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기도삽관
5월 9일 화요일
기분 탓일까?
아버지 사고 이후, 이상하게 손님이 없다.
아내와 함께 가게 운영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앞으로 목돈이 많이 들것이다. 병원비, 간병비만 해도 벌써 걱정부터 앞섰다.
계속 불면증에 시달리는 것 같아 아내와 저녁을 먹으면서 소주 한잔을 했다. 아버지 사고 이후 처음으로 먹는 술이었다.
5월 10일 수요일
담당의에게서 전화가 오는 날. 별일이 없으면 월수금 오전 중에 전화가 온다. 오전 중에 전화가 오지 않아 기다리다가 답답해서 산책을 했다. 막내 이모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는 의사가 있어 물어봤는데 의사에게 자꾸 보채듯이 얘기하는 게 별로 도움도 안 될뿐더러 부담을 일으킬 수 있으니 자꾸 전화하는 것은 좋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을 전했다. 사실 안 그래도 그러려고 하는 중이었다. 이미 나는 병원의 패턴에 적응되고 있었다.
오후 1시가 조금 넘어 담당의에게서 전화가 왔다. 언제나 그렇듯 특별한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말투다. 오디오북을 읽어주는 사람이 너무 감정적이면 듣기가 불편하듯 의사가 너무 감정적으로 설명을 해줘도 불편할 것 같긴 하다. 그냥 팩트만 빠르게 전달받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 의사의 사무적인 말투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폐렴 증세가 조금씩 호전되고 있습니다. 뇌출혈 후에 흔히 몸에 경련 증상이 오는데 환자분도 경련이 와서 뇌파 검사를 시행했어요. 결과는 큰 이상이 없었습니다. 의식은 말을 하면 고개 끄덕이는 정도고요. 호흡이 잘 유지되고 지금처럼 폐렴 증상이 꾸준히 좋아지면 일반 병실로 올라가실 수 있습니다. 지금은 다시 호흡기 뗐고요. 코에 튜브만 끼고 있습니다. 목에서 호흡기 떼면서 마취성 약은 사용을 중단했기 때문에 환자 의식은 지금보다는 더 선명해질 수 있어요."
"그럼 호흡만 괜찮아지면 이제 괜찮아질까요?"
"네. 염증이 잡히고 호흡만 괜찮아지면 좋아질 거예요. 다만 뇌출혈이 다발성으로 심한 편이라 나중에 회복된다 하더라도 입원 전처럼 정상적인 생활은 힘들 거예요. 현재로서는 언어기능도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고요."
좋아지긴 하겠지만 정상적인 생활은 힘들다. 나는 그 말이 조금 어려웠다. 정상적인 생활이라는 것이 어디까지의 범위를 얘기하는지 모호했다. 의사를 탓하는 건 아니었다. 그 누구도 지금 상태에서 아버지의 앞으로의 상황을 예단하긴 불가능할 것이다.
'정상적인 생활' 그 말이 자꾸 맘에 걸렸다. 어디까지 비정상적일 수 있다는 말인지 두려웠다.
5월 13일 토요일
잠을 설쳤다.
나는 은연중에 아버지가 깨어나기만 하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나 보다. 원래 아버지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면서 마음이 괴로웠다.
-거동을 할 수 있을까?
-다시 얘기는 할 수 있을까?
-나를 알아볼 수 있을까?
하루종일 그 생각뿐이었다. 아내에게 장을 본다는 핑계로 집에서 일찍 나와 가게로 갔다. 뭐든 해야 했다. 재료손질을 대충 마치고 청소를 시작했다. 철솔을 찾아 주방 바닥을 벅벅 닦았다. 바닥 타일 줄눈에 끼어 있던 때가 힘겹게 벗겨졌다.
주말이라 손님이 조금 있었다.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적은 편. 경기가 확실히 바닥을 치고 있다. 한 달 매출을 추산해 보면 코로나가 한창일 때보다 더 좋지 않은 달도 있다. 오픈을 하자마자 코로나가 터지고 코로나가 끝나니 경기침체가 이어지고. 아내와 난 수시로 얘기한다. 지금까지 그랬듯 시간이 지나면 다 별 거 아닐 거라고.
-나중에 얼마나 에피소드가 많겠어.
-스트레스 너무 받지 말자. 우리만 손해야.
-모두 힘든 걸 어쩌겠어.
그렇게 얘기하며 지금보다는 나중을 생각하며 지금을 이겨내곤 했다.
5월 14일 일요일
깊이 잠을 자고 있는 새벽.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자는 병원이었다.
시간이 멈추는 것처럼 갑자기 멍해졌다. 이 시간에 병원에서 전화 올 일이 뭐가 있겠는가?
"병원인데...."
전화기를 보며 받지 못하고 있는 나를 보고 아내도 놀랐다. 전화를 받는 게 두려웠다. 응급상황일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한 사람은 그동안 통화를 했던 의사와는 다른 의사였다.
"보호자분. 일단 놀라지 마시고요. 먼저 말씀드리면 환자에게 큰 이상이 있는 건 아니에요. 새벽에 전화드려 놀라실 것 같아서요. 그런데 호흡이 불안정하고 산소포화도가 떨어져서 다시 기도삽관을 통한 인공호흡기를 달아야 할 것 같아요. 기도삽관은 보호자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전화를 드린 거고요."
"네.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네? 네 현재로서는 가장 최선의 방법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제거를 계속해줘도 가래가 생기고 산소포화도가 안 좋아져서 어쩔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자세한 설명은 담당의께서 다시 해주실 거예요."
"네. 해주세요."
벌써 3번째 기도삽관이다. 첫 번째 기도삽관을 했을 때 인터넷과 유튜브를 통해 어느 정도 공부를 했기 때문에 처음보다는 그리 걱정스럽진 않았다. 다만 이렇게 계속 자가호흡이 어려울 경우 기관절개를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회복 과정이 쉽지 않아 그게 걱정이었다.
큰 걸 바라는 게 아니었다. 아버지가 혼자 숨을 잘 쉴 수 있기를 바라다가 갑자기 마음이 무너져버렸다. 다른 것도 아니고 숨을 잘 쉬기를 바라다니. 생의 끝자락에 있는 아버지에게 손조차 뻗어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일반실로 올라갈 수도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가 다시 절망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감정의 낙차는 더욱 컸다. 기보삽관을 하면 다시 마취제를 놓을 것이다. 가뜩이나 뇌손상이 진행되고 있는 사람에게 마취제를 놓는다는 건 어떤 행위일까? 불난 집에 부채질을 계속하는 건 아닐까? 치료를 하는 게 아니고 더 바보로 만드는 건 아닐까? 안 좋은 생각들만 머릿속에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