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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a Apr 24. 2023

[호모룩스 이야기-9] 영화 '더 웨일', 고래 이야기

[호모룩스 이야기-9]      



                                                 영화 '더 웨일'고래 이야기                    



                                                                                        시아               



  이건 고래 이야기가 아니다. 고래가 아닌데도 고래 이야기다. 

  글쓰기로 먹고사는 이들이 강조하는 것이 있다. 주제에 집중하고, 단락 나누기를 하고, 명확하고 설득력 있게 써라. 퇴고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고치고 또 고쳐라. 수정할수록 더 나아지고 많이 바꿀수록 생각을 명확하고 설득력 있게 표현할 확률이 높아진다.      

  작문 교수인 찰리는 온라인으로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자신의 얼굴을 숨긴 채다. 노트북 카메라가 고장 났다고 거짓으로 둘러댄다. 그는 272kg 초고도 비만자이다. 천편일률적인 이러한 글쓰기 법칙을 강의하고 있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월요일부터이다. 그는 게이의 포르노를 보면서 자위한다. 절정의 순간과 함께 극심한 심장의 통증이 찾아온다. 그때 우연히 들이닥친 자칭 선교사인 토마스. 찰리의 간절한 부탁대로 글을 읽어준다. 요행히 통증이 사라지고 나서 왜 읽어달라고 했냐는 토마스의 질문에 찰리는 답한다. 



  “당장 죽을 것 같아서 마지막으로 들으려고요.” 

  그것은 17세인 딸, 엘리가 4년 전에 쓴 에세이다. 딸의 근황을 궁금해하자 엘리 엄마가 보내준 글이었다. 찰리는 죽을 것 같은 고통의 순간마다 이 글을 소리 내어 읽곤 했다. 8살 때 헤어진 딸, 아예 딸을 보지 못하게 법으로 묶은 탓에 만날 수 없었던 딸이다. 별안간 찰리는 거구의 몸을 간신히 일으켜서 샤워를 한 뒤 딸한테 연락을 감행한다. 그렇게 해서 오게 된 딸은 삐딱하기 그지없다. 아빠를 본 첫 마디가 “나도 이렇게 뚱뚱해지는 거야?”다. 워커를 잡고 간신히 서 있는 아빠 모습을 SNS에 올리고 이렇게 적어 놓기도 한다. ‘화장시키면 지옥 불에 기름 끼얹는 꼴’      



  “그 애는 사악해!”

라고 말하는 엘리의 엄마한테 찰리는 말한다.      



  “역시, 필력이 있어. 이건 악한 게 아니야. 솔직한 거지. 이것보다 허접한 글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솔직’이라는 키워드로 찰리는 굳게 닫힌 영혼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게이 성향을 숨기고 결혼했다. 딸이 여덟 살 되던 무렵, 제자인 앨런 그랜트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이혼한 뒤 앨런과 같이 살아간다. 양육비를 보내고, 딸을 위해 거의 돈을 쓰지 않고 저축을 해두었지만, 어쨌든 그는 딸을 버린 무정한 아빠다. 자신의 욕망에 솔직했지만, 행복이 오래가지 못했다. 앨런이 물에 빠져 자살하고 만 것이다. 그 이후 찰리의 몸은 걷잡을 수 없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두문불출하며 오로지 정크푸드를 먹어댔다. 삶에 대한 모든 의미를 잃은 찰리는 병원에 가자는 주위의 권고도 무시했다. 그는 죽음이 코앞에 다가온 것을 알아리지만, 처참 속으로 자신을 내던진 채 지낸다. 오랜만에 찾아온 전처에게 이렇게 말한다. 



  “누가 자신의 인생에서 나 같은 놈을 끌어들이고 싶겠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그는 금요일에 죽는다(물론 그가 이날을 알 수는 없었지만, 놀랍게도 그의 직관만은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는 엘리의 엄마한테 말한다.      



  “애를 잘 돌보겠다고 분명히 약속해줘. 애를 포기하면 안 돼, 나도 그 애의 인생을 함께하고 싶었어... 애가 온전한 삶을 살게 될지 알아야겠어. 사랑하고 사랑받는 삶을 살았으면 하는 거야. 얘가 괜찮을지 내가 알아야겠어. 그 애에게는 우리뿐이야. 내 인생에서 잘한 일이 하나라도 있단 걸 알아야겠어!”

