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퇴원 후, 첫 검사
7월 24일 월요일
휴일이다. 아버지 병원에 왔다. 아버지 사고 이후, 일주일에 단 하루 있는 휴일은 아버지 병원 업무로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아내에게 미안하다. 오늘은 검사를 위해서였다. 경희대 병원에서 재활 병원으로 옮긴 지 한 달이 됐으니 환자의 경과를 보기 위해 검사를 다시 한번 해야 했다. 안동에서 서울에 있는 경희대 병원까지 가는 것은 무리라서 안동에 있는 종합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검사결과를 가지고 내가 경희대 주치의를 만나 환자 상태의 설명을 듣기로 했다.
아버지가 있는 안동복주병원은 재활병원이다. 재활병원은 말 그대로 재활을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니 환자의 상태를 정밀하게 살펴볼 수가 없다. 때문에 종합병원에 가서 아버지의 상태를 살펴야 했는데 이것도 꽤나 신경 쓰는 일이다.
일주일 전, 안동종합병원에 진료예약을 했다. 아버지는 신경외과와 심장내과, 두 곳을 모두 봐야 했다. 아버지 컨디션이 정상이라면 크게 신경 쓰지 않았겠지만 아버지의 컨디션을 고려해 휠체어에 타 있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해야 했다. 진료를 받고 다음 진료를 받을 때까지의 대기 시간이 고민이었다. 예약을 담당하는 분에게 사정을 얘기했지만 오전 중에 빨리 오는 대로 번호표를 뽑고 진료를 보기 때문에 진료 예약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아침 일찍 가서 먼저 대기표를 뽑는 수밖에 없다.
재활병원과 스케줄을 공유했다. 재활병원에서 종합병원으로 갈 때 아버지 이송이 필요했기 때문. 사설 엠블런스 이용을 생각했었는데 다행히 재활병원에 있는 환자 이송차로 모실 수 있다고 했다. 안동복주병원 원장님이 환자들이 검사를 편하게 받을 수 있도록 무료서비스를 제공하게 했다고 설명받았는데 나는 그 특유의 세심한 배려에 감동을 했다.
모든 스케줄을 맞춰놓고 나니 마음이 조금 편안했다. 그런데 어제 오후 갑자기 재활병원에서 문자가 왔다.
갑자기 무슨 소리? 병원에 전화해 보니 메시지 그대로였다. 아버지 병실에 함께 있는 환자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아 아버지도 코로나 검사를 받았는데 만약에 아버지도 확진을 받는다면 검사를 받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검사는 둘째치고 아버지가 코로나에 확진이 된다면 현재 상황에서는 건강이 치명적으로 악화될 수도 있다.
코로나 검사 결과 나오는 시간은 오전 9시에서 10시 사이라고 했는데 그 시간이면 내가 안동에 도착할 시간이다. 고민됐다. 일단 검사를 미루고 아버지의 pcr검사를 지켜볼지, 아니면 확진이 되지 않은 것을 전제로 원래 스케줄대로 움직일지....
잠이 오지 않았다. 뒤척이다가 새벽 4시 20분에 일어났다. 혼자 가려고 했는데 아내가 따라나섰다. 아내는 나를 혼자 보내는 게 불편했고 나는 피곤한 데 따라 나오는 아내가 불편했다.
신도림역에서 5시 지하철 타고 청량리로, 청량리에서 6시발 ktx를 타고 안동으로 향했다. 원래는 8시 도착인데 장마로 인해 서행해서 8시 40분 도착했다. 안동역에 도착하자마자 병원에서 문자가 왔다.
큰 한숨이 새어 나왔다.
역에 도착하자마자 역내에 있는 작은 편의점에 들렀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니 아내는 뭐라도 먹어 둬야 한다고 했는데 평소에 아침을 건너뛰는 아내가 그러는 게 조금 의아했다.
