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중환자실
2023년 5월 2일 화요일
중환자실 의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에게 먼저 전화를 했다가 엄마가 이해를 잘하지 못하겠다고 나에게 전화를 돌려서 다시 한 모양.
뇌출혈은 점점 멈추고 있는 상황이지만 현재는 폐에 염증 수치가 높아 자가 호흡이 어렵다고 했다. 상황이 더 악화되면 기도삽관을 할 수도 있다고 얘기했다.
‘현재 상황에서 더 나빠지면 전화를 하는 거니 전화가 오지 않으면 안심을 하고 있어라.’
간호사도 의사도 같은 얘기를 반복하는 걸 보면 환자의 보호자들에게 대처하는 매뉴얼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만약에 그런 게 존재한다면 이 매뉴얼은 보호자를 안심시키는 것이 아니라 열받게 하는 데 최적화된 매뉴얼일 것이다.
가게에 왔다.
3일 만에 온 건데 일주일은 더 넘은 것 같았다. 아버지 사고 소식을 들은 당시 무자비하게 식재료를 던져 놓은 냉장고부터 정리했다.
어느 정도 가게를 정리하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밥 먹었냐고 물으니 라면 하나 끓여 먹었다고 했다. 생각보다 엄마가 많이 흔들렸다.
아버지는 큰 수술을 두 번이나 받은 사람이다.
첫 번째 수술은 내가 열한 살 때였다. 아버지 나이 마흔일곱. 아버지는 트럭에 치었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였고 트럭은 아버지의 골반 위를 짓이기며 넘어갔다. 골반뼈가 산산조각이 났다. 재활이 쉽지 않을 것이며 평생 휠체어를 타야 할 수도 있다는 의사의 소견이 있었다. 1년을 병원에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두 발로 걸어서 병원을 나왔다. 포기하기엔 자식들이 너무 어려서였을까? 의사도 절대 낙관하지 못한 재활을 아버지는 이겨냈다. 해냈다.
두 번째 수술은 내가 서른 살 때였다. 아버지 나이 예순여섯. 담관암이었다. 4기였고 생존 확률이 20% 정도였다. 고모들은 수술을 반대했다. 남은 기간 편안하게 있다가 보내드리자는 의견이었다. 엄마는 단호했다. 조금이라도 생존확률이 있으니 무조건 수술을 시키겠다는 것. 결국 엄마가 옳았다. 담낭을 떼어내고 간도 30% 이상을 잘라 내야 하는 아버지의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나 완치판정도 받았다. 아버지가 아플수록 엄마는 더 단단해졌다. 그래야만 했으므로.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엄마도 나이를 먹었다. 갑자기 아버지가 쓰러지고 나니 엄마는 어쩔 줄 몰라했다. 그동안 내가 알던 엄마의 모습이 아니었다. 엄마가 자꾸 신경 쓰인다. 예상치 못한 일이다.
5월 3일 수요일
아침 일찍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 상태가 어떤지 궁금하다는 전화였다. 병원에서 크게 상황이 변하지 않으면 전화를 하지 않는다고 몇 번을 얘기해도 엄마는 자기 할 말만 했다.
“그래도 전화해 보면 알려주겠지. 어떻게 거기서 하란대로 기다리고만 있을 수 있어.”
엄마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나는 스트레스를 받았다. 병원에 전화를 했다. 간호사가 받았지만 담당의가 바빠서 전화를 받지 못한다고 했다. 게다가 보호자 신원확인이 안 돼서 환자의 상태 확인을 못해준다고 말했다. 면회가 안돼서 전화통화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그렇다면 신원확인을 어떻게 하냐고 따져 물었다. 간호사는 그러니 우리가 전화를 드릴 때만 상황설명이 가능하다고 얘기했다.
준규형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순호형에게서 들었다고 했다. 자신의 장인어른도 뇌출혈로 쓰러지셔서 폐렴까지 왔다가 지금은 멀쩡하게 잘 다니신다고 희망적인 얘기를 해줬다.
뻔한 얘기였지만 아주 잠시 마음이 놓였다.
저녁 늦게 주치의에게서 전화가 왔다.
“보호자분 제가 분명히 말씀드렸는데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전화를 드리기가 힘듭니다. 저 지금 수술실 앞에서 전화드리고 있는 거예요. 매일 전화드릴 수가 없습니다.”
“바쁘신 것 알겠는데요. 매일매일 아니 매시간 피 말리며 병원 전화만 기다리는 저희 입장도 생각해 보셔야죠. 그냥 괜찮다. 그대로다라는 말이라도 하루에 한 번 해주실 수는 있잖아요. “
“환자가 너무 많아서 매일 전화드릴 수 없는 건 미리 말씀드렸었습니다. 보호자께서도 그렇게 신경질적으로 말씀하시면 더 이상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순간적으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의사에게 짜증을 부려봤자 아버지에게 좋을 게 뭐가 있을까란 생각에…
“알겠습니다. 저희도 답답해서 그럽니다.”
“마음은 잘 알고 있습니다. 답답하시겠지만 연락을 기다려주세요. 저희가 잘 지켜보면서 특별한 변화가 있으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5월 4일 목요일
새벽 5시.
내가 잠을 자지 못하니 아내도 함께 밤을 꼬박 새웠다. 먼저 자라고 해도 말을 안 듣는다. 시즌제 드라마를 보다가 아내가 졸길래 아내를 뉘었다. 아내가 잠이 든 후, 휴대폰에 있는 아버지의 사진을 보다가 잠시 졸았다. 다시 일어나니 아침 6시.
아버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며칠 째 가족 목소리도 들리지 않으니 버려졌다고 착각하지는 않을까? 얼마나 외로울까? 그대로 포기하진 않을까?
두려웠다.
엄마에게 마켓컬리 새벽배송으로 죽을 보냈다. 그거라도 먹으라고 보낸 건데 엄마는 이런 거 잘 먹지도 안는데 뭐 하러 보냈냐고 말했다. 엄마 끼니 걱정을 하게 될 날이 올 줄이야.
동생은 코로나 격리 기간이 끝나고 자가키트로 검사를 했는데 두 줄이 나와 당분간 집에는 오지 않기로 했다.
가족 중에 코로나에 걸리지 않은 사람은 아버지가 유일했다. 아버지는 철저하게 마스크를 끼고 생활했다. 엄마가 코로나에 걸렸을 때도 철저하게 격리 생활을 해서 엄마가 조금 서운해할 정도.
아버지가 코로나를 조심했던 건 다른 게 아니었다.
“지금 우리처럼 나이 먹은 사람들이 코로나 걸려서 병원에 갔다가 악화되면 가족들도 못 보고 그냥 외롭게 죽는 거 아니야. 사람의 마지막이 그것처럼 안 된 게 어딨어. 조심해야지. 무조건.”
철저하게 거리 두기를 지켰던 아버지는 한 번도 코로나에 걸리지는 않았지만 뇌출혈 때문에 가족들과 떨어져 생사를 오가게 됐다.
그것도 혼자서 외롭게.
그렇게 걱정하고 싫어했던 상황을 결국 온 몸으로 겪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