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아이가 되었다.

#03 보호자

by 조명찬




5월 5일 금요일


밤새 비가 내렸다. 비 소리가 큰 건지 내가 선잠을 잔 건지 꿈에서도 비가 내렸다. 무슨 꿈을 꾼 건지는 모르겠다. 그냥 비만 줄기차게 내렸을 뿐.


근처에 사는 처형이 설렁탕을 집 앞에 두고 갔다. 중국에 있는 친구 명선에게서 전화가 왔다. 모두 걱정뿐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밥 잘 챙겨 먹고, 일단 네 몸부터 챙겨.”


빠지지 않고 듣는 말. 하긴 나였어도 그 말을 해줬을 것이다. 위로의 말은 사실 종류가 그리 많지 않다.


금요일이니 병원에서 전화가 오는 날이었다. 평균적으로 오전 11시~12시 사이에 전화가 오는 편이나 그렇지 않은 적도 있어 무작정 전화를 기다릴 뿐이다. 전화가 오는 시간이라도 최소 1시간 단위로 규칙이 있다면 좋겠다. 그 게 그렇게 큰 바람인가?


코로나 때문에 환자의 임종도 지키지 못하고 황망하게 보내는 가족들도 많을 것이다. 상상만 해도 가슴이 덜컥거린다. 환자는 모든 상황을 모르니 오랜 시간 동안 가족의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것이 외로울 것이다. 세상의 마지막을 그렇게 혼자 가는 게 허무할 것이다.


그게 가장 두렵다. 만약, 아버지가 중환자실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혼자 가게 된다면…..


그렇게 가족들에게 할 말이 많은 사람이, 그렇게 가족들과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 그렇게 가족들을 만지는 걸 좋아했던 사람이.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삶의 끈을 놓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처럼 아팠다.


오후 7시가 넘도록 병원에서 전화가 오지 않았다. 엄마는 오늘 나에게 3번 전화를 했다. 병원에 전화를 해봐야 하는 거 아니냐는 얘기. 가게에 있을 땐 웬만해선 전화를 하지 않는 엄마였다. 당연한 얘기지만 엄마는 평정심을 잃고 있었다.

엄마의 심정은 이해하겠지만 자꾸 나를 통해 소식을 알려고 하니 스트레스를 받았다. 통화가 자주 되지 않는 상황에서 걱정의 말만 토로하는 엄마와 전화해 봤자 별 소식을 알 수 없는 병원 사이에서 나는 무척이나 괴로웠다. 결국 나도 엄마에게 병원의 매뉴얼대로 얘기했다.


“엄마, 전화가 오지 않으면 그래도 좋은 거라잖아. 지금 상황에선 갑자기 전화 오는 게 더 안 좋은 일일 수 있어.”


“그런데 오늘 전화 오는 날이라고 하지 않았어? 왜 아직까지 전화가 안 오는 거야.”


엄마와의 전화를 끊고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손님들이 몰려 들 시간이었다. 잠깐 통화하고 끊을 생각으로 매장 밖으로 나왔다. 급하게 나서는 나를 보고 어디 가냐는 아내의 말이 등뒤로 들렸다.


아버지 이름을 대고 환자 보호자라고 말하니 간호사가 답했다.


“보호자분, 여기로 계속 전화하시면 저희가 업무를 제대로 할 수가 없어요. 앞으로 하셔도 못 받을 수도 있어요.”


한숨이 절로 났다. 이 얘기를 들을 줄 알았다. 짜증이 났다. 코로 들숨을 크게 쉬었다 뱉었다. 간호사의 귀가 기분 나쁘게 뜨거웠을 것이다.


“저도 아는데요. 오늘 전화가 오는 날인데 오지 않았어요. 하루 종일 기다리다가 이제 전화해본 겁니다.”


“오늘 아시다시피 어린이날 휴일이어서요. 담당 선생님이 없으세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월수금 전화 오는 날 아니었어요?”


“그렇게 전화드리려고 노력은 하고 있지만 특별한 규칙이 있는 게 아니에요. 상황에 따라 못 드릴 수도 있고요.”


“아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보호자들은 그 시간만 기다리고 있어요. 오늘이 휴일이면 어제 전화해서 미리 얘기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


“불안해하시는 거 잘 알고 있고 지금은 환자 상태가 특별한 변화가 없어서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어요.”


“그냥. 변함없이 그대로다.라고 한마디만 하고 끊어요 돼요. 지금 우린 말이죠.”


“네. 담당선생님 오시면 제가 잘 전달드릴게요. 이 전화는 오래 통화를 못해서요. 환자분 아직 걱정할 정도는 아니니까 선생님 전화 기다려주세요.”


“그럼 전화를 언제 주시는데요?”


“오늘이 금요일이니까 주말 지나고 월요일엔 드릴 수 있을 거예요.”


전화를 끊었다. 매장 안에 있던 아내가 밖에서 통화나를 보고 손짓을 했다. 추가 주문이 들어왔다는 표시였다.


매일, 차곡차곡 무언가가 쌓이는 느낌이었다.



5월 6일 토요일


오후 1시에 담당의에게서 전화가 왔다. 의외였다. 주말이 지나고서야 전화가 올 지 알았는데 반갑고 고맙기까지 했다. (어제까진 그렇게 화가 났는데)


“폐의 염증 수치는 조금씩 내려가고 있어요. 의식은 아직 희미한 정도예요. 근데 그게 왜 그러냐면 기도삽관을 통해 인공호흡을 하는 환자의 경우는 환자가 워낙 힘들어하기 때문에 진통제와 함께 졸음이 오는 약을 함께 투여해요. 그게 환자를 계속 졸리게 하거든요. 그래서 정상적인 의식은 확인이 어렵죠. 꼬집거나 말을 걸면 어느 정도 반응은 하십니다. 다음 주부터는 졸음약을 계속 줄여가면서 의식을 살필 거예요. “


“네. 네. 감사합니다.”


“우선 폐렴 치료가 가장 우선이고요. 뇌출혈은 자연적으로 녹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게 양이 워낙 많아서요. 시간도 조금 걸릴 수 있고 얼마나 잘 녹느냐에 따라 환자의 예후가 달라져요. 뇌에 차 있는 피가 녹으면서 뇌신경을 건드리게 되는데 때에 따라 그게 많이 위험해질 수도 있어요. 일단 그건 차차 볼 문제고 폐렴 치료를 가장 집중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또 물어볼 거 있으신가요? “


“아버지가 당뇨가 있으셔서요.”


“네. 기존 질환은 다 파악하고 있고요. 그거에 따라 조치하고 있습니다. 기도삽관도 너무 오래 하고 있으면 좋지 않아서요. 다음 주 중에 자가호흡이 가능하다 싶으면 바로 뺄 거예요. 또 물어볼 거 있으신가요? “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어제까지 그렇게 증오하고 저주를 퍼부었던 담당의에게 나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었다. 두 손으로 전화를 잡고 인사하듯 연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버지가 병원에 간 후, 처음 듣는 희망의 말이었다. 딱 일주일만이었다.


그렇게 나는 보호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전 03화아버지는 아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