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무짠지
7월 28일 금요일
재활병원 담당의사에게서 오전에 전화가 왔다. 연하검사를 하려고 하는데 입을 다물고 음식물을 삼키려 하지 않아 검사가 쉽지 않다고 했다. 연하검사를 해야 환자가 음식물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데 검사 자체가 어려우니 콧줄을 쉽게 뺄 수 없다고 했다.
7월 29일 토요일
엄마가 아침 일찍 전화를 했다.
"너네 아빠. 코가 팅팅 부어서는 콧줄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야? 먹지도 못 하니까 더 힘이 없지. 숨도 쉬기 힘들 거고. 얼마나 힘들 거야? 검사를 거부한다고 하지만 그런 게 어딨어? 병원에서 더 적극적으로 하면 되는 거지. 환자 검사를 환자가 협조를 안 한다고 못하는 게 말이 되냐고. 의사한테 더 적극적으로 얘기 좀 해봐. 네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전화를 해 불만을 토로하는 느낌이었다. 귀가 먹먹했다. 좋은 소식은 하나도 없다. 늘 나쁜 소식만....
아버지가 협조를 하지 않는데 나보고 어쩌냐는 투로 엄마에게 짜증을 냈다. 통화는 그대로 끝.
엄마의 전화를 받고 나는 마음을 추스르질 못했다. 화가 났다. 나보고 대체 어쩌란 말인가?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 밖에 나가 아파트 주변을 계속 걷다가 벤치에 앉았다. 다시 일어났다. 안지도 못하고 벤치 앞을 빙빙 돌며 생각했다. 내가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나는 사실 엄마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 엄마의 고민을 쉽게 해결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난 것이었다. 해결해 줄 수 없는 걸 엄마가 자꾸 물어보니 할 말이 없었고 그게 결국 나에게 불만을 얘기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동생은 나와 달랐다. 꽤 많은 상황에서 동생은 한 발자국 떨어져서 얘기한다. 오늘 아침에 엄마가 나에게 했던 말을 동생에게 했다면 동생은 이렇게 얘기했을 것이다.
'응. 엄마 말이 맞아. 아빠가 얼마나 힘들 거야. 내가 의사에게 한번 더 얘기해 볼게.'
그리고 의사에게 깜빡하고 전화를 하지 않았겠지. 그래도 당장 엄마를 위로하는 건 동생의 말이었을 것이다. 나는 해결하려는 책임감을 조금 덜어둘 필요가 있다.
저녁에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전과 달리 목소리가 밝았다.
아버지와 통화를 했는데 목소리가 아주 또렷했다고 한다. 대화라고 할 수 없는 수준이었지만 이런저런 말도 주고받았다고....
엄마에게 아침에 짜증을 낸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 전화로 하기엔 너무 긴 얘기였다. 설명하기도 어려웠고. 어쨌든 아침보다는 엄마의 목소리가 밝았다. 그러면 됐다.
7월 30일 일요일
냉장고를 여니 엄마가 가져다준 반찬이 한가득이다. 나는 냉장고가 꽉 차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요즘엔 엄마가 바리바리 싸주는 반찬을 거절하지 않는다. 엄마는 만날 때마다 무짠지를 열심히 날라다 주고 있다. 아버지를 위해 작년 겨울에 담가두었던 무짠지가 올여름엔 처치 곤란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절임 반찬을 좋아했다. 그래서 다양한 절임 반찬이 늘 냉장고에 준비되어 있었는데 입맛이 없는 여름에는 겨울에 담가두었던 ‘무짠지’가 빠지지 않고 상에 올랐다.
어디 무짠지뿐이랴! 아삭아삭하고 새콤한 매실장아찌, 쿰쿰하게 삭은 울외장아찌도 김치처럼 흔하게 반찬으로 먹었다. ‘나나스케’라고도 불리는 울외장아찌는 가정에서 흔하게 먹던 반찬은 아니었다. 술을 담고 남은 찌게미에 울외를 삭혀 만드는데 그 특유의 쿰쿰한 냄새가 있어 처음 먹는 사람에겐 쉽지 않은 음식이다. 아버지는 어릴 적 사촌들이 우리 집에 놀러 오면 장난 삼아 억지로 장아찌를 하나씩 먹이곤 했는데 장아찌를 뱉어버리면 혼날 것 같고 먹기에는 그 맛이 너무 역해 곤란해하는 얼굴을 바로 옆에서 구경하며 아버지와 함께 눈을 맞추며 웃곤 했었다.
그때의 난 이미 여러 가지의 장아찌에 단련되어 있어 웬만한 절임류의 반찬은 꿀떡꿀떡 잘 먹을 때라 나나스케의 매력에 어느 정도 빠져 있었다.
가장 흔하고 편하게 먹는 무짠지는 국이나 찌개가 있는 밥상에서는 존재감이 미약하지만 속이 불편해 간편하게 먹고 싶을 때 누룽지와 함께 먹으면 바로 밥상의 주연을 꿰차버린다.
뜨끈뜨끈하게 끓여진 누룽지에 차갑고 매콤하고 짜고 아삭한 무짠지를 곁들일 때야 말로 그 맛이 아주 세세하고 정확하게 느껴지며 무짠지의 진수를 경험할 수 있는데 별거 아니었는 게 결국 별거라는 진리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다.
올 겨울에 엄마는 또 무짠지를 준비해 둘까? 아마도 그럴 것 같다. 나는 울외장아찌를 예전 방식으로 담그는 곳을 몇 군데 체크해 두었다. 내년 여름에는 엄마가 낸 무짠지와 울외장아찌를 함께 상에 올려두고 아버지와 함께 먹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벌써부터 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