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25일 큰 아들이 입대했다.
아들이 고등학생 시절 하루는 학교 행사에 엄마가 참석했었는데, 공부에 큰 관심이 없었던 아이라 그냥 조용히 눈도장만 찍고 오리라 생각했던 엄마는 저녁에 나를 보고 적당히 흥분한 목소리와 상기된 얼굴로 우리 아들이 학교에서 너무 유명하다면서 보기와 다른 놈이라고 있었던 일들을 시간대별로 얘기하기 시작했다. 행사 참석자 명단에 아들 이름을 쓰는 순간 선생님들이 OOO어머님이시냐고 그렇게 살갑게 맞아주셨단다. 옆에 있던 선생님, 앞에 있던 선생님, 주변에 있던 선생님들이 아들놈이 그렇게 착하고 성실할 수 없다고 모여서 반가운 인사를 건네는데 엄마가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른 엄마들이 아마도 공부 1, 2등 하는 아이 엄마인 줄 알았을 거라면서 공부는 못해도 학교에서 선생님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는 사실이 내심 뿌듯하고 한편으로는 희한했던 모양이다. 물론 마지막에는 ‘집에서도 좀 그러지’란 말로 맺음을 하긴 했지만.....
그 녀석이 입대를 했다.
엄마는 회사에 사정 얘기를 하고 다행히 연차를 받아냈지만, 나는 지방의 자그마한 학원을 운영하고 있어서 수업을 취소하거나 셀프 연차를 내기가 힘들었다. 차량 운행까지 하는 터라 간신히 어머님들께 그날은 아이들이 스스로 오거나 데려다주십사 부탁을 드렸고, 아들 군대 가는데 그냥 하루 쉬셔도 된다는 감사한 얘기들을 뒤로하고 수업은 하겠노라 양해를 구해 그날 아침 광주 신병교육대로 향했다.
가는 내내 날이 너무 좋았는데 내 마음이 흐린 건지 기분은 계속해서 우울모드... 그냥 날이 좋은 게 싫었다. 더 이상 해 줄 얘기도 없고, 파이팅 하라는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을 테니... 점점 차 안은 적막 해지고 서로 눈치를 보느라 긴장감만 가득했다.
큰 아들은 대학교 다니며 용돈 벌이는 스스로 하겠다고 2년간 패스트푸드점에서 주말도 없이 주독 야경 열심히 일을 했다. 원래 뭐만 먹으면 탈이 나는 아이인데, 입대하기 전 마지막 식사는 어떤 메뉴로 해야 속 편하게 들어갈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그래도 2년 동안 질리게 먹어서 단련이 되어 있는 음식, 햄버거를 먹기로 했다. 지금 저게 목으로 넘어갈까 싶은 안타까움에 햄버거를 들고 있는 까까머리 녀석이 더욱더 안쓰럽게 느껴졌는데, 중1 막내는 형 덕분에 학교도 쉬고 햄버거까지 손에 쥐었으니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콜라를 쭉쭉 빨아대고 있었고, 막내를 낳고 14년 만에 처음으로 참 얄미운 놈이란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훈련소까지는 2시간 남짓 거리인데, 내 수업은 3시 20분 시작이고 아들 입소시간은 2시까지였다. 늦어도 1시에는 출발해야 수업 전에 도착할 수 있는데, 남은 한 시간 훈련소 앞에서 혼자 있어야 할 아들을 생각하니 오만가지 슬픈 생각으로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평소에 절대 하지 않던 애틋한 포옹에 가족 셀프 사진까지 찍고 잘 다녀와라 마지막 인사를 나눈 뒤, 아들은 훈련소 앞 카페와 슈퍼가 있는 작은 앞마당에서 남은 시간 보내기로 하고 우리는 차로 돌아와 무거운 시동을 걸었다. 훈련소 앞을 좌회전으로 빠져나가는 순간 수많은 훈련병과 가족들 사이에 홀로 멍하니 앞을 주시하고 있는 아들 얼굴이 들어왔다. 다들 가족, 친구들과 마지막을 함께 하고 있는데 큰 아들만 혼자 덩그러니 검은 모자 눌러쓰고 그렇게 서 있었다.
그 아이밖에 보이지 않았다. 지금도 그 찰나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아들 군대 가니 오늘 수업은 안 하겠노라고 왜 얘기를 하지 않았는지 스스로 원망하며, 붉어진 눈 들킬까 애써 감추고 그렇게 아들을 나라에 맡기고 돌아왔다.
그 아들이 6일 있으면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한다는 병장이 된다. 자기가 없으면 부대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허황된 생각을 가지고 있을 만큼 완벽하게 군대에 적응해서 이제 전역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노땅이 되었다. 키가 크고 호리호리해서 부캐로 기수단 활동을 하기도 하고, 얼마 전에는 동료들과 외박을 나와 야구장을 갔는데 애국가 제창 타임에 군복 입고 거수경례하는 모습이 TV 카메라에 잡혀 사진으로 캡처해 놓고 가족들과 박장대소 즐거워했다. 외박 나온 날이 6월 25일, 6.25 전쟁일 이었던지라 거수경례하고 있는 군인들 모습을 카메라맨이 얼마나 화면에 담고 싶었겠는가? 운도 좋은 놈이다.
첫 아이가 입대했을 때의 기억이 강렬해서 요즘엔 가끔씩 막내는 또 어떻게 군대에 보내나 하는 걱정을 할 때가 있다. 뒤에서 보나 앞에서 보나 씨름선수라고 해도 충분히 믿을 만큼 떡 벌어진 어깨에 퉁퉁한 몸집을 자랑하는 아들인데, 아직도 아빠 허벅지에 머리 베고 누워 머리를 쓰다듬어 주어야 잠을 자는 어쩔 수 없는 막내이니 말이다. 예전에 집사람이 당시 유행하던 사주카페에서 이 집은 애를 낳으면 무조건 다 아들이라고 말했다는데, 둘째가 막내인 게 천만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