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요리는 즐거워?
- 친애하는 친구들에게
나는 가끔 엄마에게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주곤 해. 사드리는 것도 좋지만 만들어 드리면 더 좋아하시거든. (너희도 알다시피 알뜰하기로 유명한 우리 엄마랑 음식점에 가서 메뉴판을 보고 '비싸서 안 먹는다', '그냥 먹자' 옥신각신할 필요도 없고 말이지) 얼마 전에는 냉장고에 있던 재료를 썰어 타코라이스를 만들어 먹었어. 엄마는 반찬이 하나도 필요 없는 완벽한 맛이라며 맛있게 드셨다. 엄마는 평생 나한테 음식을 만들어준 사람이니깐 이제는 내가 가끔 해드려야 한다고 생각해. 밥 빚진 걸 갚는 거다. 물론 그걸 다 갚진 못하겠지만....
돈을 빚진 것도 잘 갚아야 하지만 밥을 빚진 것도 잘 갚으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 힘들 때 밥 해주고 밥 사주고 했던 사람들이 결국 기억에 오래 남는 법이잖아. 그러니깐 우리 서로 힘들 때 밥 사는 데 인색하게 굴지 말자.
너희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여전히 주방일은 여자의 몫이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더라. 하긴 우리 아버지들은 라면 하나도 제대로 못 끓이는 분들이 많았잖아. 그래서 엄마들이 외출을 하면 '대체 자기는 뭐 먹냐'며 밖에 나가 있는 엄마한테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서 결국은 저녁 전에 집으로 불러들이곤 했었지. 그런데 그거 우리 집에만 있던 일 아니잖아. 다들 그랬지.
그런 아버지들을 보고 자랐으니 너희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해는 돼.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런 아버지를 보고 우린 분명히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니? 엄마만 고생한다고 생각했잖아. 그랬던 우리가 결혼을 하고 아버지가 되니 다시 모든 집안일을 아내에게 맡긴다? 그건 진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인 것 같아.
사람이 누가 챙겨주지 않으면 먹을 수 없다는 건 일생에 있어 10살 이전까지만 용납되는 거야. 손발이 모두 건강한 사람이면 당연히 자기 입에 들어가는 건 자기가 만들 줄 알아야 해. 음식에 소질이 없다고? 거짓말 좀 하지 마라. 내가 얼마 전에 엄마에게 해준 '타코라이스'도 야채만 썰면 끝이거든.
두려워 말고 주방에서 좀 놀아봐. 진짜야. 얼마나 재미있는데. 내가 만든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맛있게 먹는 걸 보는 게 얼마나 행복한데. 너희들이 그 맛을 모르고 사니 안타까울 뿐이다.
가끔 너희들이 전화해서 나한테 요리 재료를 묻곤 하잖아. 그래서 조금 생각해 보다가 너희들이 쉽게 요리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정리해 보려 해.
정말 쉬운데, 하고 나면 꽤 폼 잡을 수 있는 것들이니 너희들에겐 딱일 거야. 남자가 요리를 하면 정말 멋져. 나는 너희들이 좀 더 멋져졌으면 좋겠다. 우리 그렇게 늙어가자.
주의할 점. 하나 얘기할 게.
요리의 시작은 재료 손질이고 요리의 끝은 설거지야. 그러니깐 재료손질부터 설거지까지 모두 해야 요리를 한 거라고 할 수 있어. 자기가 요리하겠다고 큰소리쳐놓고 재료가 어디 있는지 몇 번씩 반복해서 묻는다거나, 주방에 온갖 냄비와 접시를 빼놔 전쟁통을 만들어 놓고 설거지는 아내에게 미룬다면 진짜 요리를 했다고 할 수 없어. 그건 그냥 시늉만 한 거지.
식당에 지불하는 요리가격에는 설거지값까지 포함돼 있다고 보잖아. 그러니깐 집에서 하는 요리도 설거지까지 끝내야 진짜 요리라고 할 수 있어. 요리를 한다면 꼭 마무리까지 깔끔하게 하길 바랄게.
너무 잔소리만 했나? 그게 다 우리 잘 되자고 하는 말 아니겠냐? 마지막으로 비밀 하나 말해줄게. 아내에게 요리를 잘해주면 아내가 행복해지고 그러면 너 혼자 외출할 때, 잔소리가 조금씩 줄어들 거야.
그때. 바로 그때.
우리끼리 만나서 우리가 스무 살에 자주 갔던, 연기자욱한 연탄삼겹살집에 가서 찐하게 한잔 하자.
그럼. 다들 즐거운 요리들 하고. 곧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