  그 말에 엘리의 엄마는 대답도 없이 세차게 문을 닫고 나간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잘한 일이 하나도 없었다고 결론 내린다. 사랑했던 연인은 자살했고, 거대한 몸집으로 죽을 순간만 기다리는 신세다. 찰리의 전담 간호사이자 앨런의 여동생 리즈의 돌보는 손길이 지금껏 그를 지탱하게 했지만, 늘 미안할 뿐이다. 이 모습, 이 꼴로 하늘나라에서 앨런을 만나다니 상상만 해도 끔찍할 노릇이다. 죽고 나서도 앨런을 만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조금 더 솔직해지자. 찰리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딸과 아내를 버렸다. 천벌을 받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찰리 따위한테 동정을 가질 필요도 없다!      

  딸 엘리는 대놓고 아빠를 비난한다. 조롱과 멸시를 받아도 마땅한 찰리. 그는 자신이 맡은 학생들한테 마지막 수업을 앞두고 메시지를 보낸다. ‘친애하는 학생들에게. 에세이들 집어치워. 독서도 집어치워. 제발 솔직하게 쓰란 말이야!’

  그에 부응하는 몇몇 학생들의 글을 만난다. 거짓을 벗어던지고 까발린 몇몇 구절을 지목하며 그는 유언처럼 마지막 수업을 한다.      



  “항의했다고 들었어요. 덕분에 강사는 교체되었어요. 후임 강사도 뻔하겠죠. 고쳐 써라, 더 객관적으로. 진심은 최대한 덜 담아라.... 이제 나도 진솔한 모습을 보여줄까 해요.” 

  그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카메라를 켜고 자신의 모습을 남김없이 보여준다.      



  “이 과제들은 중요하지 않아요. 이 강의도 중요하지 않아요. 대학도 중요하지 않아요. 여러분이 쓴 그 훌륭하고 진솔한 글들, 그게 중요하죠!” 

  다음 순간, 그는 자신의 껍데기를 벗어던지듯 노트북을 집어 던진다.      

  금요일이다. 그가 호흡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다. 

  토마스는 선교사라는 가면을 벗어던지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 사연을 설명한다. 엘리가 자신이 돈을 훔쳤다는 고백과 마리화나를 하는 모습을 찍어 워털루에 있는 자신의 교회와 부모한테 보냈다는 거였다. 그리고 방에서 우연히 발견한 앨런의 성경을 펼치며 얘기를 꺼낸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제가 당신을 만난 것은 앨런이 겪은 일을 이해하게 해주고 당신이 똑같이 겪지 않게 하라는 계시예요. 앨런은 주님의 뜻을 벗어나려던 거였어요. 주님 대신 당신과의 삶을 선택한 거라고요. 그래서 이 구절에 그렇게 집착한 거예요. 영이 아니라 육신으로 살 걸 알았으니까. 앨런은 구원을 포기했지만, 당신은 늦지 않았어요. 영으로 거듭나면 이 몸을 벗어나서 살 수 있으니까요.”

  찰리는 나지막한 음성으로 묻는다.       



  “앨런이 나와의 삶을 선택해서 죽었다고? 앨런이 날 사랑해서 신이 등을 돌렸다고?”

  토마스는 주저 없이 그렇다고 한다.


  그들은 사랑했다. 다만 육체를 탐했다면, ‘사랑’이라고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앨런이 자살하고 난 다음, 찰리의 영혼은 스스로 죽었다고 느낄 정도였다. 인간은 욕망을 누르면 진리 안에서 자유롭게 살 거라고 꿈꾼다. 자신의 욕망을 다스릴 수 없는 까닭에 타인의 욕망을 보고 손가락질한다. 욕망을 쫓아가는 이들을 칼로 찌름으로써 자신은 욕망으로부터 탈출한 것처럼 착각한다. 누구든 욕망으로부터 자유할 수 없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욕망을 억제하지 못한 이들을 비난하면서 비교하건대, 자신은 욕망을 잘 다스리고 있다고 여기면서 거짓된 현명함을 위안 삼아 살아간다. 살찐 자들, 동성연애자들, 바람이 나서 가정을 버린 자들한테 마구잡이로 돌멩이를 던진다. 이 세 박자를 모두 갖춘 이가 바로 찰리다.       

