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플리> 리뷰
* 이 글을 포함한 모든 리뷰에는 영화 상의 반전이 적혀 있습니다.
범죄 영화보단 계급 간 멜로 영화에 가까운
오프닝 크레딧의 글씨체나 편집 스타일, 감성적인 bgm, 갈색빛 화면을 보고, 그 당시 흥행했지만 길게 회자 되진 못한 90년대 할리우드 멜로 드라마인가 싶었습니다. 그래서 1년 전에 보다가 꺼버린 기억이 있는데 이번엔 끝까지 감명 깊게 봤어요. 그 사이에 제가 태어나 처음으로 빈부에 대해 열심히 생각했던 영향인 듯합니다. 경제학적 측면에서라거나 빈곤 문제에 대해 고심했다는 게 아니에요. 캡처되어 돌아다니는 커뮤니티 글들의 시각을 습득하여, 사람들의 워너비인 중산층 혹은 MZ 힙스터 라이프에서 동떨어진 저의 휘뚜루마뚜루 라이프를 처음으로 인지하고 쑥스러워졌다는 뜻입니다. 대학교 때 용돈을 아낀다고 학식 먹고 자전거 타고 (이건 귀찮음 탓이지만) 한겨울에도 맨발슬리퍼 채로 다녔는데 그걸 블로그에도, sns에도 올렸었죠. 누군가에겐 개인의 소비습관보단 계급의 지표로 읽혔을 수도 있습니다. 현실에는 저희 집처럼 소득분위 기준 중위에 해당하는 ‘서민’도 많지만, 보통 sns, 유튜브, 커뮤니티에 전시되는 라이프 스타일은 경제적 ‘상층’의 것이죠. 그러니 제가 남들은 숨기고 싶어하는, 혹은 숨기는 게 미덕인 것을 아무렇게나 내놓고 다녔던 덜떨어진 사람처럼 느껴졌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쭉 이렇게 살겠지만 그것과는 별개의 겸연쩍음이었달까요. ‘빈자의 라이프 스타일’을 자랑하고 다닌 셈이죠. 그래서 현재의 저는 더더욱, <사당동 더하기 25>같은 사회학 서적보단 <리플리>같이 주인공의 수치심이 잘 드러나는 영화에 공감했습니다.
<리플리>는 범죄를 소재로 하지만, 하층 청년 톰의 로맨스를 그린 멜로드라마에 훨씬 가깝습니다. 영화 속에서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계층 이동을 꾀하는 하층 인물은 대부분 사기꾼형, 야망가형으로 그려지는데, <리플리>는 섬세한 감정 묘사를 통해 감정이입까지 유도하는 보기 드문 영화이죠. 블랙코미디 장르의 <애나 만들기>나 <기생충>과 비교하게 됩니다. 두 영화 속 인물들은 공감과 응원을 유발하진 않습니다. 대신, 아귀를 척척 맞춰가는 거짓말 기술과 얼굴에 철판 깔기 스킬 등에 감탄이 나오죠. 그들의 운이 비현실적으로도 느껴지기도 하나, 기를 쓰고 계급 사다리를 오르려는 그 욕망에, 끝내 그들을 응원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기생충>의 기정이네는 여전히 박 사장네 가족보다 우리에게서 멀게 느껴집니다. 특출난 사기꾼 같아요. 감정이입이 되려면 이야기가 어느 특출난 사기꾼의 범죄 행각으로만 느껴져선 안 됩니다.
<리플리> 속 톰은 사기꾼보다는 소년에 가깝습니다. 욕망보다는 애정과 수치심을 강하게 드러내요. 제가 보기에 톰은 디키처럼 되고 싶어서 부유해지고 싶어하는 것 같았습니다. <기생충>의 기택도 박사장을 살짝 동경하던 차에 박사장이 코를 쥐는 행동에 수치심과 분노를 느껴서 그를 찌르지만, 톰이 느끼는 사랑보다는 훨씬 덜 축축한 감정일 겁니다. <안나>(2022,쿠팡플레이)는 앞서 언급한 두 작품보다는 <리플리>에 가까운 작품입니다. 정서적이거든요. 유미에겐 계급 상승의 욕망과 현주에게서 받은 모멸감도 있지만, 단지 공동체에 속하고 싶은 마음도 컸습니다.