아내는 삼각김밥을 두 개 사서 나에게 먹으라고 했다. 나는 입맛이 없었고 아침부터 역에서 냉장고에 있던 차디찬 삼각김밥을 먹는 게 내키지 않았다. 필요 없다는 데 몇 번을 권해서 짜증을 냈더니 아내가 기분이 상했다. 결국 둘 다 김밥을 먹지 않고 가방에 던져 넣었다.
종합병원에 먼저 도착해 아버지를 기다렸다. 재활병원 기사님이 출근 후, 바로 아버지를 모시고 온다고 했으니 9시 30분이나 돼야 도착할 수 있다.
정문에서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아버지가 도착했다. 카니발을 개조한 병원차는 뒷좌석에 환자가 휠체어에 앉은 채로 오르내릴 수 있었다. 휠체어에 앉은 채 내리는 아버지 모습이 반갑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했다. 여전히 나를 알아보지는 못하는 느낌이다.
병원에는 왜 왔는지, 오늘 무슨 검사를 하게 될지 아버지에게 설명을 했다. 잘 못 듣더라도 이해를 하지 못하더라도 그게 맞다.
뇌 CT를 찍기 위해 아버지를 눕혔는데 몸이 딱딱하게 굳은 채로 떨었다. 몸을 못 가누는 작은 망아지 같았다. 그런 모습을 처음 본 거라 나는 조금 겁이 났는데 아버지가 다른 사람 같았다. 기괴했다.
CT결과를 본 선생님은 뇌에 피가 많이 녹았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심장내과에서는 X-ray 촬영을 하고 살펴봤는데 결과적으로 폐렴이 없다는 소견이었다. 모든 검사를 마치고 나니 오후 1시였다. 아내와 내가 긴밀하게 움직여서 빠르게 검사를 마칠 수 있었다. 평소라면 아버지 혼자서도 충분히 해왔던 일을 이제는 누군가가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신경외과와 심장내과를 방문한 사람들 대부분은 노인이었다. 생의 마지막 파트에 들어선 그들과 아버지를 번갈아 보다가 나는 묘한 무기력함에 빠져들었다. 누구나 마지막엔 힘이 없다. 누구나 마지막엔 자기 맘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다.
아버지가 신고 있는 흰 고무신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평소라면 절대 신지 않을 저 신발이 아버지 발에 신겨져 있었다.
내가 처음 알았던 멋쟁이. 외출하기 전 좋아하는 구두를 반짝반짝하게 닦는 걸 즐기던 사람.
아버지와 함께 재활병원 차를 타고 병원으로 돌아왔다. 오전 내내 같이 있었지만 정신이 없어 아버지와 제대로 된 대화도 나누지 못했다. (어차피 혼자 하는 말이겠지만)
아버지에게 오늘 검사 결과를 설명해 주었다.
“머리에 피가 깨끗하게 녹았대. 깨끗해졌대. 그러니깐 아버지는 운동만 열심히 하면 돼. 의사가 말했는데 진짜 깨끗해졌대. 피가 다 녹았다잖아."
아이에게 말하듯 천천히 그리고 목소리를 높여 과장해서 얘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말을 했다.
“웬일이래?”
순간 멈칫.
"응? 뭐라고? 그래. 웬일이래! 아빠도 놀랐지. 진짜야. 깨끗해졌데. 진짜로."
놀라서 아버지가 한 얘기를 자꾸 반복하며 대화를 시도했다.
“살아야겠네.”
정확하진 않지만 그렇게 얘기한 것 같았다. 그렇게 얘기했다고 믿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아빠. 살아야지. 운동 열심히 하면 좋아진다니깐. 열심히 해. 진짜야. 열심히 하면 돼. 걸어서 여기서 나갈 거야. 빨리 집에 가야지."
아버지를 병실로 올려 보내고 안동역으로 가는 길에 나는 조금 앞서 걸었다. 어제까지 비가 많이 왔는데 오늘은 해가 쨍쨍했다. 대중교통이 마땅치 않아 역까지 가려면 15분은 족히 걸어야 했다. 갑자기 허기가 밀려왔다. 하루 종일 물만 마셨다. 아침에 감정 다툼을 하느라 먹지 못했던 삼각김밥을 아내가 가방에서 꺼내 주었다.
