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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a Apr 16. 2023

[호모룩스이야기-8]당신의 마음을 글로 쓰면 좋겠습니다

[호모룩스 이야기-8]   

   


                                    당신의 마음을 글로 쓰면 좋겠습니다                    


                                    


                                                                                                                   시아                    





  “수형자들이 저번 강의가 좋았다고 해서요. 이번에도 맡아주실 수 있을까요?”

  교도소 사회복귀과 교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지난 2월 말에 했던 강의 평가 결과가 나쁘지 않았나 보았다. 그때, 유독 다리를 흔들며 옆 사람과 킥킥거리며 웃던 이가 있었다. 내가 하는 강의는 그저 일방통행이 아니다. 치유 글쓰기 강의였으므로 참여자들이 직접 글을 써야 했다. 그렇게 쓴 글을 다 함께 나누도록 했다. 다리를 흔들던 이한테 쓴 글을 읽어보자고 하니 대번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부산 사람입니다. 부산 사람은 그런 거 안 합니다.”  

  그러던 그가 오후 시간에는 사뭇 달라 있었다. 책상 옆으로 내놓았던 다리를 거둬들이고 단정하게 앉았다. 옆 사람과 장난도 치지 않았다. 너무 진지해서 다른 사람인 줄 착각할 정도였다. 그 치만 달라진 게 아니었다. 시종일관 캐릭터 그림만 그리던 이가 있었다. 글을 아예 쓰지 않으니, 쓴 글을 읽어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나는 모른 척하고 발표를 시켰고, 그는 즉흥적으로 답했다. 그림을 그리고 있었더라도 듣기는 한 셈이었다. 나는 “미대 나오셨어요? 그림을 너무나 잘 그리시네요!”라며 한술 더 떠서 그렇게 얘기하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오후 시간에는 하자는 대로 글을 썼다. 그러더니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숙인 목덜미에 새겨진 검은 용이 대가리를 치켜들고 있었다. 그런 모습 자체가 감동이었다. 그렇더라도 그날, 나는 마지막 멘트를 잘하지 못했다. 좀 더 근사한 마무리를 했더라면 좋으련만, 이렇게 뻔한 인사를 했다. 모두 안녕히 계세요! 


     

  그랬는데 강의를 해달라고 연락을 받다니! 만사 제쳐놓고 승낙했다.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내려오신다면, 감옥으로 가셨으리라. 자기 삶을 옹골차게 꾸려나가는 잘난 이들한테 보다는 외지고 구석지고 축축한 곳으로 가는 것이 백번 생각해도 맞다. 그러다가 뒤통수 맞는 일이 생긴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일찌감치 각오한 일이 있다.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하다가 내담자가 휘두른 칼에 찔리는 일이 있더라도 치유하면서 생을 마치게 되어 영광이라고 여길 것이다. 그런 다짐 없이 이 일을 할 수는 없다. 언젠가 심상 시치료 과정생한테 이 말을 했지만, 그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강의 전날, 나는 무리했다. ‘리커버리(Recovery)’라는 이름으로 ‘당신의 마음을 글로 쓰면 좋겠습니다’의 내용대로 짤막하게 동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는 작업을 하는 후배 샨티윤을 만나러 경남 진영으로 간 것이다. 우리는 내친김에 봄 바다를 보러 동해로 갔다. 인트로 영상에 바다를 담겠다는 샨티윤의 야심 찬 시도 덕분이었다. 깔린 조약돌을 쉼 없이 쓰다듬는 바닷물결 소리와 파란 하늘빛이 어우러진 바다 기운을 받은 것까지는 좋았지만, 귀가하니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서너 시간도 자지 못하고 일어나서 천안으로 향해야 했다.      



  졸리고 말고 할 겨를도 없었다. 혹시나 지각할까 봐 액셀러레이터를 거세게 밟았다. 가까스로 약속한 아홉 시 오 분 전에 도착했다. 교도관의 인도에 따라 강의실로 향했다. 키가 큰 외국인들이 뛰어다니는 철조망이 쳐진 운동장을 지나쳐 몇 번의 관문을 통과해서 들어갔다. 스무 명 남짓한 이들이 푸른 죄수복을 입고 앉아 있었다. 본격적으로 강의를 시작할 때였다. 갑자기 소음이 들려왔다. 콘크리트 벽이나 바닥을 뚫는 엄청난 굉음이었다. 조금 있다가 괜찮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목소리를 키운 채 그대로 진행했다. 소리는 조금도 잦아들지 않았다. 뒷좌석에 앉아 있는 교도관을 바라보았다. 그는 별로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 내가 말을 걸었다.      



  “공사하나 보군요. 선생님도 오늘 아셨던 거지요?”