1년 전에 이 영화를 본 이유는, 당시 표절을 소재로 대본을 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땐, 표절과 사칭 둘 다 인정욕구에서 비롯한 허영과 가식이라고 생각했기에 인물의 성격을 참고하려고 했었어요. 하지만 지금 와 생각해보면, 제가 결국 집중해야 할 건 표절하는 인물의 이상 심리가 아니라, 표절을 묵인하고 나아가 권하는 사회,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가 예술을 어떻게 다루느냐의 문제였습니다. 그러니 계층 이동을 다루는 영화 또한 한 명의 사기꾼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더라도, 끝에 가선 그런 사기행각을 유도하는 폐쇄적인 한편 허술한 사회를 조명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려면 상층과 하층 인물이 서로를 어떻게 느끼는지, 상층 인물이 어떻게 하층 인물로부터 선을 긋는지가 실감 나게 그려져야 합니다. 생각해보면 훌륭한 로맨스는 이미 이런 일을 충실히 하고 있었습니다.
영화학자 토머스 샤츠(Thomas Schatz)는 『할리우드 장르의 구조』(Hollywood Genre)에서 멜로드라마를 ‘순수한 개인(보통 여자)이나 커플(보통 연인)이 결혼, 직업, 핵가족 문제들과 관련된 억압적이고 불평등한 사회 환경에 의해 희생되는 대중적인 연애 이야기’라고 정의하고 있다.
- 네이버 지식백과 영화 사전
학벌, 직업보다는 라이프 스타일이 계급의 지표가 되어간다
영화나 드라마는 가난하거나 부유한 인물을 이미지화하길 참 좋아합니다. 그리고 이미 오래 전, 정형화에 성공했죠. 부자들의 이미지는 비슷비슷합니다. 나라, 지역, 직군마다 엘리트나 지배계급, 시장지배적 소수집단의 모습은 다를 텐데 말입니다. 근래에는 특히 밑도 끝도 없이 해맑은 성격을 통해 부유함을 묘사하길 좋아하는 데 맛이 들린 것 같습니다. <신세계> 황정민의 TPO를 압도하는 슬리퍼, '후리하게' 입은 IT 재벌, 로고플레이 하는 중년 남성, <디 에이트 쇼> 속 물질 감각 없는 현대미술가 천우희 등이 있죠. 처음엔 신선했는데, 이젠 클리셰가 되어 갑니다.
또, sns나 기사에 등장하는 라이프스타일은 이런 식입니다. 코즈모폴리턴적(국제적인) 생활을 지향하고, 워라밸을 중시하며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하고, 스몰 럭셔리를 자주 구매하고, 집을 힙한 카페처럼 꾸며 놓는 삶. 10년 전쯤엔 언론에서 초등생 사이에서 엘거(임대 사는 거지)라는 말이 돈다고 하더니, 최근엔 개근 거지(제주도 한 달 살기나 해외여행 하지 않고 개근하는 거지)가 유행이라고 보도합니다. 아비투스에는 심리, 문화, 지식, 경제, 신체, 언어, 사회 자본이 있다고 합니다. 그중 경제, 신체 자본(어떻게 건강을 챙기는가)이 합쳐진 게 라이프 스타일에 해당할 것입니다.
