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그 국물, 마음까지 데웠다

by 에이프릴

그 쌀국수집은 정말 작은 곳이었다. 간판도 낡았고, 유리창엔 색이 바랜 "포 나" 스티커 메뉴판이 삐뚤게 붙어 있었다. 이 동네에 그렇게 오래 살았는데 이런 가게가 있는 줄은 몰랐다. 백수가 된 뒤, 점심시간에 무작정 동네를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곳이었다. 그날도 혼자였다

“쌀국수… 되나요?”

“예, 닭고기… 괜찮아요?”

조심스럽고 약간 어눌한 발음. 하지만 그 말 속엔 묘하게 따뜻한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날의 쌀국수는 말도 안 되게 맛있었다. 맵지도 짜지도 않은데 묘하게 감칠맛이 있었고, 뭔가 그리운 맛이었다. 베트남 여행에서 길가 목욕탕 의자에 앉아 먹었던 바로 그 맛. 국물 한 숟갈 들이켰을 뿐인데, 속이 따뜻해지면서 나도 모르게 말했다.

“여기, 진짜 베트남 맛 나요. 그 베트남 고추의 알싸한 맛이 항상 그리웠는데, 딱 그 맛이에요.”

그 말에 사장님이 잠깐 놀라더니, 쑥스럽게 웃었다.“고맙습니다. 저… 한국 오기 전에, 엄마랑 많이 만들었어요.”

그렇게 나는 단골이 되었다. 쌀국수뿐 아니라 분짜, 반미, 반쎄오… 사장님이 자신 있게 하나씩 내놓는 메뉴를 하나씩 섭렵했다. 메뉴판에 없는 음식도 때때로 선보이셨고, 내가 만든 볶음밥 도시락을 건넨 날에는 이런 대화도 오갔다.

“사장님, 베트남 사람도 김치볶음밥 좋아하나요?”“어… 좋아요! 냄새 아주 좋다! 와우!”

작은 가게 한쪽에서 볶음밥을 함께 먹었다.“친정엄마가 김치 진짜 맛있게 담가요. 이 김치볶음밥은 김치가 다 했어요. 어때요?”그는 수저를 내려놓고 말했다.“이거, 메뉴 넣을까 봐요. 김치볶음쌀국수?”

우린 한참을 웃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사장님 이름은 ‘떤’. 서른일곱이라고 했다.(헐, 사장님한테는 미안하지만 나보다 동생이었다니. 실수할 뻔했다.)

한국엔 온 지 10년쯤 되었다고 했다. 처음엔 경기도 외곽의 어느 공장에서 일했단다. 낮엔 자고 밤엔 일하고. 숙소는 비닐하우스였다.

“겨울엔 손이 얼고, 여름엔… 숨도 못 쉬어요. 비닐하우스, 너무 더워요. 사람 아닌 거 같았어요.”

다섯 해쯤 그렇게 지내고 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이건 사람이 사는 게 아니구나.’

그렇게 모은 돈으로 지금의 가게를 열었다.“처음엔 진짜 손님 없었어요. 하루에 한 명, 두 명… 한국 사람들, 고수 냄새 싫다, 육수 이상하다… 많이 말했어요.”

그래서 그는 고수는 따로 내놓고, 국물도 조금 맑게 바꿨다.“근데, 맛은 못 바꿔요. 내 엄마 레시피니까.”

그 말이 왜 그리 울컥했는지. 우리 엄마 생각도 아주 잠깐, 스쳤다.

사장님은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단골에게는 먼저 말을 걸고, 아이들에겐 베트남 사탕도 쥐어줬다. 하지만 가끔은, 진심이 부서지는 날도 있었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 식당 더럽다, 국물 이상하다, 김밥천국보다 비싸다… 그런 말 듣고 나면, 집 가서 울었어요.”

그 말을 듣고 나는 진심으로 화가 났다.

“사장님, 그런 사람들은 쌀국수가 아니라 인성을 덜 익힌 거예요.”

“하하하! 맞아요, 인성 덜 익었다! 에이프릴씨, 말 참 재밌다.”

그날 우리는 국물 다 비우고, 베트남식 연유커피까지 마셨다. 혈당 스파이크가 걱정될 정도로 달지만, 그날은 그냥 ,다이어트는 포기하는 날이었다. 맛있으니까.

그는 고향 이야기, 옛 여자친구 이야기까지 했다. 가끔 외롭다며, 한국말이 능숙해져도 마음은 여전히 벽 너머에 있다고 했다.

“근데 요즘은 좋아요. 가게 하고, 이렇게 이야기하고… 내 말 들어주는 사람 있어요.”

나도 웃으며 말했다.

“사장님 쌀국수 덕분에 저도 백수에서 벗어날 것

같아요.”

그 후로 나는 매주 한 번쯤 그 가게에 갔다.어떤 날은 새로운 레시피를 함께 이야기했고, 어떤 날은 그냥 조용히 국물만 비우고 나왔다.

언젠가 그는 내게 말했다.

“언제 베트남 오면, 우리 엄마 집 가요. 엄마 국물, 내 것보다 더 맛있어요.”

나는 그 제안을 진심으로 받아들였다.사람이 국물로 연결될 수도 있다는 걸, 그 작은 가게에서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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