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아이가 되었다

#16 엄마도 환자

by 조명찬

8월 1일 화요일


아버지가 입으로 먹을 수 있을지 확인을 하는 연하검사를 다시 했는데 아버지가 다시 거부를 했다. 세 번째 거부다. 의사는 콧줄을 오래 하는 것은 좋지 않으니 뱃줄을 하는 것을 권했다. 안 그래도 아버지의 코가 자꾸 허는 것이 맘에 걸렸다. 일반적으로 보호자들이 뱃줄을 하는 것을 원치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환자의 장기에 직접 튜브를 꼽는 것을 내키지 않기 때문.


나는 전부터 의사에게 콧줄이 힘들면 뱃줄을 해야 한다고 말을 들어와서인지 크게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뱃줄을 하게 되면 일단 숨 쉬는 거라도 더 편해질 테니 오히려 좋다고 생각했다. 다만 뱃줄을 하고 싶다고 해서 바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소장에 바로 튜브를 꼽는 것이기 때문에 아버지가 있는 재활병원에서는 할 수 없고 내시경이 가능한 대형병원에서 외래로 시술을 받아야 했다.


번거롭지만 다시 한번 아버지를 큰 병원에 며칠간 모셔야 했다. 엄마, 동생과 스케줄을 상의했다.





8월 10일 목요일


태풍이 온다고 한 날. 온 나라가 난리다. 가게 문을 닫았다.

아버지는 이 난리를 알고 나 있을까?



8월 12일 토요일


한 달 반째 입원하고 있던 엄마가 퇴원을 했다. 평소 무릎이 좋지 않았던 엄마는 갑자기 주저앉아 버렸다. 연골에 염증이 많다고 했는데 염증 치료를 하고 나면 인공관절을 넣어야 한다고 했다. 무릎 치료는 어차피 했어야 했다. 언제 터져도 터질 거였다. 나는 이 시기에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게 돼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입원하고 혼자 있는 엄마가 늘 걱정이었다. 엄마는 밥도 잘 챙겨 먹지 못하고 혼자서 멍하니 있다가 소파에서 잠이 들곤 했다.


그러던 엄마가 갑자기 한 달 반 전에 상의도 없이 병원에 입원을 했다.


"의사가 일단 입원해서 치료를 하래. 걱정 마. 치료만 하면 되는 건데 뭐. 그리고 면회도 잘 안된다니까 오지도 마. 오래 안 있을 건데 뭐. 퇴원해서 봐."


입원 후, 엄마는 오히려 밝아졌다. 같이 있는 병동 사람들이랑 수다를 떨며 재미있게 지내는 모양이었다. 다행이었다. 세끼 잘 챙길 수 있고 시간 되면 재활도 할 수 있는 병원에서 조금 지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훨씬 좋았다. 좋은 타이밍이었다.


인천에 있는 병원으로 가서 엄마를 퇴원시켰다. (막내 이모가 사는 인천에 놀러 갔다가 이모가 잘 아는 병원이 있다고 해서 입원을 했던 것이다) 중간에 한번 면회를 오긴 했지만 오랜만에 본 것이다. 엄마의 무릎에는 축구선수들이 재활을 할 때나 하는 두꺼운 보호대가 채워져 있었다. 그래! 엄마도 환자였다. 엄마는 걷는 게 편치 않았다. 목발을 짚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정상적인 걸음은 아니었다.

엄마보다는 아버지에게 집중을 하고 있었으니 엄마에겐 조금 소홀했던 것도 사실이다.

엄마는 병원에 조금 더 있어도 됐지만 일부러 서둘러 퇴원을 했다. 다음 주에 아버지에게 가기 위해서였다.


아버지는 다음 주 수요일에 뱃줄을 넣기로 했다. 뱃줄을 넣은 후에는 그 병원에 3일 정도 입원해 있어야 하는데 간병인이 반드시 있어야 했다. 간병인을 따로 구하려 했는데 엄마가 직접 간호를 하고 싶다고 했다. 기간이 길지도 않고 병원입원 후로 아버지와 길게 시간을 보낸 적이 없으니 그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도 엄마와 길게 시간을 보내면 좀 더 정신이 빨리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그나저나 저 무릎으로 엄마가 아버지를 간호할 수 있을까?



중간에 면회를 갔을 때 휠체어를 타고 내려온 엄마(씩씩하게 지내는 엄마를 보니 웃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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