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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a Apr 25. 2023

[또또 이야기-4] 또또

[또또 - 4]      


                                                             또또               




                                                                                                                          시아



          

  그 집이 다가 아니었다. 집이 완성되고 난 사흘 후 푸가 말했다.     



  “저 위를 다 막을 것을 그랬어요. 비가 오면 빗물이 들이닥칠 텐데...”

  그러니까 울타리를 쳐놓은 곳 천장의 삼분의 일 정도는 뚫려있는 구조였다. 그래도 개집 위로는 충분히 비가 막아 지는 셈인데도 푸는 마음에 들지 않아 했다. 게다가 추위가 닥쳐오고 겨울이 되자 문제가 생겼다. 또또의 팬이 준 자율급수기에 달린 물그릇의 물이 얼기 시작했다. 푸는 안 되겠다며, 원룸 건물 현관에 자리를 마련했다.  


    

  “여기서 겨울을 나야겠어요. 밤에만 짖지 않으면 좋겠는데...”

  두툼한 방석과 물그릇, 밥그릇을 옮기며 푸가 말했다. 며칠 뒤 푸는 다행이라고 했다. 원룸에 입주한 두 사람한테 물어보니, 밤에는 조용했다는 거였다. 푸의 제자인 화가 J가 털이 북실북실하니까 한데 키워도 된다고 했지만, 푸는 고개를 저었다.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라는 거였다. 어쨌든 또또는 현관에서 무사히 겨울을 났다. 덕분에 원룸 출입구 문을 열고 들어서면 또또 냄새가 진동했다. 그래도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았다. 자주 찾아오던 초등학생 또또 팬들은 누가 알려준 것인지 출입문 비밀번호를 잘도 알고 들어왔다. 그렇게 또또와 한참 동안 놀다가 가기도 했다. 또또가 아니었다면, 주짓수 도복을 입고 다니는 무호와 그 여동생 지호를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또또가 아니었다면, 무호와 지호를 잠깐 초대해서 푸의 미술 작품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었겠는가. 또또가 아니었다면, 수십 살이나 차이가 나는 그 아이들과 어떻게 미소를 나눌 수 있었겠는가. 


     

  무호는 장발 머리를 한 초등학생 6학년이다. 볕이 잘 들 때 바깥에 잠시 또또를 둔 날이었다. 갑자기 아이의 외침이 들려왔다.      



  “여기, 이것 좀 보세요! 또또 줄을 좀 길게 해야 할 것 같아요!”

  창문을 열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진지한 얼굴을 한 도복을 입은 남자아이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손으로 줄을 가리켰다. 담벼락 반대편에 비스듬히 햇살이 들어와 있었는데, 또또는 그늘진 곳에 있었다. 그러니까 햇볕이 잘 드는 쪽으로 또또를 두게 하기 위해서는 하네스와 연결된 줄을 길게 해야 한다는 거였다. 알겠다고 하며 나는 웃었다. 당찬 녀석이었다. 



  그 아이들뿐만 아니었다. 완성된 또또의 집 앞으로 많은 이들이 찾아왔다. 근처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인근 한의대생들, 고등학생들, 남자 어른들, 여자 어른들. 또또를 만져보려고 줄을 설 정도였다. 그 어떤 것이 우리 또또를 끌어당기게 했을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또또를 좋아하는 이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했다. 참, 잘생겼어요. 순해요. 개가 저를 잘 따라요. 참 착해요.      



  집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마저 해야겠다. 푸의 말대로 비가 올 때는 개집 위쪽으로 막혀있는 부분은 괜찮지만, 막히지 않은 쪽으로 사정없이 빗물이 들어왔다. 그럴 때는 개집 안에 들어있어야 하는데, 또또는 말을 잘 듣지 않았다. 나오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해도 나와서는 비를 맞기 일쑤였다. 게다가 개집 안에 깔아준 방석을 함부로 물어뜯어서 너덜너덜하게 만들고 말았다. 그 방석을 두고 푸와 또또가 얼마나 실랑이를 벌였는지 모른다.      



  “또 방석을 꺼냈구나! 하지 말랬지!”

  그렇게 역정을 내다가 푸는 채찍과 당근이라는 오래된 훈육의 태도로 또또를 얼렀다.      



  “앞으로는 그러면 안 된다. 알겠지? 방석 꺼내지 말거라!”

  그렇게 하고 간식을 주면 또또는 날름 그걸 받아먹고 꼬리를 흔든다. 기껏 푸가 낸 화가 머쓱해질 정도로 좋아라 한다. 그다음 날에는 영락없이 방석을 또 꺼내놓는다. 그러면 푸는 혼내고. 그다음 날도 여전하다. 그러다가 어느 날에는 요행히 방석을 꺼내놓지 않았고, 푸는 얼굴 한가득 웃음을 머금었다. 그다음 날에는 푸의 기대를 져버려서 역시 푸는 화를 냈다. 어쩌다가 또또는 방석을 꺼내지 않기도 했다. 그야말로 푸의 훈육이 아니라 또또의 마음이었다. 또또의 행동에 울고 웃는 푸가 안쓰럽기 그지없을 정도였다. 



