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붉음을 바라보며
가을은 언젠가부터
나에게 기억을 흔들어 깨우는 계절이 되어버렸다.
봄의 시작은 설렘이었고
여름은 터지는 욕망이었으며
겨울은 견디는 인내였다면,
가을은 묻는다.
“너는 지금 제대로 살아가고 있니?”
오늘, 여자친구와 함께
단풍이 마지막으로 버티고 있는 산을 걸었다.
붉고 노랗고, 바람 한 번 불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잎들.
그걸 바라보며 나는
묘한 감정에 머물렀다.
쓸쓸함과 경이로움,
종말과 절정,
끝과 완성 사이의 그 어디쯤.
단풍잎은 떨어지기 직전 가장 붉다.
마치 바람 앞에서도
“나는 여기 있었다”
그렇게 외치는 존재 같다.
그 모습을 보며 떠오른 말.
Memento mori — 죽음을 기억하라.
죽음이 존재하기에
시간은 의미를 가진다.
끝이 예정되어 있기에
지금이 특별해진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언제나 또 다른 문장이 있다.
Carpe diem — 지금을 살아라.
우리는 언젠가 사라질 몸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존재다.
그러니,
사랑하고, 빵 굽고,
무대에 서고, 글을 쓰고,
어떤 순간은 웃기게 남기고,
어떤 장면은 조용히 마음에 쌓아두며
살아가야 한다.
함께 걷는 사람이라는 건
참 묘한 안정감을 준다.
그녀가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세상이 아주 조금
따뜻하고, 여유롭고, 덜 무섭다.
아마 사랑은
누군가와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서로의 시간을 허락하는 일일 것이다.
나는 오늘 단풍 속에서
한 문장을 주워왔다.
“우리는 흩어지기 위해 피어나지만,
사라지기 전까지 서로를 따뜻하게 만든다.”
올해의 가을이 끝나도
우리는 또 다른 계절을 함께 걸을 것이다.
그게, 참 좋다.
그리고 참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