  그제야 교도관은 그렇다고 했다. 오늘부터 공사를 시작해서 한 달 동안 한다는 거였다. 없는 화장실을 새로 만드는 일이라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하며, 마이크를 굳게 잡았다. 평소보다 세 배는 더 큰 소리를 내며 강의했다. 조금이라도 소리를 멈출 때도 있지 않을까 했지만, 기대는 보기 좋게 어긋났다. 잠시도 쉬지 않고 엄청난 소음이 쏟아지고 있었다. 날카롭게 머리를 후벼 파는 듯한 소리에도 자리를 박차지 않는 스무 명의 재소자를 바라보았다. 모두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나는 태연해야 했다. 단 한 점도 언짢은 기색 없이 강의를 이어갔다. 분위기를 주도하는 엄청난 책임이 주어졌기 때문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부정적으로 흘러가서 짜증과 불만이 가득 고일 수도 있었다. 부정의 상황에서 긍정을 내는 것은 치료사로서 오랫동안 훈련해왔다. 나는 태연했고, 오히려 이 상황을 즐기기로 선택했다. 실은 그랬다. 이런 상황이 무척 재미있었다. 원래 강의는 조용하고 잡음이 없어야 하는 게 기본이 아닌가. 공사현장의 굉음이 쏟아지는 곳에서 강의라니! 언제 이렇게 희한한 상황을 또 만나보겠는가!      



  나는 있는 힘, 없는 힘을 다 내고 있었다. 목소리만 커진 게 아니라 열정이 보태졌다. 이들은 감옥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있는 치유 글쓰기 집단원이었다. 애초에 편견 따위는 동해에 던져버리고, 나는 다만 전하고 나누고 싶은 대로 진행할 뿐이었다. 뜨거운 내 바람이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었다. 폭탄처럼 쏟아지는 소음 가운데 우리는 살아남아야 했고, 소리의 포화를 헤치고 달려나가고 있었다. 



  ‘당신의 마음을 글로 쓰면 좋겠습니다’라는 책의 30~31쪽에 있는 치유 글쓰기 순서를 그대로 진행하였다. 먼저 안수환 시인의 ‘문’이라는 시를 낭송해달라고 한 수형자한테 부탁했다. 그는 쑥스러워했지만, 배경음악에 맞춰 또박또박 낭송했다. 나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너무나 멋진 목소리로 잘 낭송해주셨군요!      

  시의 전문은 이러하다. <내 마음속에는 / 닫힌 문짝을 열고자 하는 손과 / 열린 문짝을 닫고자 하는 손이 / 함께 살았다 // 닫히면서 열리고 / 열리면서 닫히는 문살을 / 힘껏 잡고 있으려니 // 눈물겨워라 눈물겨워라>     


  시에서 나오는 ‘마음의 문’은 닫힐 때가 있고 열릴 때가 있다. 나는 청개구리다. 닫히려고 하면 열려고 하고, 열릴 때는 닫으려고만 한다. 그러니 힘껏 잡아야 하고 그런 나를 보니 눈물겹다. 

  ‘문’하면 떠오르는 대상을 공책에 써보자고 했다. 그런 다음에는 그 대상한테 닫히고 열리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채 메시지를 적어보자고 했다. 제일 앞줄, 가운데 앉은 이한테 마이크를 주면서 쓴 글을 읽어보자고 했다.      



  “저는 아들을 생각했어요. 아들아, 미안하다. 그리고 사랑한다.”

  마지막 말에 떨림이 느껴졌다. 발표하고 난 뒤에는 모두 박수를 보내어 응원하도록 했다. 나는 마이크를 뒷자리로 넘겼다. 뒷사람이 이어 말했다.      



  “저는 아버지를 생각했어요. 아버지... 죄송해요. 앞으로는 속상하게 하지 않겠습니다.”

  묘했다. 서로 각자의 아들과 아버지를 떠올린 채 적었지만, 서로 통하고 있었다. 울컥하는 마음도 함께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대각선에 앉은 이한테 마이크를 넘겼다. 현란한 문신이 목덜미와 손등까지 뻗어있는 이였다.      



  “저는 트라우마예요. 트라우마야. 이제 그만 멈춰다오.”

  그는 시선을 아래로 떨군 채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 트라우마를 그저 수용한 채 그 대상한테 말해보자는 것이 주제에 맞았지만, 그의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트라우마를 생각하셨군요. 그 마음의 상처가 무엇인지는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만, 함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다 함께 응원하는 마음으로 따라 해주세요. 이분한테 에너지를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세 번을 세면 따라 해보세요. ‘트라우마야, 이제 그만 멈춰!’”

  우리는 그를 바라보며 외쳤다. 


  “트라우마야, 이제 그만 멈춰!”



