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을 때 집사람에게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다른 아이의 엄마가 얘기하길, 아무런 이유도 없이 우리 애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큰 아이 친구가 집에 가서 얘기를 전한 모양이었다. 여학생 한 명이 우리 애와 놀지 말라고 다른 애들을 부추기고 실제로 여러 명의 무리들이 큰 아이에게 위협적으로 행동을 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말도 안 되는 어떤 이유라도 있으면 모르겠지만, 이유 없이 그렇게 한다는 것이 도통 그네들의 심리를 알 수가 없었다. 예전에 일본에서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 일어나서 ‘이지메’라는 이름으로 사회 문제가 되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게 큰 아이에게 일어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심지어 우리 애는 남학생이고, 평소에 남녀 가리지 않고 많은 친구들이 있었던 아이였기에 왕따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조금 지난 후 알게 되었지만, 왕따를 주도한 그 여학생은 평소 큰 아이와 친하게 지내던 아이였단다)
생각건대, 아빠의 성격과는 전혀 다르게 평소 여학생과도 남자 친구들처럼 수다 떨기를 좋아하던 아이여서, 왕따를 주도했던 아이가 그런 모습 관련해 뭔가 기분이 나빴거나 혹은 질투와 같은 감정으로 그랬을 수 있겠다는 추측을 했다.
이유가 무엇이든, 아이들이 조직적으로 누군가를 괴롭힌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며, 그로 인해 큰 아이가 학교에서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것은 아빠로서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었다.
집사람이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보자 얘기했지만, 일단은 상황 자체는 말씀드려 선생님께서 조금 더 주의 깊게 봐주시길 부탁드리되, 해결을 위한 조치는 조금 기다려 달라 말씀드리라고 했다. 사건이 밖으로 꺼내지는 순간 모든 아이들이 알게 될 것이고, 여전히 큰 아이는 그 아이들과 학교를 함께 다녀야 하기에 더 큰 부담을 가지게 될까 걱정이 되었다.
집사람은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주동자급 아이들을 포함해 큰 아이 친구 모두를 놀이동산 같은 곳에 데려가서 놀도록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아무래도 아이들이니 서로 웃으면 놀다 보면 다시 예전처럼 지낼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이었을 텐데, 그 큰 공간에서 또 끼리끼리 어울리게 되면 말짱 도루묵이 될 수 있겠다 싶어서 그것도 잠시 보류하자고 했다.
하지만, 아이가 더 고통받기 전에 어떤 방법으로든 빨리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
그 주 주말에 블루클럽에 가서 안 그래도 짧았던 머리를 훈련병 수준으로 바짝 깎았다.
평소 첫인상이 소도둑놈 같았던 나였기에 머리까지 깎아 놓으니 경찰서 안내판에 붙여질 법한 누군가의 몽타주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월요일 점심시간에 검은 목 티에 검은 양복을 아래위로 빼입고 아들의 학교로 향했다.
학교 정문을 지나고, 건물 출입문 쪽에 계시던 경비 아저씨가 뭔가 불길한 기운을 잔뜩 품고 있는 나에게 다가올까 말까 애매한 행동으로 서 계시길래 내가 먼저 다가가서 물었다.
“수고하십니다. 5학년 몇 반이 몇 층입니까?”
“네...... 저기..... 저..... 3층이요.”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외부인이 신도록 준비해 놓은 실내화를 패스한 채 그대로 구두를 신고 3층으로 향했다. 그런데 저 경비아저씨...... 누가 봐도 내가 이상한 사람으로 보였을 텐데 왜 왔는지를 묻고 제지하셨어야 하는 거 아닌가? 당연한 책임인데도 아무 말 없이 나를 출입시킨 것으로 보아 일단 외모는 합격.
