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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스파 Mar 18. 2024

충분한 아들, 부족한 아빠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학원 차에서 내릴 땐 항상 같은 멘트로 아빠에게 인사를 건네는 아들이다. 10분 뒤 집에서 만나게 될 아빠에게 아들이 건네는 인사치고는 조금 이상하다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 학원엔 막내가 원생으로 있다.

7년째 아빠가 원장인 학원을 다니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저 아이가 원장의 아들이란 것을 아는 사람이 없다. 심지어 선생님들조차도.....  

   

출신의 비밀을 알게 된다면 일단은 선생님들이 매우 불편해하실 거 같고, 혹시나 편애를 하시진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곤 하는데, 일반 부모의 입장이라면 환영할 일이지만 원장의 입장에서는 다른 아이들과 학습의 차별이라는 결코 원치 않는 일이 생길 수 있다는 생각에 철저히 비밀로 하고 있다. 사실 엄밀히 따지면 비밀로 한다기보다는 굳이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하지 않을까 싶다.     

 

공부머리가 좋은 편은 아니지만 워낙 성실하고 열심히 하는 친구여서 한 달에 한 번씩 담당 선생님이 작성하는 생활기록부를 보면 이번 달에도 열심히 해줬구나 하는 생각에 늘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하는 아이다.   

  

아들은 학원에 온 첫날부터 나에게 원장님이라고 호칭을 했다. 그리고 집 앞에 내려주는 차에서도 다른 아이들을 의식해서 인지 “감사합니다.”라고 깍듯이 인사를 하고 내린다. 사전에 호칭에 대해 정리한 것도 아니고 학원에 오면 출신의 비밀을 얘기해선 안 된다고 한 것도 아닌데 스스로 알려지는 게 본능적으로 꺼려진 게 아닌가 싶다.     


가끔 같이 공부하던 아이가 안 보이기 시작했을 때 아빠에게 슬쩍 왜 안 오는지 물어보기도 하는데, 그만뒀다고 얘기하면 순간 낙담하는 표정이 역력하게 드러난다. 친하게 지내던 아이여서가 아니라 아빠 학원의 원생이 한 명 줄어드는 것에 대한 걱정의 얼굴인데, 다행히 집에 가면 엄마에게 그런 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 아빠를 위해서인지 아니면 엄마를 위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아들의 재원 기간이 늘어날수록 엄마에게 비밀이 많아지는 아들이 되고 있다.      



매일 아침 계란밥에 김자반을 몰래 더 넣어 먹으려고 요리조리 눈치 보고, 게임을 하고 싶어서 화장실만 들어가면 1시간은 우습게 앉아 있는 아들이지만, 벌써 고등학생이 되어 코 밑이 거무스레해지고 친구들끼리 서울구경한다며 짠 여행 계획엔 박물관과 남산, 인사동거리를 넣어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 스케줄로 착각하게 만드는 아직은 순수한 아이다.     


새벽같이 등교해 학교에서 저녁까지 먹고 학원 수업을 듣는 아이가 참 많이 안쓰러운데, 힘들다 하면서도 웃음 잃지 않고 쉬는 시간에 수업이 없는 아빠 교실에 몰래 들어와 양 팔로 묵직한 하트 머리 위로 날려주곤 누가 볼까 쏜살같이 자기 반으로 뛰어가는 아들이 참 예쁘다. 쉬는 시간마다 편의점으로 달려가는 많은 아이들을 보며 너도 가끔 같이 가서 사 먹으라고 얘기를 해도, 너무 이른 나이에 부족함을 알게 된 아이인지라 스스로를 위해서는 돈을 쓸 줄 모르는 아들이어서 또 참 미안하다.     



나는 막내가 학원에 오는 날이면 늘 쉬는 시간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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