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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명찬 Nov 16. 2023

요리의 기쁨

국물을 남겨줘 - 조개탕


얼마 전부터 아침에 일어나 한 시간 정도 산책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집을 나설 때마다 고민했지만 지금은 잠시라도 산책을 하고 오지 않으면 몸이 근질근질해 참을 수가 없다. 오늘처럼 비가 예쁘게 오는 날에는 우산을 쓰고 산책을 한다. 자연스럽게 평소보다 조금 더 천천히 걸으며 걷기에 빠져든다.

비가 그치면 다시 쌀쌀해지겠지?


뜨끈한 조개탕이 생각났다. 그리고 차가운 소주도.



조개탕은 해감만 잘하면 요리를 다 한 거나 다름없다. 그러니 누구나 쉽게 끓일 수 있다. 평소에는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바지락으로 끓여도 훌륭하지만 특별한 날에는 백합을 사러 굳이 수산시장까지 간다. 백합 특유의 깊은 맛은 바지락의 맑은 맛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바지락이 언제나 만날 수 있는 편한 친구라면 백합은 인생이 힘들 때마다 나에게 조언을 전하는 속 깊은 선배 같다.


백합으로 낸 육수는 확실히 품위가 있다.


앞서 말했지만 조개탕의 성패여부는 해감에 달려있다. 이미 다양한 해감법들이 알려져 있어 특별히 더할 것은 없으나 조개탕을 끓일 때 빠뜨리지 않고 하는 나만의 방법은 하나 있다. 해감된 조개를 물에 넣고 약불에 끓이면서 해감을 한번 더 하는 것이다. 조금 귀찮은 과정일 수 있지만 이렇게 하면 완벽한 해감이 될 수 있다. 일단 조개가 잠길 정도로 물을 넣고 약불로 끓인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약불로 끓이는 이유는 조갯살이 빠르게 익어 질겨지는 것을 방지하게 위해서다. 조개가 조금씩 입을 벌려갈 즈음이 되면 조개를 하나씩 건져낸다. 그렇게 조개를 건져낸 후 육수를 조심스럽게 따라내면 생각보다 많은 양의 부산물이 냄비 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준비된 육수에 간을 맞춰 약불에 서서히 끓여주다가 마지막에 조개를 넣어 살짝 익혀주면 끝. 이미 한번 끓은 것이니 이때도 뭉근하게 끓여 육수의 맛이 너무 진해지는 것을 방지한다.

소금, 후추, 청양고추를 넣고 끓이다가 마지막에 대파를 넣어 마무리하는 것이 가장 좋아하는 요리법인데 이때 대파는 설렁탕에 넣는 것처럼 마지막에 듬뿍 넣는다. 대파향이 은은하게 퍼져 있는 백합탕은 맑게 우려낸 곰탕 같은 맛이 난다. 때때로 향이 강하지 않는 버섯이나 두부를 넣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다른 재료를 넣지 않는 편이다.


주의할 점은 절대로 습관처럼 마늘을 넣지 말 것! 마늘은 향이 너무 강해 조개탕 특유의 은은한 맛을 해친다. 조갯살을 미리 발라 두지도 않는다. 취향차이겠지만 소주 한잔을 마시고 조갯살을 하나씩 빼먹는 게 조개탕을 먹는 재미인데 다 발라두면 그 운치가 사라진다.

파전이 나오자마자 젓가락으로 쭉쭉 찢어 놓는 것이나 조개탕의 조갯살을 다 발라두는 것. 나는 그런 게 너무 멋없다.   



곰탕처럼 뽀얀 육수가 우러나는 백합탕


조개탕은 언제나 당장 필요한 양보다 넉넉히 끓인다. 남은 조개탕에 각종 야채를 넣고 밥을 넣고 끓이면 훌륭한 죽으로 변신하기 때문. 조개탕을 끓인 후, 한잔하면서 죽이 익기를 기다려도 되고 남은 조개탕을 조갯살만 잘 발라낸 후 냉장고에 넣어둬다가 다음날에 끓여 먹어도 된다.


맛도 맛이고 해장에 이만한 것이 없다.


구호처럼 외웠으면 좋겠다.

조개탕은 넉넉히! 남은 조개탕은 죽으로!


남은 조개 육수로 만든 백합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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