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피 투게더

통제할 수 없는 것에 통제당할 때 우리는 그것 또한 아름답게 여긴다.

by 만두다섯개

지루한 게이 영화 같아 초반부를 지겹게 보다 결국 잠이 들 것 같아 다음에 보기를 기약하며 꺼 버렸었다. 우연히 영화가 기억나 얼마 전 돌려보았다.


다시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는 것보다 실수로부터 파생된 고통을 감내하기가 더 어려워 우리는 항상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해피 투게더에서는 행위의 실패가 아닌 행위의 따스함과 올바른 방향을 조명처럼 비춘다. 행위란 '사람이 어떤 의지를 가지고 행하는 짓'이라고 한다. (출처 : Oxford Languages) 보영과 아휘는 서로 사랑한다. 쉐이프 오브 워터라는 영화 제목처럼, 사랑의 형태는 무엇일까?

이것은 절대적 선이나 영성적인 것이 아니다. 하물며 무엇도 부정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긍정이다. 그 속성으로는 지속가능하며, 서로 성장시키고, 있는 그대로를 이해해 준다. 그에 반해 그때의 모습이 지속가능하지 않았더라도 그들은 그들 스스로의 영원성을 믿었고, 서로를 성장시키지 않더라도 무한한 성장을 꿈꾸게 만드는 원동력으로써, 그들을 서로 와해시키더라도 함께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버틸 수 있을 만큼 밤을 이루지 못하다 보면 어느샌가 보영은 아휘에게 돌아왔었을 테니 아휘는 욕망과 염원 사이에 그와 함께 서 있었다. 상대방의 존재를 스스로의 욕구에 투영시켜 투명해 그릇됨을 알면서도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어떤 면에서는 그들이 서로에게 최선이라는 최선을 다했을지도 모르며 어쩌면 그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건강한 사랑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포기해야 하고 무엇을 고집스럽게 남겨야 하는가. 아휘는 자신에게 돌아온 보영에게 자신의 본심을 여는 듯 닫을 듯 쉽사리 허용하지 않는다. 마치 고장 나 제대로 닫히지 않아 바람과 벌레가 슝슝 들어오지만 그 기능은 하긴 하는 아휘의 방문처럼 말이다. 여휘와 보영의 관계는 아슬아슬하다. 서로를 위하는 의도가 담겨있으면서도 거칠고 투박하게 표현하는 그들이 애처롭기만 하다. 하지만 아휘의 환경은 타국에서 살아가려고 노력하기에 그 애처로움을 느낄 새도 없이 그는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일을 하러 간다. 연락 없이 며칠간 밖에 있다 홀연히 돌아온 보영에게 아휘는 신경질을 낸다. 그에겐 보영이 변화할 거라는 일말의 기대도 없지만 그를 잊지도 못한다. 기다리는 것이 잠인지 그인지를 잊어버린 채 잠에 들지 못한다. 좋은 관계가 아니라는 걸 알아도 그는 그 관계를 다시 탐닉한다. 열심히 타국에서 살아가면서도 진정 놓지 못하는 그릇된 관계로부터 아휘는 위안을 얻는다. 아휘가 보영의 여권을 숨기고 다시 돌려주지 않았던 이유는 그가 둘러대는 변명이 듣기 싫어서라고 고백하는 독백을 나지막이 내뱉는다. 나는 이전에 쓴 글에서 사람이 아닌 그 사람의 행동이 미운 거라면 아직 상대방에 대한 마음이 남아있을 거라고 했다. 아휘는 보영에게 그와 그에 대한 사랑이 남겨져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랑은 이미 그가 살았던 부둣가의 더럽고 낡은 방에 남겨놓고 기약 없는 다음을 기약하며 그는 폭포수를 경유해 그의 길로 떠났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타인을 미워하는 게 가능하다면, 아무 말도 없이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상상력인지 본능인지 욕구인지 존경인지 동경인지 알 수 없는 추상적인 것. 이미 경험해 본 사람들은 진절머리를 내면서도 그 힘에는 침묵으로 인정하며 알지 못하는 사람들 또한 동경하는 것. 보영은 아휘의 방으로 들어가 살게 된다. 그는 아휘와 함께 지냈던 곳에서 반대 입장이 되어 올지도 모르는 아휘를 기다리며 살아갈지도 모른다. 아휘는 그가 원래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간다. 사랑에 패배한 사람은 죽지만 않는다면 다시금 깨어나 본능의 자취를 쫓아갈 것이다. 이것은 거스를 수 없는 중력과도 같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수와도 같은, 보영과 아휘가 이어질 수 없지만 이어졌던 그런 것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거부되는 통제와 본능적으로 용인되는 자유를 가지고 살아간다. 통제 없이는 우린 형체도 남지 않는 모래알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여러 시간대에 엮일 사람을 한 시간에 만나려고 하는 지인에게 스스로의 행동이 두렵지 않냐고 물어봤을 때, 그는 그에 대한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고 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라 이해하기 어려웠다. 가까운 사이의 사람은 나의 사생활을 개입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의 사생활은 신성하고 누구도 불가침하다. 우린 결핍을 있는 그대로 두기보다 더욱 크게 만들거나 메꾸고 싶어 하기 때문에 이 조약은 타인과 함께라면 유지될 수 없다. 그리고 그 사실을 본능적으로 망각한 채 옥시토신이라는 유일한 구원을 기다리며 사랑의 도파민 수용체들이 열어주는 행복의 문을 마음 편히 열며 상대방을 기다린다. 그 고유한 성질을 가지고 있지만 너무나 작아 손에서 흘러내리는 모래알처럼 우리는 사랑을 시작한 순간부터 불 꺼진 드넓은 방을 들어가게 된다.

보영과 아휘의 방은 초라한 등불과 천장이 켜져 있다. 보영은 아휘의 순종을 사랑하지만 지루해하고, 아휘는 보영의 자유분방함을 사랑하지만 지쳐한다. 편안함과 경외심이 그들을 엮었지만 이내 지루함과 두려움으로 시시각각 바뀜을 그들은 견디지 못한다. 보영은 아휘가 몸싸움을 한 것에 대해 자신과 동질감을 느껴 만족감을 느끼지만, 아휘의 불쾌함으로 이내 그가 자신과 다름을 인지한다. 나와 상대방의 다름이 그토록 아름답게 보이는 시점은 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걸까. 처음이기에, 잘 몰라서, 아직 성숙하지 않아서, 용기가 없어서, 그가 너무 좋아서, 그를 혼자 내버려 둘 수 없어서 등의 수만 가지 납득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우리의 결정을 변호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와 가까워짐에 그 존재가 너무나 눈부신 햇살과 같을 때, 우린 햇살을 비추는 달이 될 수 없다면 그런 존재는 내가 해결해야 할 사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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