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벌 모녀 이야기 -
나는 지방에서 자그마한 수학학원을 운영하는 원장이다.
어느 날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는 딸을 둔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말씀 속에 근심과 걱정, 한탄과 조바심 등등 고등학생 자식을 둔 부모가 한 번쯤 가지게 되는 모든 감정이 빠짐없이 들어 있었다. 상담을 할 때는 전화로 할 수 있는 얘기가 있고 대면으로 할 수 있는 얘기가 있어서 우선 아이를 데리고 한번 방문하시기를 청했다.
고학년 자녀를 둔 부모님들은 통화가 연결되는 순간부터 한숨 쉬는 경우가 허다하다. 애가 공부를 안 한다는 얘기부터 공부는 하는 거 같은데 도통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는 경우, 지금 다니는 학원 선생님이 잘 가르치지 못한다는 내용까지 별별 사연들이 많지만, 사실 요약해보면 공부가 부진한 이유는 그만큼 하지 않아서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래서 수학 학원에서는 수학교육보다 정신교육이 더 필요한 케이스가 훨씬 많다.
토요일 오후에 전화를 했던 어머니와 딸이 학원을 방문했다. 어머니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간단하게 날씨를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딸은 고개만 까딱하고선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사춘기..........
크게 상관은 없었다. 워낙 많은 아이들을 만나는 직업이고, 절반 이상이 사춘기인 아이들이어서 이미 완벽하게 단련이 되어 있었고, 해가 지나면서 점점 더 강력한 내공을 쌓아가고 있는 나였기 때문이다.
“아이가 도통 집중을 못해요.”
“시험을 못 봐서 열심히 한다고 해놓고 또 조금 지나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있어요.”
어머니가 부정적인 얘기들을 꺼낼 때마다 딸은 엄마를 쏘아보느라 앞에 앉아 있는 나는 안중에도 없었다. 어머니가 조금만 더 말씀하시면 저 딸의 눈에서 레이저가 나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후다닥 말씀을 막고, 아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엄마가 원장님 앞이라 너에 대해 겸손하게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너는 요즘 공부하기 어떻니?”
아이도 어머니의 말을 크게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열심히 하고자 하는 마음까지 무시당한 것 같아서 속상해하는 말투였다. 자기는 이렇게 하려고 하는데 엄마가 다르게 받아들인다, 실제로 이렇게 하고 있는데 엄마는 그렇게 하지 않은 경우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는 등 공부에 대한 얘기보다는 엄마와의 갈등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쏟아냈다.
어머니는 딸이 서운함을 얘기할 때마다 “네가 그렇게 하니까 엄마가 뭐라고 한 거지.”라면서 절대 물러날 기세가 아니었다. 모녀의 상황은 심각했다. 수학학원 원장에게 상담을 받으러 왔는데 학습적인 내용은 하나도 얘기하지 않고 서로의 속상했던 얘기만 늘어놓고 있으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보통은 어머니가 장소가 장소인 만큼 눈치를 보면서 상황을 정리하고 다시 학습에 대한 얘기로 돌아가지만 이 두 사람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서로의 몸이 좌향좌, 우향우가 되어서 얼굴을 보고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고 나는 그저 팝콘 없이 스릴러 영화 한 편을 보고 있는 관람객이었다.
오늘은 학습 상담이 아니라 심리 상담 시간이 될 것임을 직감했다.
“말씀 중에 죄송한데 어머님하고 따님 얘기를 듣다 보니까 제가 생각나는 부분이 있어서 그런데 몇 가지 좀 말씀드려도 될까요?”
우선은 다툼을 멈추도록 하는 게 중요했기에 싸움 중간에 깊게 쑥 멘트를 찔러 넣었다.
“우리 딸은 원장님이 들어보니까 공부를 못한다기보다는 지금도 어느 정도 위치에는 서 있지만 더 높은 곳으로 가고 싶은 욕심이 있는 친구 같다. 그 욕심이 매일매일의 행동으로 표현되어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힘들 테고. 그런데 그 마음을 조금씩만 더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면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고도 남을 거 같아. 원장님 생각엔 충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이는데.... 그런데 나중에 혹..... 시 대학을 집에서 다니고 싶니?”
“아! 니! 오!”
짧고 굵직한 예상 답변이 나왔다.
어머니가 처음으로 웃음을 보이셨다. 아마 어머님께서도 예상했던 답변이었으리라.
“네가 원장님 판단대로 서울로 대학을 간다면 앞으로 어머니하고 만날 날이 얼마나 될 거 같니?”
“..........”
“서울로 대학을 가면 새로운 학교, 새로운 친구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참 바쁠 거야. 처음 몇 달 동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2주에 한 번씩은 집에 오겠지 아마. 그러다가 시험도 치르고 친한 친구들을 사귀게 되면 혹은 뭐 남자 친구일 수도 있겠고..... 그럼 2주에 한 번 오던 집이 한 달에 한번 오는 정도로 바뀔 거고, 3학년, 4학년 되면서 대학 졸업 후 준비를 하기 시작하면 아마 명절이나 반기에 한 번 정도 오게 될 거야. 그때가 되면 일 년에 어머니 얼굴을 몇 번이나 볼 수 있겠니?
네가 어머니하고 다투고 화내며 짜증내고 신경질 부리는 당연한 일상의 1년 365일이 앞으로 네가 평생 어머니를 뵐 수 있는 날보다 많을 수 있어. 지금은 엄마가 너무 밉고 그러겠지만, 넌 그 엄마를 2년 후 평생에 걸쳐 금년에 뵈었던 것보다 적게 만나게 될 거야. “
“어머님, 어머님에게도 딸을 볼 수 있는 날이 많지 않습니다. 태어났을 때의 경이로움과 처음 말을 했을 때의 기쁨,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을 때의 환희,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의 걱정, 따님과의 그 많은 기억과 추억이 어머님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었을 겁니다. 그 딸이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지금 이렇게 컸습니다. 앞으로 훨씬 더 많이 남은 날에, 훨씬 더 많은 추억을 따님과 남겨야 하지만 따님은 곧 어머님 곁을 떠날 겁니다. 우리네가 모두 그렇게 살았고, 그게 인생이니까요.”
모녀가 울기 시작했다. 훌쩍훌쩍 이 아니라 엉엉 울기 시작했다. 처음 본 사람 앞에서 이렇게 꺼이꺼이 울 정도로 서로를 사랑하면서 그동안 왜 다른 것에만 서로 화를 내고, 다른 곳만 쳐다보고 있었는지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두루마리 화장지를 길게 뽑아서 어머니와 딸에게 주었고, 잠시 뒤에 모든 것이 풀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서로가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두 모녀는 서로 손을 잡고 학원 문을 나섰고, 안타깝게도 이후에 다시 연락은 오지 않았다.
사실 해피엔딩이었기 때문에 내심 이 친구는 무조건 학원에 등록하겠구나, 그러면 어떤 반에서 공부하도록 해야겠다 생각했었는데, 김칫국을 심하게 들이 마신 꼴이 됐다.
학원 원장이 학습 상담은 하지 않고 뭐하는 짓이었나 싶긴 했지만, 그래도 한 가족을 다시 살갑게 만들었으니 하늘에서 어여삐 여기시고 좋은 상을 내려주시지 않을까 위로했는데.........
그러고 나서 곧바로 코로나가 터졌다. 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