 좋아지면 다시 뗄 거라고 하더라고. 그런데 주말에 호흡기를 하루 뗐었는데 이름도 얘기하고 몸도 반응한다더라고. 그러니깐 호흡만 안정을 찾으면 괜찮다고 하네. 엄마! 조금씩 좋아지고 있는 거 같아. 그러니깐 엄마도 엄마를 잘 챙기고 있어. 아버지 일반실로 올라가면 엄마가 잘 챙겨줘야 하니까. 그전에 엄마가 컨디션 조절을 잘하고 있어야 해. 밥도 잘 챙겨 먹고 말이야.”
“그래. 그래도 이제 좋은 말도 들리네. 그런데 가게가 걱정이야. 안 그래도 손님 없는데 점심 장사까지 안 하면 어떡하니? “
엄마의 말 그대로였다. 엄마와 함께 운영을 하던 식당은 매출이 반 이상 줄었다. 점심은 밥집으로 엄마가 주방을 책임지고 저녁은 술집으로 내가 주방을 책임지고 있어서 저녁은 운영할 수 있었지만 점심은 엄마가 없이는 아예 운영 자체가 불가능했다.
반쪽짜리 영업을 하고 있었지만 이익은커녕 가겟세도 매달 걱정을 해야 할 상황에 처해졌지만 나는 그 부분은 크게 걱정이 되지 않았다.
아버지만 깨어나면 모든 게 정상화될 것이니 빨리 아버지가 깨어나길 바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