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리뷰
챕터2. 힘을 못 쓰는 나열식 오마주
챕터2는 높은 채도 때문에 챕터1의 톤 앤 매너와 상당히 다릅니다. 하지만 탑 속 여러 공간들은 서로 분명히 구별되지 못합니다. 키리코와 히미의 집은 아담한 크기에, 하야오 특유의 맥시멀리즘 인테리어로 차 있다는 점에서 비슷합니다. 반면에 배경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식물의 묘사도와 스타일엔 격차가 있습니다. 이전 하야오 작품들 속 하이라이트 장면들 또한 퀄리티-업 되어 등장하지만 다들 꿈 장면 나열에 그치며, 전개 상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① 자연(식물) 표현 기법
식물을 그린 스타일이 장면마다 달라서 통일감이 덜 했습니다. 무덤의 나무와 풀은 마치 마그리트의 그림처럼 과슈 혹은 아크릴로 뻑뻑하고 밀도 있게 그린 듯하고, 히미의 집 속 장미 넝쿨은 오일파스텔로 툭툭 터치한 것처럼 뭉툭하게, 몽글몽글한 느낌으로 그렸습니다. 성의 정원은 디지털 페인팅으로 그리다 만 부분까지 보일 정도로 밀도가 낮게 날려 그렸고요. 그런 작은 차이들이 모여서 뒤죽박죽이라는 느낌을 주게 되는 듯합니다. 파도의 표현도 이전과는 달랐습니다. 하야오는 파도가 잘게 부서지도록 하지 않고 살아있는 생물처럼 생동감 있게 연출했는데 <그대들> 속 파도는 상당히 사실적입니다.
② 나열식 오마주
오마주들은 전개상 크게 기능하지 못하고 꿈 같은 나열에 그쳤습니다. 사실, 원 작품들 속에서 그 오마주들은 스치듯 지나가는 풍경이었으나 하야오는 <그대들>에서 그 하나하나를 길게 보여줬습니다. 그래서 챕터2는 또다시 장소에 따라(바다/히미의 집과 성/돌) 세 개의 단편이 이어 붙여진 듯한 느낌을 줍니다. <벼랑 위의 포뇨> 속 멸망에 다다른 세계, 파도에 한 겹 덮여 바다를 표류하는 배 무덤과 치히로가 기차를 타고 가다가 보는 검고 반투명한 사람들이 결합해 키리코가 등장하는 파트의 세계관이 됐습니다. 하울의 성에 달린 콰트로 문짝도, 수를 늘려 한 층 전체를 문으로 채웠어요. 하지만 그럼으로써 외려 콰트로 문짝의 의미가 사라졌습니다. 그러니 이천년대 후반생들로부터 이게 <몬스터 주식회사>의 표절이냐는 생뚱맞은 소리들도 나왔던 것 같고요. 나츠코 산실 장면에선 유바바의 종이 괴물 모빌과 굴속에 은신한 하울의 수척하고 징그러운 얼굴을 오마주 한 듯합니다. 저속 촬영을 한 덕분에 머리카락이 달라붙는 나츠코의 얼굴이 더욱 호러스럽습니다.
③ 바보 같은 아빠, 그런 아빠가 좋아하는 새엄마, 친구로 나타난 엄마.
마히토는 나츠코와 아빠를 성숙한 어른들이 아닌 로맨스 중에 있는 연인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선 마히토에게 아빠는 바보인 것 같아요. 군수 공장장 아버지는 사업 수완은 좋지만, 성품이 호전적인 사람은 아니었는지, 아들이 심하게 머리를 다치고 왔는데도 별다른 앙갚음이나 범인 추적은커녕 300엔을 기부하고 학교를 그만두도록 하는 데에 그칩니다. 그리고 참 수더분합니다. 아파서 누워있는 아들에게 와서 철도 수송이 멈췄다며 어쩌구저쩌구 자연스럽게 자신의 사업 이야기를 합니다. 실제 하야오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미워했는데 아버지가 피난민에게 초콜릿을 나눠주는 모습에서만은 따듯함을 느꼈다는 일화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대들>의 아빠는 관객이 호감을 느낄 만한 성격으로 그려졌습니다. 일제 강점기 군수 공장장을 바보로 퉁치고 넘어가는 태도에 대해선 의문이 크게 남습니다.
그리고 그런 바보 아빠의 옆에 있는 나츠코는, ‘엄마의 자리를 뺏은 새엄마’나 ‘기겁할 만한 가계도 속 이모’가 아니라 ‘아빠의 새로운 여자친구’ 정도인 것 같아요. 히미가 마히토에게 “그 여자 좋아해?”라고 묻는데, 마히토는 “우리 아빠가 좋아하는 사람이야.”라고 답합니다. 어쩌면 마히토는 이모가 엄마가 된,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견뎌내기 위해, 나츠코를 가볍게 여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마히토는 아빠의 여자친구 보듯 나츠코를 봅니다. 카메라는 나츠코의 첫 등장에서부터 그녀를 위아래로 훑습니다. 그녀는 전형적인 미인의 외양을 가졌습니다. <은하철도 999>의 메텔이 연상 되는 긴 머리에요. 그녀는 이유 없이 사근사근하고 친절을 베푸는데, 마히토는 그녀가 부담스럽고 저의를 몰라 합니다. 하지만 <그대들>은 조숙한 자녀와 어리석은 부모 사이의 관계에 대해 탐구하려는 영화는 아닙니다. 그래서 나츠코와 마히토의 관계에 더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곧 마히토를 나츠코를 구해주려는 착한 역할에 못 박습니다.
히미는 마히토가 꿈에서도 사무치게 그리는 엄마임에도 불구하고, 나츠코나 아빠보다도 캐릭터성이 제거된 채 등장합니다. 설정에서는 <지금 만나러 갑니다>나 <상견니>가 연상되지만, <그대들>에서 죽은 엄마를 아이로 다시 만나는 것이 마히토로 하여금 별다른 감정을 촉발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④ 소년 만화적 연출
마지막으로, 소년 만화적 연출들이 이질적이었어요. 분명 에반게리온 출신 작화 감독이 힘 좀 썼겠죠? 챕터1에서 엄마가 승천하는 장면, 그런 어머니의 꿈을 몇 번이고 꾸는 장면, 히미가 불을 쏘는 장면, 돌계단에서 정전기가 나오는 장면, 프리즘과 우주의 표현들이 소년만화스러웠습니다.
하야오에게 이야기가 더 남았을까?
하야오에겐, 자신의 사적인 인생을 애니메이션으로 재현하고 싶은 마음과 망해가는 세상에서 꿋꿋하게 나아가는 ‘주인공다운 주인공’을 세워야 한다는 마음이 공존했던 것 같습니다. 이왕 인생을 가져오기로 했으면, 다큐멘터리적 접근으로 미야자키 가문의 가족사를 파 보는 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러면 미야자키 하야오 버전 <인간 실격>이 되었을까요? 하야오가 만드는 실사 촬영 영화는 어떨지 상상해본 적이 있습니다. 하야오는 휴먼 드라마에 강한 사람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야오에게 할 얘기가 남았다면, 그건 동심이나 야망을 품은 퇴행적인(?) 어른이나 아동이 아니라 때 묻은 소시민들이 등장하는 이야기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가 지금껏 남겨준 것들이 이미 차고 넘치니, <그대들>처럼 지브리와의 옛 추억을 상기시키는 앙코르에서 만족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애니메이션 용어들을 잘 익혀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론을 꼭 써보고 싶습니다.
2024년 10월 21일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