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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스파 Aug 12. 2022

일상 #1#2#3

햇빛을 언제 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장마라 하고, 또 2차 장마라 하고, 그게 물러나면 더 큰 놈이 온다고 하니 이러다가 가려진 태양이 익숙해질 지경입니다. 휴가에서 복귀한 아들놈 이불 바짝 말려서 넣어놔야 하고, 빗길에 첨벙첨벙 빠져 버린 둘째 놈 운동화도 빨아야 하는데 언제쯤 밝은 햇빛을 마주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지루하게 기다리다 보면 또 언젠가는 비 좀 안 오나 생각하는 날이 오겠죠.    

 

어제 저녁에는 집사람이 반찬 집에서 사왔다는 짬뽕을 먹었습니다. 홍합, 오징어에 차돌박이까지 듬뿍 들어간 빛깔 좋은 짬뽕을 비 오는 늦은 저녁에 반주와 함께 먹는다니 이 얼마나 행복한 순간입니까? 눈으로 봐도 얼큰함이 느껴지는 국물을 한 숟갈 깊숙이 넣어봅니다. 오징어와 홍합, 그리고 국물 머금은 차돌박이도 차례대로 맛보고 이어서 집사람의 예상된 질문이 날아옵니다. 

“짬뽕 오랜만에 먹으니까 맛이 괜찮지?”

전혀 안 괜찮았습니다. 차돌박이를 이렇게 많이 넣었으면 특유의 고기국물에서 나오는 묵직함이 있어야 하는데, 맛은 겉돌고 뭔 비린내가 이렇게 많이 나는지.....

집사람이 끓인 짬뽕이 아니기에 솔직하게 대답을 할까, 아니면 사 온 정성이 있으니 립 서비스를 해야 할까 고민이 됐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경우 어떻게 하시나요?)

“얼큰하네.... 남을 거 같으니까 내일 아침에 너도 한 번 먹어봐.”


다음 날 아침에 집사람과 계란밥을 먹었습니다. 뻑뻑한 계란밥이기에 짬뽕 국물이 더없이 잘 어울리는 궁합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다시 먹고 싶은 마음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김없이 두 개의 국그릇에 짬뽕이 소복하게 담겨져 나왔고,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 먹었습니다. 아침을 다 먹은 후 집사람 짬뽕 국그릇을 보니 건더기만 몇 개 사라지고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다행히 다음부터는 그 반찬 집 짬뽕은 더 이상 먹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학원 수업시간 초등학교 4학년 남자 아이와 그래프 단원을 나가고 있었습니다. 평소에 똘똘하게 풀이를 잘하는 아이여서 그래프 단원은 별로 어렵지 않으리라 예상했고, 실제로 막힘없이 진행되었습니다. 어느 호텔에 1년간 숙박한 외국인들의 국적을 그래프로 나타낸 문제가 있었는데, 국적에 따른 이용 빈도를 보고 그 호텔 직원들이 어떤 언어를 잘하는 게 도움이 되겠는지를 묻는 문제였습니다. 그래프 상으로는 중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방문했더군요. 아마도 한창 중국 관광객들이 많이 오던 시기에 만들어진 문제가 아닌가 생각 들었습니다. 고민할 문제가 아니기에 당연히 이 아이도 그렇게 적었으리라 예상했지만 답을 보는 순간 뻥 터졌습니다.

답은 이러했습니다. 

‘미국이다. 왜냐면 우리는 미국이랑 동맹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영어를 배워야하는 이유입니다. 암튼 그렇답니다.     


열심히 고민해서 적었을 아이를 생각해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았고 다행히 얼굴은 마스크가 많은 부분 가려줬습니다. 그리고 출제자가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 얘기해주고 찬찬히 왜 중국이 정답이 되는지를 설명해주었죠.

아이 몰래 정답 부분을 촬영해서 다음 달 결제하러 오신 아버님께 보여드렸습니다. 아버님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이 아마 더 사랑스럽고 예쁘게 보인 날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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