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의 자리에서, 나는 그릇을 빚는다.
요즘 도자기를 보면,
젊은 작가들의 감각적인 작업들이 참 많다.
심플한 선, 미묘한 색감,
누구의 식탁에 올려도 잘 어울릴 세련된 그릇들.
나도 처음엔 그런 그릇에 마음이 끌렸다.
간결하면서도 멋스러운,
요즘 말로 미니멀하고 무드 있는 식기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버지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나는 점점 녹청자에 손이 간다.
오래 보아 왔어도
자꾸 시선이 머물고,
괜히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투박하고 거친 흙.
숯, 소나무재, 황토 같은
흔하고도 낯익은 재료들로 옛 선조들이 빚어온 그릇.
화려하지 않고,
눈길을 확 끌지도 않지만,
묘하게 편안해진다.
녹청자는 오래될수록 좋다.
자연을 닮은 그 녹빛은 질리지 않는다.
질리지 않으니 오래 곁에 있게 된다.
밥을 담아도, 국을 담아도, 반찬을 담아도,
녹빛은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킨다.
화려하지 않은 색 덕분에
음식을 더 빛나게 해주는 조연 같은 느낌.
나는 그래서 이 조용한 조연,
녹청자가 참 좋다.
매일을 살던 오랜 서민들의 손끝에 닿아 있던 그릇.
그 시간과 정서가 흙 안에, 빛 안에 스며 있다.
내가 빚는 녹청자도 그렇다.
어딘가 부족하고, 조금은 비틀리고, 투박하지만
그래서 더 진짜 같다.
완벽하게 다듬어진 곡선보다,
조금은 덜 다듬어진 삶의 굴곡이
이 그릇에 담기길 바란다.
화려함은 잠시 눈을 즐겁게 하지만
은은한 녹빛은 마음을 천천히 따뜻하게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녹청자를 빚는다.
조용하지만 단단한,
오래 곁에 둘 수 있는 이 그릇 같은 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