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람은 40대가 되면서 요리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하더니 50대를 넘어서면서는 온라인의 각종 레시피를 섭렵하며 상당한 실력자로 발돋움했다. 나는 딱히 그런 말을 하지는 않지만 큰 애와 작은 애는 엄마 식당해도 되겠다거나 이거 팔아 보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할 정도다.
예전에는, 어떤 요리를 새롭게 만들어 보겠다고 선언하는 날이면 냉장고 문을 열고 먹을 반찬이 없는지 살피곤 했었다. 미안하지만 새롭게 만든다는 것이 어떤 맛일지는 몰라도 맛있는 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을 것으로 예상이 되었던지라 비상 상황에 맞춰 바로 반찬화 할 수 있는 김, 계란, 두부 등등의 재료 존재여부를 확인하여 언제든 대체할 수 있도록 준비를 했었는데, 요즘은 확실히 만드는 음식 족족 어디에 내놔도 게 눈 감추듯 사라질만한 상당한 경지의 음식들을 척척 창조해내고 있다.
40대의 집사람은 장시간 정성을 쏟은 음식을 가족들에게 내놓으며 항상 이렇게 묻곤 했다.
“어때? 그럴듯하지? 맛 괜찮지?”
안 괜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가족애로
“모양 이쁘네. 이런 건 또 언제 배웠다냐? 고생했네.”라고 말하며 두 아들들이 진실을 말하지 않도록 빠르게 차단하며 눈치를 줬었다. 워낙 식성이 좋았던 나였기에 군대 한 번 더 온 셈 치고 마지막 양념 하나까지 모두 먹어 치웠었는데, 그때 강하게 훈련된 덕에 지금은 정말 강철 위장과 혀를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꼭 그런 날에는, 집사람이 오늘은 조금만 먹었는데도 배부르다며 자기는 먹지 않고 상당량을 나에게 남겨 주었었다. 이런 면에서는 참 결혼을 잘 한 친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평소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집사람이 동네 호프집에서 파는 ‘골뱅이와 소면’ 안주가 그렇게 맛있다며, 집에서 몇 번의 시도 끝에 큰 실패를 맛본 뒤로, 백종원 선생님을 온라인 사부로 모시며 절치부심의 마음과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낭중지추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는데, 무엇보다도 예전처럼 음식을 처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배가 불러 더 먹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는 나의 상황 변화가 행복하기 그지없다.
다만, 한 가지 소소하게 더 바라는 점이 있다면........
반찬을 먹어보고 싶다는 아주 아주 소박한 소망이다.
집사람이 매번 요리를 할 때면 정말로 그 요리만 한다. 주변에 어떤 반찬도 나오지 않는다.
밥 네 개에 숟가락과 젓가락 네 쌍, 그리고 심혈을 기울여 접시에 내여 나오는 요리 하나가 전부.
삼겹살을 먹어도 쌈장과 쌈 채소, 쌈 무, 콩나물이 나오는데, 정말 딸랑 그 요리 하나가 전부인지라 혹시라도 성공작이 아닌 경우에는 진퇴양난에 오호통재를 연발할 수밖에 없다.
간혹 아이들이 “오늘 이것밖에 없어?”라고 얘기하면, 이거면 충분하지 뭐가 더 있어야 하냐고 내가 뭐라고 하긴 하지만, 나 역시 아이들의 마음과 다르지 않아서 가족들의 이 마음 헤아려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더 필요하면 먹고 싶은 사람이 만들어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그동안 몇 번 집사람의 요리를 두고 계란말이나 만두를 해 먹었을 때,
“왜? 오늘 메뉴 별로야?”라는 얘기를 듣고 나서는, 역시나 행복한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해주는 것 외에는 절대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을 철칙으로 삼고 있다.
50이 넘어 음식에 욕심 내지 말고 행복하게 요리하는 집사람의 모습에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집사람은 모르지만 사실 나는 거창한 요리보다는 나물 반찬을 무척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