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내 진심, 반숙 계란에게 졌다

by 에이프릴


내가 제일 설렜던 순간이 언제였지?

떠오르는 건 늘 비슷했다.

여행 갈 때, 숙소 고를 때,
낯선 골목을 걸을 때.

시골 스테이에서
주인 아주머니랑 군고구마 먹으며 수다 떨던 그 순간.

그리고 그걸 외국어로 누군가에게 설명할 때.
그게 진짜 좋았더라고.

그래서 메모장에 적었다.

외국어, 여행, 숙소, 사람.
내가 제일 좋아했던 순간들을 연결해보자.
작아도 괜찮아. 내 식대로 해보자.”

그날부터 나는 ‘에이프릴’이라는 이름으로 살기로 했다.

인스타엔 내가 좋아하는 숙소사진들을,

유튜브엔 짧은 여행 기록을 올려보기로 했다.
작지만 진심인 콘텐츠, 시작해보는 거다.

첫 번째 여행지: 청송.
검색창에 ‘조용한 시골 민박’이라고 쳤을 뿐인데,
고무대야랑 무말랭이 널린 사진 한 장에
심장이 ‘여기다’ 했다.
숙소 이름은 해달별민박. 여긴 찐이다.

전화를 걸어
“혹시 외국인 친구랑 같이 가도 될까요?” 했더니,
사장님이
“와~ 외국사람이 여기 뭔 볼 게 있다고ㅋㅋ 오이소~”
하시며 웃으셨다.
그래, 이런 반응… 바로 통과.

인스타에 일본어로 소개글을 올렸다.

“일본 친구들과 꼭 가보고 싶은 민박이에요!
이런 분위기 좋아하는 분 댓글 주세요 :)”

그랬더니 진짜 댓글이 우수수.
그중 ‘에리카’라는 여행 덕후 느낌 팍 나는 일본인 여성과 대화가 터졌다.
성격도 너무 잘 맞았고,
나는 또… 바로 던졌다.

“혹시 진짜 한국 오시면, 저랑 여기 같이 가실래요?”

에리카는 2주 뒤 한국에 올 예정이었고,
나는 인생 첫 콘텐츠 손님을 맞이하게 되었다.

청송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요로시쿠오네가이시마스~” 하고 인사하며 활짝 웃는 그 모습에
진짜 뭉클했다.

아, 이거다.
내가 왜 이걸 하고 싶었는지 단박에 떠올랐다.

숙소는 정겨움 그 자체.
도토리묵, 깻잎장, 된장국을 호호 불며 먹는 마당에서의 식사.
에리카는 감동한 눈빛으로
“오바아짱노 아지…” 하고 속삭였고,
할머니는 뜻도 모르면서
“외국사람도 잘 묵네잉~” 하시며 뿌듯하게 웃으셨다.

그날 밤,
서툴게 찍은 영상엔

“외국인도 반한 청송의 소박한 하루”
라는 제목을 넣었다.

며칠 뒤, 유튜브에 영상을 올렸고,
내가 팔로우하던 일본 여행 블로거가,
블로그에 내 영상 링크를 소개해줬다.
‘다음에 꼭 가보고 싶은 한국 시골 민박’이라는 제목 아래,
내 영상이 조심스레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이런 댓글이 달렸다.
“당신 영상 덕분에 저도 한국 시골에 가보고 싶어졌어요.” — 리카, 오사카

나는 소파에 앉아 맥주 캔 하나 따며 중얼거렸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설레지.”

그리고 며칠 후.
또 DM이 왔다.

“그 민박 너무 예뻐요.
제가 예약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나요?
한국어는 전혀 못해서요. 대신 후기 꼭 남길게요!”

아이고야~ 그럼요.
바로 사장님께 연락하고,
중간에서 통역까지 다 하고,
“좋은 여행 되세요 :)” 인사하고,
스스로에게 뿌듯함 세 스푼 추가했다.

그리고 그날 밤 9시.
DM이 도착했다.

“숙소 안에 거미가 있었어요.
이런 데를 추천하신 건 좀 실망입니다.”

음… 거미?
시골 민박인데… 그럴 수도 있지 않나요?라고

하고싶었지만,

나는 최대한 예의 바르게 답장을 보냈다.

10시 반, 또 왔다.

“침대 너무 딱딱해요. 혹시 다른 방 없나요?”

12시, 전화.

“방이 너무 추운 것 같아요.
사장님이 전화를 안 받으세요.
대신 좀 해결해주시겠어요?”

‘잠깐만요.
저 지금 거기 없거든요.
나, 숙소 직원 아니거든요…’

아침엔 또 이랬다.

“조식이 너무 간단했어요.
계란프라이는 왜 반숙이죠?

전 완숙 아니면 입에도 안 대요”

아…
이건 진짜 계란에 나도 뭐라고 하고 싶었다.
넌 왜 그 타이밍에 뒤집혔니?

며칠 뒤, 결정타가 날아왔다.
인스타그램을 보다 말고,

나는 휴대폰을 들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바로 그 진상이,
이불 끝에 매달린 거미,

흐물흐물한 반숙 계란,
창문도 없어 보이게 구도를 잡은 방 사진까지—
일부러 지저분하고 답답하게 보이도록 찍은 사진들이었다.
그걸 한데 묶어 올려놓고 이렇게 쓴 거였다.

“로컬 감성 체험이라더니,

감성 코스프레에 속았다.
방은 낡고, 서비스는 엉망. 추천 비추.”

캡션엔

#속았다 #민박후기 #비추천 #더러워 #한국여행

댓글엔

“봤는데 이상하더라”, “안 가길 잘했네~”

같은 말들이 줄줄이 달려 있었다.

나는 그 순간,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더니…
진짜 내가 둘리가 되어버렸네.’

진짜 억울했다.
난 그냥, 좋은 걸 소개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진심이었고, 그게 누군가의 따뜻한 기억이 되길 바랐는데.

돌아온 건, 거미랑 반숙 계란에 대한 불평.
그리고, 차갑게 달린 비난들 이였다.


그 며칠 동안, 아무것도 손에 안 잡혔다.
내 진심이 막 우스워진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떠났다.

일본.

시코쿠 지역의 조용한 마을.
아이랑 남편은 집에 두고,
혼자만의 리셋 여행.

도착하자마자, 뭔가 달랐다.
공기가 다르고, 사람들이 다르고, 속도가 달랐다.

민박 주인은 나를 '고객'이 아니라 진짜 ‘손님’으로 대했다.
친절하지만 거리를 지켰고,
따뜻하지만 과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나는 그걸 보며 처음으로 느꼈다.

아, 진심은 거리도 필요하구나.
너무 가까이 다가간다고 다 좋은 건 아니구나.

내가 그동안 놓친 건 ‘균형’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당한 간격,
배려의 타이밍, 선의의 온도.

그날 밤, 작은 다다미방에서 조용히 생각했다.

“진심도 좋지만,
그 진심을 전할 방법도 내가 배워야 하는 거였구나.”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나는 조용히 메모장에 다시 적었다.

“다음엔, 내 진심에 ‘거리’를 더해보자.
과하지 않게, 부담스럽지 않게.
그래도 나는 계속 사람을 좋아할 거니까.”

진심은 여전히 내 안에.
이번엔 조금 더 단단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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