아이들도 점심시간이어서 복도는 그야말로 명절 시장판이었다. 3층에 올라서 보이는 안내 표지에 오른쪽 모퉁이를 돌면 아들 교실이 있을 거란 예측이 가능했는데, 그대로 가지 않고 일부러 복도를 날아다니던 남학생 한 명을 잡아 세웠다. 뒤편에 그 아이와 같이 날고뛰던 아이들이 흠칫 놀라서 가까이 오지 못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O반 교실이 어디냐?”
“여기....... 이쪽..... 이요..... 이쪽으로 돌면 있어요.....”
“오케이”
같은 학년이 있던 층이었기에 여기에 있는 모든 아이들이 큰 아이를 알 것이라 생각하고, 가장 장난기 많아 보였던 아이를 붙잡아서 일부러 물어본 터였다. 무서운 아저씨의 등장을 소문 좀 내달라는 뜻에서.
눈앞에 아들의 교실이 보였고 시끌벅적했던 복도는 조용해졌다. 그리고 내 뒤로 멀리 오케이 대답을 들었던 아이와 그 무리들, 그리고 그 뒤로 그 광경을 목격한 새로운 꼬맹이들 무리가 내가 어디로 가는지 슬슬 쫓아 오며 주시하고 있었다.
아들 교실에 도착해 뒷문을 열지 않고 일부러 앞문을 열었다. 그게 더 주목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OOO(아들 이름) 어딨냐?”
내 물음에 갑자기 조용해진 교실에서 한 아이가 갑자기 손을 들었다.
“제가 찾아올게요.”
그 아이가 왜 손을 들고 말했는지는 모른다, 아마도 초등학교의 주입식 교육을 매우 잘 받은 아이가 아닐까 싶었다.
곧이어 수색에 나섰던 그 아이와 함께 아들이 달려왔고, 우리 부자는 복도에서 어색한 재회를 했다.
불과 네 시간 전 봤던 아빠가 뭐 그렇게 반가웠을 리도 없고, 게다가 수많은 친구들이 올빼미 눈으로 주목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아들의 어색함이 한눈에 보였다.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되 큰 목소리로,
“오~~ 아들 밥 먹었나? 오늘 맛있는 거 나왔고? 애들하고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지?”
등등을 순간적으로 물어본 뒤
“여기 있는 애들이 다 네 친구여?”
여기 있는 애들이 참 많았다. 깍두기 머리 아저씨를 보기 위해서 복도에 나와 있던 아이들과, 아들 반 친구들이 모두 밖에 나와서 부자의 재회를 구경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OO이 아빤데 다들 친하게 잘 지내라 알았지?”
마지막 멘트를 어린 방청객들에게 날리고, 집에 오면서 애들하고 뭐라도 사 먹으라고 지갑에서 배춧잎 두 장을 꺼내 아들에게 주었다.
학교를 나와 차에 오른 순간, 저장되지 않은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아들의 담임 선생님이셨다. 불과 몇 분 만에 내 출현이 담임선생님 귀에까지 다다른 것이었다.
별 일 아니고 그저 지나다 들렀다 말씀드리고, 아들을 맡기고 뵙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또 전화로 인사를 드리게 되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 뒤 나는 다시 본업으로 복귀했다.
저녁에 큰 아들 얼굴이 싱글벙글 이었는데, 낮에 아빠가 간 다음에 아이들이 이렇게 물어보더란다.
“너네 아빠 형사여?”
그 이후로 아들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도 누군가에겐 인상 험악한 형사의 아들로 알려졌을 수도 있다.
그리고 몇 달 뒤, 집사람과 나는 친구들을 모두 데리고 놀이공원에 갔다.
물론, 그전 주말에 나는 부캐인 형사 이미지 유지를 위해 다시 머리를 깎았다.
요즘도 이미 다 커서 군대까지 다녀온 큰 아들과 술 한 잔 할 때면, 초등학교 5학년을 대상으로 한 아부지의 일차원적 무용담을 들춰내며 “그러니까 아빠한테 잘해 인마.”라는 말과 함께 강제 효도를 주입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