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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 작 Nov 19. 2023

망치들고 공상에 빠지면 안되는데

피카소에게 영감을 받은 본질적인 책상

우리집엔 4개의 방이 있다. 온갖 물건을 때려넣은 창고방, 아들방, 아내방, 부부침실.

그렇다. 내 방이 없다. 그러니 내 책상도 없다. 내 책상이 없으니, 책을 읽을수도 없고, 위대한 작품을 쓸 수도 없고, 안방에서 잠옷입고 게으르게 라면을 먹을 수도 없다.

아내가 "당신 책상은 거실에 두면 되잖아."라고 했지만, 그건 '어느 날 출근했더니 내 책상이 복도에 나와있는, 권고퇴직 당하기 직전의 과장'의 모습인 걸 왜 모르니?

헉!...설마 우리집에서 나의 처지가? 

분노에 못 이겨 책상을 사서 부부침실에 꾸역꾸역 밀어넣어봤자, 좁아진 침실은 삶의 질을 떨어뜨릴 뿐이다.

오랜 고민끝에 깨달음이 왔다.

현자들은 이렇게 말했지. "존재는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다."

나는 위대한 현자에 가까운 남편이므로 그런 책상을 뚝딱 만들었다.

 크기가 다른 짜투리 합판 2개를 붙였다. 평소엔 접어놓고, 쓸 때는 창문턱에 걸치기만 해도 되는 구조이다.


안쪽에 경첩 두개를 달아 폴딩이 되도록 하고, 바깥쪽 연결부분은 세웠을 때 안쪽으로 접히며 책상이 무너지는 걸 잡아주는 고리를 달았다.

기성품이란 건 대부분의 사람이 쓸 가능성을 두고 물건을 만들지만, 직접 만드는 건 나 이외의 사람들의 니즈를 고려할 필요가 없다.

상판이 약해보이지만, 갑자기 아내가 책상위에 털썩 앉지만 않으면 괜찮다.

누가 다리를 세게 쳐서 확 접힐 수도 있지만, 아내가 화나는 일만 없으면 괜찮다.

손님이 안방에 들어와서 구경할 게 아니니, 남의 평가와는 상관없이 딱 내가 만족할 정도만큼만 만들면 된다.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듯 하지만 정말 뿌듯한 '기능'은 책상의 크기 조절이 된다는 점이다.

   

창턱으로 깊이 넣으면 컴팩트한 크기가 되고, 살짝 걸치면 회장님 책상처럼 쓸 수 있다는 것.

엄청난 기능을 탑재했지만, 또 이렇게 심플하다니!

'피카소가 복잡한 황소그림을 그리고 그려서, 결국 몇 개의 선으로 황소를 표현했듯이, 이것 역시 피카소 황소그림의 책상버젼이라고나 할까?'

라고 아내에게 얘기했더니, 아내가 책상위로 점프할 준비를 다... 


비용:

라왕합판15mm (짜투리를 이용했지만, 가격으로 치면 대략 1만3천원정도?) +경첩(2천원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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