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여성들은 리드하지 못하는가?①

'무임승차 빌런'에게 화내지 않는 이유

by 정신차려 moziri

근 3개월 간 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1월에는 단편 영화를 만들었고, 2월엔 4개의 영화에 스텝으로 참여하면서, 집에서는 제 영화를 편집했습니다. 뭔가를 감상할 시간도 부족했지만, 그보다 정신집중!할 에너지가 없었습니다. 이제 얼추 관람자 모드로 돌아왔고요~~ 리뷰도 꾸준히 쓸 생각입니다.


비어있는 moziri의 1,2월 왓챠피디아 달력과 3월 달력


<피의 게임3>과 <생존 남녀> 리뷰를 쓰다가 글이 길어져서 분리해 올립니다.

①, ②, ③ 부는 에세이, ③부는 리뷰 형태의 글입니다.


- 차례-

① '무임승차 빌런'에게 화내지 않는 이유

② 평등한 집단에서 권위 세우는 법

③ 20대 여성이 구사하는 '저맥락 텍스트'

④ <피의 게임3>과 <생존 남녀> 속 성별 간 팀플 양상





‘무임승차 빌런’에게 화내지 않는 이유

웹툰 <치즈인더트랩>(이하 ‘치인트’)이 드라마로 방영된 2016년 즈음, ‘(조별과제)무임승차 빌런’이라는 문제적 캐릭터가 탄생했다. 대학을 배경으로 한 웹툰, 웹드라마에서부터 ‘보노보노 ppt’와 같은 밈, 에브리타임의 게시글, 그리고 BL 드라마 <시멘틱 에러>와 스케치 코미디 채널에까지 몇 년간 이 캐릭터는 꾸준히 콘텐츠에 등장했다. 하지만 그 시기 대학을 다녔던 나는 친구가 털어놓은 조별과제 잔혹사에도, 직접 겪은 내 일에도 크게 분노하지 ‘못’했다. ‘무임승차 빌런’들의 주된 공격 기술은 ‘카톡 안읽씹’, ‘약속 파토’와 같은 ‘잠수’(회피)인데, 나는 타인의 책임 방기로 인해 침해받은 내 권리를 주장할 만큼 주도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친하지 않은 이가 서로 얼굴 볼 일을 줄여준다는 점을 고마워할 정도로 소심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무임승차 빌런’을 막상 미워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다. 그들이 처한 대학 수업 환경의 문제다.


그들을 마주할 확률이 가장 높은 곳은 대형 교양 강의다. 졸업 요건 충족을 위해, 대학 4년간 6번 정도는 대형 강의를 듣게 된다. 거기선 학과와 학년이 다른 모르는 이에게 수줍게 다가가 조원으로 포섭하거나, 데면데면한 이성과 영화 감상문을 적거나 봉사나 답사를 함께 할 일이 없다. 교수가 단체 메신저나 스크린에 랜덤 조 추첨 결과를 띄워준다. 또한, 조원들이 각자 인터넷으로 찾은 자료를, 비대면 회의 한 두 번을 통해 ppt로 얼기설기 엮어낼 만한 형식적인 과제가 주어진다. 이런 환경에서 ‘무임승차 빌런’들은 카톡 대화에 참여하지 않으며, 대충 ‘긁어온’ 자료를 내밀고, 자느라 비대면 회의에 접속하지 않는 ‘만행’을 저지른다. 하지만 ‘무임승차 빌런’ 한 명 당, 무감히 ‘팀플’을 마치는 다섯 명의 조원들이 있다. 직접 찾아가 역정을 내거나 카톡으로 쓴소리를 하는 일조차 거의 없다. 이처럼, 대부분의 대형 강의는 교수가 학생을, 학생이 학생을 방관하는 공간이다.


이런 드라이한 팀워크는 대학 시절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대외 활동이나 취업 준비 스터디로 연장된다. 스터디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직접 만나서 써온 글을 합평하는 대면 형식도 있지만, 주에 한 번 비대면 회의를 하거나 기간 내에 글을 제출하는 데에 의미를 두는 형태가 더 많다. 독서나 기상을 목표로 단톡방에 모여서 단순히 ‘불이행 시 벌금 1,000원’이라는 규칙에 의해 돌아가는 모임도 있다. 여기에는, 벌금을 몇 달째 송금하지 않으면서 스터디에서 퇴장하지도 않는 ‘유령 회원’이 있다. 다만, 그 빈도는 조별과제보다 덜 하다. 보통은 ‘일이 생겨서 나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라는 정형화된 메시지를 남기고 스스로 퇴장하기 때문이다.

요즘 세대는 디지털화된 관계를 능숙히 운용할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은 것이다. ‘인터넷에서 만난 모르는 이와 밖에서 보지 말라.’는 어린 시절 어른들의 경구를 이렇게 고쳐 쓸 수 있겠다. ‘오프라인 관계를 온라인으로 전환하지 마라.’ 디지털화된 관계에선 서로를 방관할 확률이 높아진다. 인간관계 안에서 충분히 발생할 만한 정도의 무례함이 디지털의 특성으로 인해 극대화된다. ‘약속 이행’이나 ‘상대에 대한 존중’이 ‘안읽씹’, ‘읽씹’, ‘미접속’의 형태로 기록되기 때문이다.

또한, 스터디처럼 구성원 간 위계가 없는 모임은 어쩌면, ‘서로에게 무례해지기 쉬운’ 집단이다. 반대로 회사에는 직급이나 나이에 의한 서열이 있고, 법이 따르는 규칙이 있다. ‘탑 다운’ 방식으로 굴러간다. 이와 달리 서로의 기본적인 신상 정보조차 공유하지 않으며, ‘바텀 업’ 방식을 지향하는 모임은 당연히 통제가 어렵다. 지급 받는 대가도 없으며, 모임을 통해 얻으려는 목적과 동기도 각기 다르다. 그러니 더욱 지루한 회식 자리를 버틸 ‘인내심’같은 건 없어, 개개인은 지극히 본인의 효율을 따져 행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건 ‘형식적 효율’에 그친다. 얼핏 보면 효율적이다. 각자에게 취업 스펙으로 쓰일 프로젝트를 함께하고, 외로운 취업 준비 기간에 주머니에 얼마 없는 채로도 '인간관계'가 가능하며, 감정 소모 없이 목적 있는 대화에 곧바로 돌입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결과물은 개개인의 능력치를 밑돈다. 뭐가 문제일까? 우리는 왜 ‘무임승차 빌런’을 포용하며, 묵묵히 형식적인 결과물을 내고야 마는 피곤한 대학생 그리고 취준생이 되었을까?



- 내가 거쳐 온 여러 형태의 스터디들

출처: moziri


② 평등한 집단에서 권위 세우는 법 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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