라이프 스타일이나 성격처럼 모호하고 추상적인 지표로 부를 묘사하는 건 위험합니다. 이 같은 유형화는 인신공격으로 번지기 쉽습니다. 사람들은 기초 수급자나 빈곤 노인을 비웃진 않아요. 대신, ‘수저계급론’같은 이론을 계속해서 확장 재생산하며 여러 가지 요소들을 가난의 모습으로 싸잡아 조롱합니다. 이를 내재화한 개개인의 행동을 옥죄게 되죠. 이러한 편향적 인식은 보통 수치보다는 생활 속 개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합니다. ‘가난한 사람은 불쌍하고, 부자는 나빠.’, ‘아니, 그건 80년대 스타일이고 요즘은 부자가 착해.’, ‘금수저들은 사랑받고 자라서 밝아.’, ‘가난한 동네 특징’, ‘흙수저 집안 특; 반찬을 통 채 먹음.’ 과 같은 카테고리화가 이루어집니다. 이전에 사회학에서도 빈곤 문화를 규정하려는 작업이 있었으나, 이제는 쓰이지 않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빈곤 문화’의 속성: 잦은 폭력, 역사의식의 결여, 미래에 대한 계획 부족, 낮은 동기 부여, 약한 직업윤리, 약물, 알코올 중독, 성 문란, 도박 등등
- 산체스네 아이들
그래서 저는 라이프 스타일과 성격으로 부유함을 묘사한 <안나>와 <기생충>이 사실 계급구조를 조명하는 데에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가난한 주인공보다, 부자 쪽이 더 인기를 끌었으니까요. 많은 이들이 유튜브 숏츠 댓글에선 현주의 유쾌함을 칭송하고, 본인이 살면서 겪었던 부자 친구의 예시를 들며 공감합니다. <기생충>은 부자가 실은 선인이었다는 점에서 반전이 있는 영화라고 생각하고요. 상층 인물의 이중성이나 기만적인 태도를 보지 못하는 겁니다. 그 이전에 (연출자가) 호의적으로 묘사한 그들의 독특한 캐릭터성에 먼저 끌리는 것입니다. 연출자가 상층의 특징으로 내세우는 것 중 돋보이는 건 백치미입니다. 내 바운더리에 들어온 사람에겐 마치 초등학생이 스티커 나눠주듯 재화를 나눠주며 친근히 구는 태도죠. 그걸 보고 어떤 이들은, 가난한 사람은 그악스럽고 부유한 사람은 순수하고 '재지 않는다'는 식으로 긍정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의 태도가, 누구보다 자본을 통해 타인을 도구화하는 데에 익숙한 상층의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설정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기생충>과 <안나>에서는 그들이 그렇게 '사람을 부리는' 방식의 해악을 부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들의 편을 들게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면 <리플리>는 로맨스 연출을 통해 상대가 받은 상처를 확실히 부각합니다.
가난한 주인공의 계급 이동 욕망에 동의하기에, 아직 덜 폐쇄적인 한국
또, 한국은 아직 대중들이 그런 계급 이동 범죄에 격하게 동의할 만한 사회는 아닙니다. 그러니 <기생충>과 <안나>는 로컬라이징이 덜 된 듯한 느낌을 풍깁니다. 1960년대 미국. 톰은 프린스턴 자켓을 입고 있었다는 것만으로 졸업생 학부형에게 아들을 만나보라는 제안을 받게 됩니다. 이는 '명문대 졸업' 만으로 상층 사회 에 쉽게 받아들여졌던 폐쇄적인 사회를 반영합니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 덜 폐쇄적이거나 (아직 식견이 부족한 내가 파악하지 못한) 더 교묘한 방식으로 폐쇄적인 것 같아요. 중학교까지 의무 교육이고, 고등학교도 학비 없이 다닐 수 있으며, 대학 진학률도 OECD 최고 80% 이상으로 높습니다. 미국에선 연간 소득이 12만5000달러(1억6750만원) 이하인 개인이 평균 3만 7천 달러, 약 5천만의 학자금 대출을 갖고 있다지만, 한국엔 국가장학금 제도가 잘 구비되어 있어요. 부정 입학이 커다란 사회적 문제로 조명되고, 과 잠바 등의 학교 굿즈를 통해 학벌주의를 조장하는 것에 대한 인식도 날카롭습니다. 집값은 다르지만 대체로 비슷한 크기와 모양의 집에 살아가며, 공채와 블라인드 채용 제도가 존재합니다. 아직은 환자 본인 부담금도 합리적인 편이라서 90년대 도시 빈민처럼 수술을 미루다가 병을 키워 죽는 60살 이하 환자의 비중이 크지 않습니다. 사람들 말하는 것도 다들 비슷비슷해서 세대 차이는 따져도, 영국처럼 상류층의 발음이 어쩌고저쩌고하며 구별하지도 못 합니다. 이처럼 한국에는 견고한 엘리트 문화나 사회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저는 느껴왔습니다. 그러니 언어나 직업, 문화를 기준으로 계급을 구분 짓기 어렵고, 그러니 더더욱 라이프 스타일로 선을 긋는 데에 몰두하는 것도 같아요.