이번엔 거절하지 않았다. 마땅히 앉을 때도 없어 걸으며 삼각김밥을 한입씩 베어 먹었다.
맛있었다.
기차역에 가니 태풍으로 인해 모든 기차가 연착이었다. 바로 옆에 있는 버스터미널에는 다행히 차편이 있었다. 우등버스는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해서 바로 탈 수 있는 일반 버스를 탔는데 오는 내내 불편했다.
긴 하루였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내는 나를 안아줬다. 혼자 갔으면 정말 고생했을 거라고. 같이 갔다 와서 다행이라고. 앞으로도 혼자 갈 생각하지 말라고.
몸이 힘들고 마음이 무거운 날.
그랬던 날을 아내가 묵묵히 함께 해줬다. 자기 전에 아내가 얘기했다.
"나 없으면 어쩔 뻔했냐?"
그래. 당신 없으면 어쩔 뻔했냐.
7월 25일 화요일
어제 안동종합병원에서 찍은 CT를 가지고 경희대에 가서 선생님을 만났다.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있을 때부터 경과를 봐 온 선생님이다.
경희대는 예약 시간을 분단위로 받았는데 그만큼 환자가 많았다.
먼저 접수를 하니, CT 자료를 접수하고 오라고 했다. 그래서 접수를 하고 갔다니 외래조치서를 접수하고 오라고 했다. 한 번에 말을 하면 될 것을 이렇게 몇 번씩 훈련을 시키나 싶어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는데 이번엔 가족관계증명서를 떼 오라고 했다.
"한 번에 설명해 주시면 될 것을 이렇게 몇 번씩 왔다 갔다 하게 만듭니까?"
"아네. 죄송해요. 그래도 그게 다 필요한 서류예요."
필요한 서류를 정확히 설명해 주었다면 한 번에 가서 다 떼어 올 수 있었다. 그런데 하나씩 부족한 걸 얘기해 줘서 몇 번씩 다녀오게 한 것을 따지듯 물은 건데 엉뚱한 대답이 돌아왔다. 간호사의 태도에 더 따져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따지면 따질수록 화만 난다. 화가 나면 이 모든 일이 일어난 원인. 결국 아버지를 원망하게 된다. 나는 생각의 과정이 그렇게 도달되지 않도록 매우 애쓰고 있다.
퇴원 전까지 아버지를 살펴본 주치의와 CT를 함께 보며 얘기했다.
"어휴. 피는 정말 깨끗하게 녹았네요. 그전 것이랑 비교해서 볼 게요. 여기 보세요. 이렇게나 피가 가득했어요. 그런데 지금 보면 없잖아요. 경과는 이 정도면 좋은 상황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6개월 정도 지나면 지금보다는 더 좋아지실 거예요."
아버지의 주치의였던 의사지만 코로나로 인해 면회 자체가 안 되니 얼굴은 처음 본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이 사람이 하는 이 말을 듣기 위해 지난 몇 개월을 참고 지내 왔었던 것 같았다. 좀 전까지 화가 났던 일은 모두 잊어버렸다.
"그런데 여기 보시면 이쪽을 전두엽이라고 하거든요. 그쪽이 손상이 많은 편이에요. 이쪽이 사람의 참는 능력, 그러니까 이성과 관계가 있어요. 아무래도 그전보다는 같은 감정을 유지하기가 힘들 게 될 거예요. 환자마다 다르긴 하지만 어떤 환자들은 식욕이 막 높아지기도 하고 어떤 환자들은 성욕이 막 높아지기도 해요. 평상시에도 참을성이 없어지고 짜증이 많아지기도 하죠."
예상했던 일이다. 놀랍지는 않았다. 상담실 문을 닫고 나오며 마음속 어디에선가 희미하게 걱정이 피어오르긴 했다.
"원래도 참을성이 없는 사람인데 얼마나 더 참을성이 없어진다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