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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스파 Aug 27. 2022

비 오는 수요일엔 빨간 골뱅이를

예전에는 비가 온다고 하면 그날은 많든 적든 계속 올 것이라 예상을 했고, 실제로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엔 비가 참 희한하게도 온다. 마주 보고 있는 아파트인데 이 쪽은 오고 저 쪽은 안 오는 경우도 있고, 다 쓸어버릴 것처럼 맹렬하게 오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갑자기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도 있으니 말이다. 지난 주말에 가족들과 고속도로를 달리다 갑자기 양동이로 쏟아붓듯이 앞 유리창에 폭포수 같은 비가 쏟아지더니 200미터쯤 지나서는 또 금방 말짱해진다. 게다가 아스팔트도 비 한 방울 머금지 않고 말라 있더랬다. 

기후변화를 부쩍 더 많이 듣게 되는 요즘인데 그게 이런 현상하고도 관계가 있는 건지, 아니면 예전의 내 기억이 필요한 것만 취해서 지금과 다르다고 착각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비가 많이 오면 올수록 살이 찔 수밖에 없는 민족이다.

오늘 비도 오고 하니까 점심에 칼국수나 먹을까?

비도 오는데 오늘은 부침개에 막걸리 한 잔 어때?


많은 사람들이 비가 오면 음식과 관련된 생각들을 하게 되는데, 그게 죄다 밀가루, 기름, 술이니 말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예전에 밀가루나 기름이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 오는 날에는 조금 더 귀한 식재료를 사용한 음식들을 먹으며 ‘비’라는 핑계를 적절하게 사용한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우리 집도 오늘 저녁에는 부침개가 등장할 예정이다. 그것도 김치전과 부추전 두 가지나...     


예전에 전을 부칠 땐 밀가루를 듬뿍 넣고 재료는 적게 넣어서 최대한 많은 양을 먹을 수 있도록 했었는데, 요즘엔 나도 살만 한지 대부분이 재료고 밀가루는 살짝 묻히기만 해서 밀가루보단 재료들을 부쳐 먹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그런데 부침개를 할라 치면 프라이팬이 원래부터 그렇게 생겨 먹은 건지 아니면 사용하면서 변형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기름이 떨어뜨린 그 자리에 있지 않고 가장자리로 쭈르륵 내려가는 통에 부침개의 중앙은 기름 없이 부친 것처럼 항상 건조하게 탄 흔적이 있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반죽을 쭉 두르고 나서는 가운데 구멍을 조그맣게 뽕 뚫어서 식용유를 살짝 넣어준다. 그러면 가운데 부분도 가장자리처럼 바삭한 식감을 갖게 돼서 선호하는 부위 때문에 가족끼리 눈치 볼 일이 없어진다.  


    

집사람은 비가 오면 매운 게 당긴다고 한다, 그래서 하늘이 어둑어둑해지면 여지없이 골뱅이와 소면 노래를 부르는데, 내 생각에는 비와 상관없이 늘 먹고 싶어 하는 거 같다. 

간혹 포장으로 사서 먹는 경우도 있는데 너무 매워서 다 먹기엔 상당한 인내와 노력이 필요한지라 요즘엔 집에서 해 먹는 일이 많아졌다. 


집사람이 만드는 골뱅이 소면은 참으로 놀랍도록 싱겁다. 

적절하게 매운맛도 없고, 양념과 재료가 절묘하게 따로 논다. 

분명히 색깔은 식당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는데, 그 색깔에서 이런 싱거움이 나온다니 놀라운 기술이다.

어떤 음식이든 항상 남는 음식은 내가 다 먹어치우기 때문에 집사람이 음식을 할 때 맛이 없어서 남을 걱정을 하지는 않겠지만, 본인도 영 그 맛이 아닌지 과하게 많이 남기는 게 문제다. 


집사람은 항상 나에게 본인 음식이 어떤지를 물어보는데 솔직한 건 죄이기 때문에 절대 그대로 맛 평가를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궁여지책으로 생각한 답변은 특정한 재료를 언급하는 것이다.

“어, 오늘은 깻잎 향이 좋네.”

“오늘 소면은 잘 삶아졌구먼.”

절대 거짓말이 아니면서 상대방은 맛있다는 표현으로 오인할 수 있는 적절한 멘트라고 생각한다.    


덧붙여서, 집사람이 골뱅이와 소면을 예쁜 접시에 예쁜 모양으로 담기를 매우 선호하는 스타일인데, 아무 접시에 아무렇게나 담아도 맛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방자한 생각을 가끔 할 때가 있다. 다른 음식들은 식당을 차려도 될 만큼 맛있게 요리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 음식에 대한 기대치도 덩달아 높아진 나의 욕심 때문이리라.


그런데 이번 여름, 비가 워낙 자주 많이 오다 보니 나의 부침개 부치는 실력과 집사람의 골뱅이 소면 요리가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맛있어졌다.

그래서 요즘에는 항상은 아니지만 가끔씩 재료를 언급하지 않고 맛있다는 표현을 직접적으로 건네는 일도 생기고 있다. 


덕분에 무덥고 습한 여름이 풍성해지고 , 내 배도 집사람의 배도 풍성해진 여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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