박이대승의 소수 관점(46) 모두가 평등하게 막말하는 사회
https://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_id=202409271600011&dept=115
영화 속 재벌은 엘리트가 아니라 악동이다
<안나> 그리고 <리플리> 속 재벌을 추앙하는 일이 우스운 이유는 또 있습니다. 그들은 엘리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엘리트 사회의 악동입니다. 톰은 디키의 이중 스파이, 조력자가 되는 것까지도 성공하지만 고상한 취향과 지성으로도 디키를 조종하거나 그의 사랑을 얻는 것엔 실패하죠. 디키는 양육에 실패 한 예외적 악동이기 때문입니다. 프린스턴 에서 동급생을 폭행해 영구적 장애를 초래했으니, 동문들과의 관계가 좋을 리 없습니다. 명문대 졸업 후 직업을 얻어 일하다가 아버지의 후계가 되는 전형적인 방법으로 아버지의 자본을 승계받을 수 없어진 것입니다. 고급스러운 취향과 아쉬울 것 없는 성격만이 디키가 재벌 2세라는 걸 어렴풋이 드러낼 수 밖에 없어졌죠. 그는 자신과 비슷하게 멍청하고 즉흥적인 친구들과 어울립니다. 사실 그래서 디키는 톰의 개구멍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안나>의 현주(진짜 안나)도 돈으로 졸업 논문을 살 정도로 학업에 관심이 없고 인생에 목표가 없죠. 말초적 쾌감을 추구하며 단기적으로 살아가는 인물이었고, 그래서 유미가 끼어 들어갈 틈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더더욱 이런 성격 특성을 부유함의 긍정적 혜택으로 착각하면 안 될 것입니다.
부자의 성격 특성: 타인의 도구화에 대단히 능함?
마지: 디키는 해가 비추는 것 같지. 눈부셔. 그러다가 돌아서면 아주 차가워. 관심이 있을 땐 세상에 둘도 없이 잘해주니까 모두가 그를 좋아해. 언제나 그래 새로운 사람만 만나면. 프레디, 파우스토, 피터 스미스 킹즐리. 멋진 사람이야 만난 적 있니? 특히 넌 그래. 남자들만 해도 그 정도지.
‘더 좋아하는 쪽은 늘 아쉽고, 덜 좋아하면 쿨해진다.’는 말에서 덜 좋아하는 쪽은, 요즘 들어 더욱, 사랑이나 우정에 매달리지 않아도 잘 살 만큼 삶의 기반이 탄탄하다는 식으로 평가됩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디키는 늘 아쉬울 게 없습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그가 극도로 자기중심적이어섭니다. 여태 쭉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과만 관계를 맺어 왔겠죠. 그러니 상대가 자신을 거부할 거라는 두려움이나 경계심도 없습니다. 이런 류의 사람들은 감정을 교류하거나 의견을 나누며 성장하려고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한 공간에 함께 머무르며 본인이 좋아하는 재즈를 듣거나 먹고 마시고, 수영하고 스키 타고, 불특정 다수의 이성과 문란한 성생활을 함께 하는 동료 관계를 가집니다. 그러니 서로에 대해 깊이 알 필요도 없고, 잘 보이거나 사랑받지 않아도 상관없죠. 자아 성찰도 하지 않는 사람이 남의 속인들 알고 싶을까요.
그런데 이들은 자신과는 정반대의 사람들을 귀신같이 감지합니다. 바로 무형의 것을 건네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마지와 톰은 디키에게 사랑을 주고, 받길 원합니다. 하지만 디키는 그들에게 자신의 자본을 베푸는 대가로 그들이 도구로 기능해주길 원합니다. 즐거움을 제공하는 광대, 사랑을 주고 돌봐주는 유모, 자신에게 부족한 학식을 제공하는 비서 등의 역할로써. 그렇게 동등했던 관계를, 갑을 구도로 재편합니다. 이들만큼 단기로 (캐주얼하게) 사람을 잘 부릴 줄 아는 사람도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톰과 마지의 반응이 다릅니다. 마지는 마치 중앙집권제 왕실의 중전처럼 ‘첫번째’의 자리에서 돌봄 노동을 하는 유모 역할에 만족하며 그런 정체성을 받아들일 인물이에요. 하지만 톰은 오히려 제멋대로 디키를 재정의하려는 사람이죠. 척 봐도 이성애자인 디키를 퀴어라고 주장하며, 디키를 꿰뚫어 보고 자신에게 집중해주길 요구합니다. 톰이 얼마나 짜증나게 굴었으면, 여태 호모 포비아를 억누르며 싱글싱글 에둘러 거절하던 디키가 요트에서 주먹을 날렸겠습니까.
