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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명찬 Jul 20. 2022

식당이나 해볼까? #04

-개업 준비


개업에 관련된 일정은 다음과 같았다.


8월 16일 계약 완료

8월 16~20일 서류 관련 및 청소 완료

8월 21일 ~8월 30일 메뉴 정리

9월 1일~9월 15일 메뉴 테스트 및 집기 도구 구매

9월 16일~9월 25일 최종 테스트

9월 30일 오픈


일정을 정해두면 할 일이 보인다. 막연하게 일을 진행하는 것보다 일정을 계획해두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가게는 출근하듯이 비슷한 시간에 매일 나갔다. 걱정이 많으니 아침 일찍 눈이 떠지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자주 가서 그 공간에 정을 붙여야 했다.


권리금으로 생각보다 많은 지출이 있었기 때문에 운용할 수 있는 준비금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았다. 금액을 아낄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몸으로 때우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 손으로 직접 다 해야 했다. 그중에 하나가 청소였다.


먼저 있던 테이블을 다 버리고 청소를 시작하려니 계약하기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였다. 원래 검은색인 줄 알았던 바닥이 알고 보니 겹겹이 때가 쌓여 있었던 것!


주방은 더 상태가 심각했다. 타일 위에 기름때가 찐득하게 붙어 있었는데 바닥 타일을 모두 깨서 새로 갈지 않는 이상 원래의 바닥이 나타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특별한 방법은 없었다. 그냥 시간을 두고 계속 지우는 수밖에….


일주일 내내 바닥을 지웠다.

본격적인 시작을 하기도 전에 쓸데없이 나는 지쳐가고 있었다. 일주일을 바닥 청소에 매달리다가 결국 청소업체를 불렀다. 한 사람이 로봇 같은 기계를 하나 가져와서는 반나절만에 바닥의 모든 때를 벗겨냈다.


청소 비용 조금 아껴보겠다고 시간도 버리고 몸도 버리고 결국 돈까지 버렸다. 미련했다. (그 후로도 나는 푼돈을 아까기 위해 그 짓을 계속 반복하게 된다. 자영업자가 원래 그렇다. 푼돈에 눈이 멀어 크게 못 볼 때가 허다하다.)


메뉴는 점심메뉴와 저녁 메뉴를 따로 연습했다. 점심메뉴는 엄마와 상의를 하며 결정했지만 저녁 메뉴는 오로지 혼자 고민하고 결정해야 했다. 함께 의논할 수 있는 동료가 없었다. 그것부터 나는 빨리 적응해야만 했다. 분명히 매일 가게에 나와서 열심히 무언가를 한 것 같은데 일은 진전이 없었고 개업일은 다가오고 있었다. 마음만 급해선 잠도 잘 자지 못하는 나에게 아내는 지리산 여행을 제안했다.


“좀 걸을까 봐.”


“지금 그럴 시간이 어딨어? 가게 오픈 날도 얼마 남지 않았어.”


“가게 오픈일은 누가 정한 건데? 당신이 정한 거 아니야? 누구랑 약속한 것도 아닌데 며칠 미루면 어때서?”


그러면 될 일이었다. 나는 내가 짜 놓은 일정만 생각하고 그 안에서 좁게 생각하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로 여행용 배낭을 꺼냈다. 오랜만에 신이 났다. 회사를 관두고 바로 가게를 알아보느라 나 자신을 돌볼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생각을 하지 못하니 일이 잘 될 리가 없었다. 나는 생각을 조금 오래 해야 하는 사람이다.


머리가 복잡할 땐 걷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다. 우리가 좋아하는 지리산 둘레길을 하염없어 걸었다. 생각하러 걷기 시작했는데 생각이 없어졌다. 그럴 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좋았다. 경치가 멋진 식당에서  잠시 쉬려다가 숙박도 한다기에 바로 짐을 풀었다.


“사장님. 여기 식사는 어떻게 하나요?”


“식사는 제가 다 해드릴 수 있는데 특별히 맛난 것건없습니다. 그냥 산나물, 김치 그런 거예요.”


별거 없다는 사장님 말씀과는 다르게 식사는 대단히 훌륭했다. 특히 ‘표고전’이 인상적이었는데 질 좋은 표고를 바삭하게 부치는 것만으로 굉장한 요리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말 그대로 겉바속촉의 표고전을 먹으며 나는 새 메뉴의 레시피를 떠올렸다. 그렇게 나는 뜻밖의 메뉴를 하나 추가하며 자신감을 끌어올렸다.



(사장님의 표고전(위)에서 영감을 받은 표고버섯 트러플 오일 샐러드(아래)는 코로나 이후 메뉴 리뉴얼을 하면서 현재는 판매하고 있지 않지만 오픈 초창기에 정말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았고 지금도 종종 찾는 분들이 있다.)


충분히 걷고 오니 머리가 맑아졌다. 내가 조금 헤매고 있는 동안 엄마는 외할머니께서 병원에 입원하셨기 때문에 나름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90세가 넘은 할머니는 병세가 악화되어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할머니는 고통스러운 기침을 계속하셨는데 진정제를 놔야지만 그나마 잠이 들어 평온해졌다. 엄마와 이모들이 순번을 정해 병상을 지켰다.


사업자등록증, 영업허가증, 보건교육증 등 식당 오픈에 필요한 서류들을 차근하게 준비했다. 그렇게 나는 엄마와 새로운 시간을 준비하고 있었고 엄마는 엄마의 엄마와 영원한 작별의 시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끝내 개업을 며칠 앞두고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장례가 끝나고 며칠 더 쉬자는 말에도 엄마는 빨리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가만히 있는 것보다 움직이는 것이 더 마음이 편했으리라….


“가게 오픈하자마자 돌아가셨으면 애매했을 텐데 정리 잘하고 잘 시작하라고 서두르셨나 보다.”


엄마는 애써 담담하게 할머니에 대해 얘기했다. 나는 엄마가 마음을 더 추스르길 바랐지만 엄마는 움직여야 마음이 편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크고 작은 일을 넘겨가며 우리는 오픈을 차근하게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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