  극심한 고통을 겪으며 찰리는 마지막으로 딸한테 에세이를 읽어달라고 부탁한다.      



  “평생 본 것 중에 최고의 에세이야. 널 떠나서 미안해. 사랑에 빠져서. 그래서... 널 떠났어. 너한테 그러면 안 되는 건데. 나도 어떻게 그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어. 넌 정말 예쁘고 훌륭하고 넌 훌륭한 애야. 그 에세이도 훌륭해. 그 에세이는 너야... 그 에세이는 너야. 넌 내 인생 최고의 작품이야. 엘리. 너는 완벽해. 너는 행복해질 거야. 넌 사람들을 아껴. 도와주고 싶다면, 그걸 읽어줘.”

  매몰차게 거절하고 문을 박차고 나서려는 딸 엘리. 뒤돌아서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엘리는 마지못해 자신이 쓴 글을 읽기 시작한다. 



  <허먼 멜빌이 쓴 걸작 ‘모비 딕’은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작중 화자인 이스마엘이 작은 어촌에서 퀴퀘크라는 남자와 누워 있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스마엘과 퀴퀘크는 교회에 갔다가 배를 타고 출항하는데 선장은 해적인 에이허브다. 그는 다리 하나가 없고 어떤 고래에게 앙심을 품고 있다. 고래의 이름은 ‘모비 딕’. 백고래다. 내용이 전개되면서 에이허브는 많은 난관에 직면한다. 그는 평생을 그 고개를 죽이는 데 바친다. 안타까운 일이다. 고래는 감정이 없기 때문이다. 자길 죽이려는 에이허브의 집착도 모른다. 그저 불쌍하고 큰 짐승일 뿐. 에이허브도 참 가엾다. 그 고래만 죽이면 삶이 나아지리라 믿지만, 실상은 그에게 아무 도움이 안 될 테니까. 난 이 책이 너무 슬펐고 인물들에게 다양한 감정을 느꼈다. 고래 묘사만 잔뜩 있는 챕터들이 유독 슬펐다. 자신의 넋두리에 지친 독자들을 위한 배려인 걸 아니까. 이 책을 읽으며 내 삶을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걸음씩 기적적으로 아빠가 걸어온다. 아빠는 고래다. 그 고래 때문에 한쪽 다리를 빼앗긴 에이허브처럼 살아왔다. 아빠를 죽이면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고 여기며 아빠를 죽여왔다. 셀 수도 없이 마음속으로 아빠를 죽여왔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게 다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그저 불쌍하고 큰 고래가 되고만 아빠. 욕망을 향할 수밖에 없었던 인간이라는 슬픈 존재. 그 존재가 가진 욕망의 헛된 집착에 대한 깊은 슬픔. 그것은 원망이 아니라 연민이었다. 다만 연민이 아니라 사랑이었다.      



  딸한테 마지막 한걸음을 내딛은 찰리는 웃는다. 환하게 펴진 아빠의 얼굴을 보며 딸도 웃는다. 그 순간 찰리는 어릴 적 엘리와 함께 갔던 오리건 바다, 그 해변에 있다. 물살이 밀려들고 밀려가는 그곳에서 모래성을 쌓고 있는 해맑은 엘리와 화창한 하늘. 그리고 그 모든 어리석음과 아픔과 갈등을 한꺼번에 끌어안는 힘을 느낀다. ‘엘리(Eloi)’는 헬라어로 ‘나의 하나님’이란 뜻이다. 하나님 품에 오롯이 안겨 빛을 받고 있는 찰리.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과 나, 우리 모두한테 스며들고 있는 이 빛.                










  호모 룩스(HOMO LUX)는 빛으로서의 인간을 일컫습니다라틴어로 인간이라는 호모(HOMO)’와 빛인 룩스(LUX)’가 결합한 단어입니다     

  * ‘호모룩스 이야기는 치유와 결합한 시사와 심리예술과 문화에세이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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