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따뜻해지기
나는 오랫동안 개인주의자로 살아왔다.
그리고 지금도 그 정체성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나눔’이라는 말은
나에게 늘 낯설었다.
너무 크고, 너무 단정적이고,
괜히 나를 더 나은 사람처럼
보이게 만드는 단어 같아서.
그런 내가 이 단어를
완전히는 아니지만
조심스럽게 떠올리게 된 계기는
아주 개인적인 아픔이었다.
아프고 나서야
시야가 조금 바뀌었다.
사람을 평가하기보다
관찰하게 되었고,
겉보다 속을 상상하게 되었다.
제빵을 하며 알게 된 것도 비슷하다.
반죽은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안에서는 계속 변하고 있다.
너무 급하게 열을 올리면
겉만 타고 속은 남는다.
사람도 그렇다는 걸
조금 늦게 배웠다.
나는 여전히
‘나눔’이라는 말을 쉽게 쓰지 못한다.
대신
온도를 믿는다.
서로에게 남기는
아주 미세한 따뜻함.
추운 겨울,
어르신들을 위해
사골을 끓이는 자리에 다녀왔다.
빵을 굽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불 앞에 오래 서 있고,
넘치지 않게 살피고,
조급해하지 않는 일.
그날의 국물이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 덜 차갑게 만들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나는 여전히 개인주의자다.
다만 이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온도가 있다는 것을
조금은 믿게 되었다.
화덕 앞에서 배운 삶의 방식으로.
— 이창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