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클레어는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려면, 무엇인가에 대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의 성격대로 그는 수많은 생각들을 한다. 이처럼 책은 일련의 사건을 나열하기보다 싱클레어의 독백과 그가 소통하는 순간의 대화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는 스스로의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오기 위해 모험을 떠나며,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을 상처 입힌다. 아직 나는 이 책에 대한 해석이나 관련한 자료를 읽지 않았기에, 내용이 왜곡되거나 과장 혹은 축소한 내용이 있을지 모른다.
싱클레어는 주변을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독백을 통해 그 과정을 해소하려고 한다. 데미안은 그에게 나타난 현실적인 해결책 중 하나였다. 크로머를 물리쳐주고, 자신이 희구하는 것들을 데미안의 도움을 받아 구체화하게 된다. 데미안의 신념으로 삶을 살아가기 위해 기존의 세계인 알을 깨야 한다는 말은 싱클레어에게는 하나의 센세이션을 넘어선 말이었을 것이다. 마치 진화가 선택 가능하다는 것 처럼 말이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염원대로 그의 알을 깨는 데 성공한다. 그와 함께하길 원하는 사람들과 지내고, 그들의 염원대로 행동한다. 작가는 싱클레어의 선택지를 유일한 해결책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그의 선택지는 그저 행복해지기 위해 선택한 수동적의 삶의 또다른 모습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작가는 이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묘사하지 않는다. 데미안은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는 절대적인 존재(신)가 아니라 여러 신의 모습을 담으려고 하는 한 사람에 불과하다. 그리고 인간이 어떤 행위(알이라는 세계를 깨고 날아감)를 통해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 보다도 그 알을 깨는 행위가 일생에 걸쳐 진행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데미안의 냉철하고 이성적인 부분만 갖추고 있는 이상적인 모습만이 결코 아름답지 않음을 작품에서는 대변한다. 성장은 고통을 수반한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 이상적인 모습을 희망하며 샘솟는 엄청난 동기부여와 노력들이 허망하게 보일 정도로 이상적인 모습은 현실적으로 결코 다다를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모습이 상상했던 이상적인 모습과 다를지도 모른다. 죽을 때까지 계속 스스로의 이상에 도전하고 실패할 것이라는 것을 인정해야야만 한다. 이상으로써의 노력의 헌신이 개인마다 발현되는 진리라면, 현실로써의 노력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고 단지 죽을 때까지 시간 내에서 노력하는, 한 시간의 점심시간 내 어떤 식사를 해야 완벽할까 고민하는 것과도 같은 모순과도 같다. 나는 데미안을 모순을 설명하기 위해 책을 썼다고 생각한다.
꿈과 현실보다 이상과 모순을 독자에게 남기기 위해 데미안과 에바부인을 소설로써 싱클레어라는 우리에게 보여준다.
남성은 가족과 사회를 지키며 내부보다는 외부의 어떤 형태를 지키기 위해 단련되어야만 한다는 통념이 존재한다. 이런 통념들로부터 자유롭게 나아가야 한다.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것의 작은 해석 중 하나는, 사회와 국가가 요구했던 의무와 짐들을 내려놓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이다. 다른 이들이 요구하는 것들을 내어주어야 하는 질문에는 그렇게 하게 내버려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것이 나에게 손해를 입힐지언정 좋은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다. 마찬가지로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하며 요구할 테니. 우리는 조금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것에 다가야 한다. 예를 들어 사회적 통념이 바뀌더라도 영향이 가지 않을 만큼의 견고한 본인만의 것들을 만들면, 모든 것은 변할지언정 우리의 가치는 깨진 알 처럼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