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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스파 Mar 16. 2024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길....

마지막 수업 시간에 조심스럽게 왜 학원을 그만두는지 형에게 물었다.

학원 원장 입장에서 그만둔다고 하면 그냥 학원에 불만이 있거나 더 나은 곳으로 가려나 보다 생각하면 되겠지만 이 경우엔 뭔가 느낌이 좀 달랐다. 어머님의 마지막 문자에 죄송하다는 말이 너무 많이 등장하고 ‘갑작스럽게’, ‘어쩔 수 없이’란 단어들이 자꾸 눈에 밟혀서 그동안 매우 친하게 지냈던 형제들이었기에 빙 둘러서 이유를 물어봤다.     


아버지가 건축 일을 하청받아 하고 계시고 그곳의 책임자이기도 한데, 하청을 준 업체에서 임금을 주지 않아 모두 아버지가 떠안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아이들이 그만두는 이유가 생활비를 줄이기 위한 선택이었고, 살고 있던 집에서도 나가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토요일 조금 이른 퇴근을 한 후, 어떻게 하면 상처가 되지 않을 얘기들로 마음을 전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 어렵사리 핸드폰을 들었다.   

  

“어머님 안녕하셨어요?

제가요 어머님..... 죄송하게도..... 아이들에게 아버님 얘기를 들었습니다.

저도 예전에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요...... 어머님께서 얼마나 힘든 상황을 이겨내고 계실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특히나 아이들 공부를 멈춰야 하는 상황에서 얼마나 마음 아프고 그러시겠어요......

저기..... 어머니...... 저는..... 정말 괜찮으니까요 아이들 그냥 학원에 보내주세요...

진짜로 괜찮으니까요..... 수업료는 내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이들이 어려운 상황을 너무 많이 느끼지 않고, 아이들은 아이들답게 지금까지와 똑같이 지낼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아버님이나 어머님도 상황을 극복하는 데에만 집중하실 수 있을 테니까요....... 

어머님 진짜로 저는 괜찮으니까요 그렇게 하셨으면 좋겠어요...... “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없으셨고, 정적 속에 계속 흐느끼는 소리만 들려왔다.     


“원장님.... 말씀...... 너무 감사한데, 그럴 수는 없어요....... 애들도 둘인데 어떻게 저희가 염치없이......”    

 

“어머님 지금은 상황을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만 하십쇼. 아버님 어머님이 무너지면 아이들도 무너집니다. 맘 굳게 잡수시고 애들은 똑같은 일상을 느끼게 해 주시돼 파이팅 하셔서 꼭 이겨내십쇼. 그리고 나중에 아버님 사업이 다시 잘 되시거나, 애들이 훌륭하게 커서 자기 몫을 충분히 할 때가 되면 그때 제가 받지 못한 수업료 다 받겠습니다. 나중에 꼭 수업료 받는 날이 오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기다리겠습니다.”   

       

그로부터 5년이 흘러서 큰 아이는 등록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대학에 들어갔고, 동생은 이번에 기숙사가 있는 명문 고등학교에 입학해 2주에 한 번씩 여전히 학원 수업을 받고 있다. 


가끔 저녁에 막내를 데리러 오시는 아버님이 나를 보면 차에서 다급히 내리시며 90도로 인사를 하시는 통에 쑥스럽기도 하지만, 이제는 어머님 얼굴에서 웃음을 찾을 수 있고 시원한 여름과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는 집도 마련되어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다.     


이제 나의 목표는, 저 막내 놈 잘 가르쳐서 좋은 대학에 진학시키고 훌륭하고 따뜻한 사회인으로 만들어 수업료 받는 그날을 오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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