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잘 지내고 있니?
아빠가 지금까지 살면서 광주가 이렇게 살가운 동네로 느껴지긴 처음이다. 항상 동네 날씨만 알려주던 핸드폰 바탕화면엔 광주 날씨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존재조차 몰랐던 더캠프, 아미고 앱이 낯설게 그 밑에 가장 보기 좋은 자리를 차지했다. 27년 전에 아빠도 너와 똑같이 광주에서 4개월 동안 훈련을 받았었는데, 짧은 기간임에도 지긋지긋하게 느껴졌던 도시가 어느새 세월을 훌쩍 넘어 아들을 보듬어 주는 고마운 도시로 바뀌어서 굳이 인연이라는 말을 덧붙여 따뜻하게 엮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아들아 잘 있니?
입소 시간 맞춰 보내주지 못하고 아빠 일 때문에 혼자 남겨둔 채 돌아와야 했던 그 장면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친구들, 가족들과 마지막 아쉬움을 달래고 있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혼자 부대 정문을 바라보며 핸드폰하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차창 밖으로 지켜보며 가슴이 아팠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너의 마지막 모습이 잔상처럼 계속 떠올라 울컥한 마음 많았지만, 룸미러로 보이는 엄마의 눈 또한 허전함과 아쉬움으로 붉은 눈동자가 되어 있는 걸 보며 참을 수밖에 없더구나. 지금도 아들을 생각하면 20년 넘게 함께 했던 수많은 장면들 속에서 유독 부대 앞 혼자 서 있던 그 모습만 남아 있으니, 아빠도 이제 흰머리만큼이나 늙은 게 맞나 보다.
인터넷을 뒤지고 뒤져 첫 전화가 언제 몇 시쯤 오는지 정리를 해봤었다. 엄마에게도 그 시간에는 어떤 곳에도 가지 말고 청소기도 돌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가장 많은 전화가 왔었다는 점심 시간대가 지나고 2시도 지나고... 그다음으로 많이 왔다는 4시 타임에도 소식이 없다가 드디어 4시 52분에 울리며 전화에 선명하게 찍힌 '아미고 공중전화'라는 발신표시. 녹음을 해놓겠다는 그간의 생각이 훌러덩 다 날아가고 '아들~~' 한 번 불러보며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간의 걱정이 눈 녹듯 사라지더라. 덕분에 저녁에 엄마 눈치 보며 기분 좋게 평소보다 소주를 몇 잔 더 마셨더랬다.
아빠가 핸드폰으로 연락이 많이 오는지라 일요일에는 일부러 진동으로 해놓는데, 지난주에는 혹시나 네 전화 놓칠까 봐 처음으로 소리로 돌려놓았다. 밤 10시가 넘어 다시 진동으로 바꾸면서 오늘은 친구들에게 전화하느라 못했나 보다 생각하며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오히려 부모가 아니라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만큼 적응을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다음 달 훈련 무사히 마치고 자대 배치받으면 아빠는 아마 시간 날 때마다 자대 근처 좋은 숙박 장소가 어디 있는지 수시로 찾지 않을까 싶어. 아들이 휴가든 외출이든 외박이든 잠시라도 나올 수 있는 환경이 된다면 부리나케 달려가야지. 덕분에 내년까지 가족여행 장소는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 같네.
딱딱한 규율 속에서 대학교와는 또 다른 사회의 첫걸음을 뗀 아들이 자랑스럽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잘 적응하며 엄마, 아빠 걱정하지 말라 소식 전하는 아들이 믿음직하다. 건강만 해라 아들아...... 엄마, 아빠, 한빈이 네 얼굴 볼 수 있는 그때까지 늘 그렇듯 열심히 부지런히 또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