톰: 웃기는 건 난 다른 사람인 척하지 않는데 넌 그런다는 거야. 난 너한테 솔직했어. 내 감정에 대해서. 근데 넌. 무엇보다, 난 알아. 체스를 두던 밤 말이야. 확실히 느꼈어. 넌 인정하기 두렵겠지. 그래서 형제라고 넘겨버리고, 마지랑 더러운 짓을 해. 있는대로 놀아나다가 이젠 결혼한다고? 정말 어처구니가 없어. 모두를 망치고 있잖아. 색소폰 분다더니 이제 드럼을 친다고?
디키: 후 아유. 넌 뭔데! 넌 뭔데!! 맨날 여자애처럼 내 이름이나 불러대고. 디키, 디키.
끝까지 자신의 시선으로 디키를 판단하는 톰의 뚝심을 보세요. 보편적인 시선으로 나와 타인을 바라보는 현실 감각이 부족한 겁니다. 톰은 여러모로 대단한 인물입니다. 진심으로 디키를 사랑했기 때문에 더욱 이렇게 굴었던 것 같습니다. 디키를 만난 다음 날 바로 디키의 아버지를 흉내 내며 그의 임무를 털어놓았고, 디키가 두어 번 옷 좀 사라고 해도 돈을 아끼겠다며 사지 않았죠. 톰은 디키를 동경한 게 아니라, 자신과는 너무 다른 그의 세계에도 재미를 느꼈던 것도 같습니다. 자아실현의 욕망이 강했다면, 디키와의 친분을 이용해 클래식 연주자로 성공하거나 대학에 진학해볼 자금을 마련하려고 했을 겁니다. 하지만 디키가 ‘거머리’, ‘역겨워’, ‘지겨워’ 등의 말로 자신을 재단하자, 이윽고 톰은 변질 됩니다. 끝내 모욕감과 수치심을 느끼고 맙니다. 살인 사건이 시작되죠. 디키에게 자극받지 않았더라면 톰은 기껏해야 디키의 비서가 되었을 것입니다. 톰이야말로 교류하는 상대에게 뭔가 많이 줄 수 있는, 상대를 성장시킬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그러니 저는 톰을 변질시킨 디키의 책임이 크다고 봅니다. 갑을 관계에 익숙한 디키는 톰을 모욕했어요. 디키는 톰이 재능 있고 똑똑하다는 걸 단번에 알아봤지만, 자신의 세계에 편입되는 것을 원한 적이 없습니다. 외부인으로서 얼마간 자신을 즐겁게 해주다가 떠나길 원했고요. 톰은 디키에게서 아무것도 얻은 게 없습니다. 톰이 뭔가 획득하기 시작한 건, 디키의 머리통을 타격해 죽인 후 살인을 은폐하려는 목적을 갖고 디키 행세를 했을 때부터죠. 그건 디키가 톰과 교류해줘서 얻은 기회가 아니라, 톰의 담대함과 계략 덕으로 얻어낸 것이고요.
선을 그으려는 태도가 문제
살인이나 신분 위장처럼 극적이진 않지만, 현실 속에도 중산층의 라이프 스타일을 흉내내려는 수많은 톰들이 존재합니다. 사람들은 이들을 분수에 넘치는 것을 탐내려는 허세 가득한 사람으로 취급하죠. 하지만 분수에 넘치는 것이라고 비웃는 그 태도가 문제 아닐까요? ‘너는 우리 집단에 속할 만한 사람이 아니야.’라고 선을 긋는 기만적인 태도가 문제입니다. 가난을 마이너리티 취급하는 태도가요. 그러한 선 긋기는 아래 계급 사람들이 수치와 좌절을 느끼게 합니다. 쓸모없는 감정입니다. 그런 편견에서 벗어나서 다른 이의 정체성을 탐하는 이가 많아지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2024년 9월 1일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