  아직 한겨울일 때, 그러니까 원룸 건물 안에 또또가 있을 때였다. 나는 새해 선물이라며 애견용 고급 침대를 샀다. 쿠션이 들어있고 제법 큼지막해서 그것만 있으면 충분히 겨울을 날 터였다. 푸와 나는 옳거니 하며 그 침대가 배달되어온 종이상자에 초록색 천 테이프를 둘둘 감아서 침대 곽을 만들었다. 이만하면 침대를 뜯을 일도 없겠고, 곽을 뜯지도 않을 거라고 장담했다. 막상 또또는 그 럭셔리한 침대에 아예 올라가지 않았다.      



  “이제, 너는 이 정도는 가질 수 있어. 이건 네 거야!”

  아무리 말해줘도 또또는 차디찬 바닥에 물어뜯어 나달나달하게 해진 방석 쪼가리를 깔고 잤다. 그 럭셔리한 침대에 길들이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모른다. 이제 넌 부르주아야. 더 이상 노숙하던 개가 아니야! 사치를 즐겨봐! 아무리 말해줘도 또또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 럭셔리를 가까이하지 않았다. 침대 위에 먹을 것을 얹어 보기고 하고, 침대 위로 또또를 냅다 들어다 올려놓기도 했다. 간신히 또또가 침대와 친해져서 편안하게 눕던 날에 푸와 나는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그렇게 얌전하게 지내는가 했지만, 또또의 만행은 계속 되었다. 침대를 물어뜯지는 않았지만, 곽은 박살을 내고 만 거였다. 푸는 혀를 끌끌 찼다. 이걸 물어뜯다니, 너무 하구나! 또또는 능청스럽게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푸는 나무랄 힘도 없다는 듯이 또또를 쳐다봤다.      



  그러다가 화창한 봄 햇살이 사위에 가득한 날, 또또는 자신의 집으로 갔다. 긴 은둔 생활이 끝난 거였다. 그렇게 주차장 안쪽 공간, 또또의 보금자리에서 한가롭게 지낼 무렵이었다. 한때 성대 수술을 한 게 아닌가 안쓰러워 보일 정도였던 또또는 참으로 잘도 짖었다. 점점 강도를 높여서 우렁차게 짖어댔다. 또또가 주로 짖는 대상은 이러했다.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이, 지팡이를 집고 다리를 끌며 지나가는 노인, 종이상자를 모으기 위해 리어카를 끌고 다니는 이, 뒤에서 휠체어를 밀며 지나가는 이, 다른 개를 데리고 오가는 이, 지나가는 고양이, 그리고 자전거나 자동차.      



  그러니까 또또는 시도 때도 없이 짖어댔다. 우렁찬 강도가 점점 심해졌지만, 그래도 작년 가을보다는 나은 편이었다. 리어카를 끌고 다니던 청소 아저씨한테는 더 이상 짖지 않았다. 그 아저씨는 또또의 팬으로 흡수되었기 때문이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이들한테도 거의 짖지 않았다. 그들 중에서 또또를 예뻐하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유독 또또의 소리에 화와 짜증을 내는 이가 있었고, 또또는 여기에 지지 않았다. 급기야 이런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바로 옆 건물 원룸 일 층에서 들려온 고함이었다.      



  “이 놈의 개새끼! 당장 쳐 죽여 버린다! 아가리 안 닥쳐!”

  또또는 이 소리에 굴하지 않고 완강하게 짖어대기 시작했다. 놀란 푸가 달려나가 또또를 진정시켰다. 그런 다음 봄 햇살이 향기롭게 퍼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또또는 다시 현관 안으로 들어와야 했다. 그렇게 며칠을 또또는 다시 갇혀서 지냈다. 푸의 말에 의하면, 그게 한 두어 번 반복된 일이라고 했다. 얼마나 사납게 말하던지, 그 사내가 당장이라도 달려와서 또또의 목을 비틀 기세라는 거였다. 그러다가 사월 중순이 된 어느 날, 큰 결심이라도 하듯 푸가 말했다.      



  “또또 집 지붕을 마저 막아야겠어요. 비가 들이닥치지 않게. 그리고 바닥도 나무로 깔고요. 업자가 다음 주에 온댔어요,”

  비용을 물어보았다. 오십만 원이 든다고 했다. 그러니, 처음에 든 것과 합치면 백오 만원인 셈이다. 가슴이 철렁했지만, 나는 호흡을 고르면서 말했다.     



  “이번에 공사하면, 이게 마지막인 건 아시지요?”        










 * ‘또또이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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