  그렇게 말한다고 대번에 기억들이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겪은 트라우마가 무엇인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렇지만 그 순간 집단원들은 에너지를 모았고, 그가 긍정을 향해 갈 수 있도록 진심으로 기원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엄청난 굉음이 우리를 괴롭히지 않았다. 갑자기 소란스러운 소리가 증발하는 듯도 했다. 우리는 초집중했고, 열정이 가득했다.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열심히 받아적는 이들도 있었다. 허투루 시간을 보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오전 시간을 끝내고, 인근에 있는 성성 호수 공원에 갔다. 가지고 갔던 간식거리를 먹고 나서 차에 누워서 눈을 붙였다. 깜빡 잠이 들었다가 추워하며 깼다. 고단한 몸을 이끌고 급히 차를 몰아서 다시 교도소로 갔다. 이번에는 오 분 정도 지각하고 말았다. 강의실로 황급하게 들어가서 나머지 강의를 진행했다. 마이크를 쥐는 순간 나는 또 변신하고 말았다. 열정이 가득한 치유 글쓰기 강사가 되어 준비해 온 분량대로 진행했다.      



  마지막은 나짐 히크메트의 시 ‘진정한 여행’을 다 함께 낭송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시더라도 오늘 알아차린 ‘마음의 빛’의 메시지대로 행한다면, 올바른 마음의 길로 들어서게 될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이곳에 있지만, 훗날에는 아름다운 곳에 계실 거라고, 그렇게 응원 드립니다. 언제나 응원하며 기원하는 마음을 남기고 갑니다. 여러분, 수고 많으셨습니다.”     

  엄청난 박수 소리를 들었다. 갑자기 카네기 홀에서 방금 멋진 공연을 끝낸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까지 들 정도였다. 여전히 뚜뚜뚜뚜두... 하는 공사 소음을 들으며 강의실 문을 막 나서려는데 앞자리에 앉은 수형자가 말했다.      



  “강사님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참지 못했을 겁니다.”

  이 열악한 상황에서 강의한 것을 어떻게 잊겠는가? 나는 강의 도중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 너무나 특이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2023년 4월 10일. 이날, 독특한 소리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열정을 다 바쳐 우리가 나눴던 이 메시지! 저는 평생 못 잊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그러실 거라고 믿습니다.” 



  그랬다. 우리는 톡톡히 자이가르닉 효과를 누렸다. 러시아 심리학자 블루마 자이가르닉(Blima Zeigarnik)은 완결하지 못한 문제나 사건은 기억회로에서 떨쳐내지 못하고 되뇌기 때문에 더 오랫동안 기억한다는 원리를 증명한 실험을 했다. 두 개의 실험 집단으로 나눠서 진행했는데 한 집단은 과제를 수행하는데 아무런 방해를 하지 않았고, 다른 집단은 과제 도중에 대놓고 훼방했다. 그 결과 방해를 받지 않은 집단보다 방해를 받은 집단이 두 배 이상 기억을 잘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날, 내가 경험한 것은 여러모로 대박이었다.      



  “행정팀에서 공사를 그렇게 정했더라고요. 공무원들이 하는 일들이란... 융통성이란 모르고,.. 강의를 맞춰서 일정을 짜서 다른 날 해야 하는데...”  

  인솔한 교도관이 미안했던지 공사에 관한 행정팀의 무리한 진행에 관해 반복해서 말했지만, 나는 그저 웃었다. 괜찮다고, 재미있었다고 했다. 오히려 다른 때보다 참여자들의 태도가 훌륭했다고도 했다.      



  “아, 저 꽃 뭔지 아세요? 명자꽃이에요!”

  교도관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소담스러운 하얀 꽃을 가리켰다. 나는 펄쩍 뛰어 내려서 뜰 한가운데로 들어가서 향기를 맡았다.      



  “뭐, 향기는 잘 나지 않을 거예요. 하얀 꽃도 있지만. 붉은 꽃도 있답니다.”

  올 여름에 조기 퇴직해서 농사를 지을 거라며 그는 명자꽃처럼 웃었다. 나도 덩달아 웃었다. 인사를 하고 나서 출입증을 반납했다. 무더기로 쏟아지는 소리 전쟁터에서 무사히 살아 돌아온 느낌이었다. 그것도 영웅이 되어! 달리는 찻길 모퉁이마다 연초록빛이 무성하게 돋아나고 있었다.             










  호모 룩스(HOMO LUX)는 빛으로서의 인간을 일컫습니다라틴어로 인간이라는 호모(HOMO)’와 빛인 룩스(LUX)’가 결합한 단어입니다     

  * ‘호모룩스 이야기는 치유와 결합한 시사와 심리예술과 문화에세이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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