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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명찬 Nov 09. 2023

요리의 기쁨

영화의 한 장면처럼 - 메밀국수

메밀국수는 잘 삶기만 하면 되니 이처럼 쉬운 요리도 없다. 조리 과정에 비해 맛이 근사하기 때문에 입맛 없을 때 쉬이 해먹기도 좋다. 평소보다 많이 먹어도 소화가 잘되니 속이 편안하다. 같은 양을 먹어도 밀가루면을 많이 먹었을 때의 더부룩함과는 확실히 다르다. 이래도 저래도 메밀은 참 좋다. 


메밀을 삶을 땐 하나만 지켜주면 되는데 물을 충분히 넣고 삶을 것. 수분을 많이 끌어당기는 메밀은 일반 밀가루면보다 넉넉하게 물을 넣고 삶아야만 잘 삶긴다. 물이 조금만 적어도 메밀은 잘 익지 않는다. 그러니 처음부터 큰 냄비에 넉넉하게 물을 끓이는 것이 중요하다. 메밀 함유량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평균적으로 메일국수는 6~7분 정도 삶는다. 참고로 밀가루 소면이 2~3분, 중면이 4~5분 정도 삶는다.


메밀국수를 삶은 후에는 찬물로 메밀 전분을 잘 씻어줘야 하는데 한 손으로 설렁설렁하지 말고 두 손을 사용해 면을 빨듯이 정성스레 비벼가며 씻는다. 물을 여러 번 갈아가며 전분기가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깔끔하게 씻는 게 포인트. 


잘 삶기고 전분기도 잘 빠진 면이 준비되면 사실 요리의 끝이나 다름없다. 


메밀국수용 국시간장과 깨가루를 넣어 버무린 후 들기름을 듬뿍 넣고 김가루와 쪽파를 올리면 근사한 ‘들기름메밀국수’가 완성된다. 이때 들기름은 비빔국수에 마지막으로 넣는 참기름처럼 한번 두르는 것이 아니고 파스타에 올리브유를 넣듯이 듬뿍 넣어야 한다. 이대로 담백하게 먹는 걸 추천하지만 기름진 걸 잘 못 먹는 사람들은 청양고추를 다져서 함께 넣어도 좋다. 들기름메밀국수를 먹을 때는 반찬을 최소화해서 먹는 게 좋다. 특히 김치류는 김치 맛이 너무 강해서 메밀의 향을 즐기기가 어려우니 함께 먹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김치가 꼭 있어야 하는 사람들은 김치를 찬물에 빨아서 잘게 썰어 함께 먹으면 메밀국수의 향과 김치의 개운함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조금 늦게 일어난 주말 점심, 브런치로도 좋고  

부담스러운 안주는 싫고 가볍게 한잔하고 싶은 저녁, 막걸리나 청주와 함께 곁들여도 좋다. 


이거 맛 들이면 한동안 다른 국수는 못 먹을 정도.




냉동실에 얼려둔 시판냉면육수에 오이를 듬뿍 올리면 훌륭한 '냉메일국수'가 완성된다. 이때 냉면육수는 소고기육수보다 동치미육수가 훨씬 잘 어울린다. 메밀이랑 먹기 위해서는 역시 국시간장을 조금 첨가하는 것이 좋은데 시판육수가 워낙 간간하니 시원한 물을 더 넣어 간을 잘 맞추는 것이 좋겠다. 정리하자면 동치미육수에 쯔유 한 스푼 넣고 입맛에 따라 생수로 간을 맞추면 된다는 것!



이도 저도 귀찮다 혹은 사람이 네다섯 명 있다 싶으면 더 쉽고 맛있게 먹는 방법이 있다. 

먼저 적당히 간간하고 달달한 메밀국수용 국시간장 육수를 한 주전자 만든다. 시중에 나와 있는 국시간장은 구하기도 편하고 맛도 대부분 기본 이상이니 아무거나 골라도 상관없다. 생수와 국시간장으로 간을 잘 맞춘 후에 레몬과 청양고추를 넣어 상큼하고 매콤한 향을 첨가한다. 그리고 메밀국수를 삶아 잘 씻어둔다. 


이왕이면 둥근 상을 펼쳐 옹기종기 무릎이 닿도록 모여 앉고 상 가운데 메밀국수를 산처럼 쌓아놓는다. 작은 그릇에 주전자채로 준비된 국시간장을 담아 옆사람에게 넘기면 모든 준비 완료. 커다란 메밀산을 함께 후루룩 무너뜨리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아! 이거 언젠가 일본 영화에서 본 장면이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며 묘하게 따뜻해진다. 무를 갈아서 함께 먹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무가 없거나 귀찮을 땐 양파를 얇게 썰어 함께 먹어도 괜찮다. 향이 강하지 않은 쪽파와 김가루는 당연히 필수!


참고로 메밀과 모밀, 소바는 모두 같은 말이다. 모밀은 메밀의 함경도 사투리, 소바는 메밀의 일본어.

그러니 표준어는 ‘메밀’이 맞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밀’로 더 많이 알고 있는 건 그만큼 그동안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모밀로 불려왔기 때문이다. 메밀을 식재료로 많이 썼던 함경도의 음식은 '메밀’보다는 ‘모밀’이 음식의 이름으로 많이 붙여졌는데 식당에서 그걸 그대로 사용하다 보니 그대로 대명사화 된 것이다.


‘아바이순대’를 ‘애비순대’ 혹은 ‘아저씨순대‘라고 부르는 것이 이상한 것처럼. ‘모밀국수’를 '메밀국수‘라고 부르는 것이 누군가에겐 익숙하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 메밀이 맞니, 모밀이 맞니 싸울 필요가 없다. 표준어는 알고 있지만 사투리로 안 부르면 맛이 안나는 단어는 너무나도 많다.


누군가에겐 ’정구지‘가 그렇듯 나에겐 '모밀'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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