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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a Jun 01. 2023

[또또 - 8] 또또 이야기





[또또 - 8]      



                                                     또또 이야기


               

                                                                                                                  시아                    

 



 설마 했는데, 역시였다. 푸는 또또를 조선 시대에 두기로 작정한 것이다.     



  “중성화수술을 하면 순해진다면서요? 지금도 순한데, 더 순해지면 바보가 되란 말이오?”

  다짜고짜 이렇게 따지고 들었다. 그럼, 발정이 나서 함부로 나가려고 하면 어쩌냐고 묻자 푸는 잘라 말했다. 


     

  “그러지 않을 거요. 수술을 했다고 도망 안 가는 것도 아닐테고.”

  그래도 수술하면 수명이 길어진다고도 하고, 이왕 수술 날짜까지 잡았으니 하자고 밀어붙였다. 푸는 단호했다.      



  “몸에 인식 칩을 심는 것도 내키지 않은 일이었는데, 수술은 무슨? 안 합니다, 안 해요!”

  할 수 없이 동물 병원에 연락해서 취소했다. 간호사는 다만 연기하는 것 아니냐며 조만간 다시 연락 달라고 했다. 나는 대충 얼버무리며 전화를 끊었다. 이제 수술은 물 건너가고 말았다. 첨단을 걷는 이 21세기에 유일하게 조선 시대 식으로 살게 된 우리 또또!      



  혹시, 다음에 또또가 아빠가 될 수도 있겠냐고 하니, 푸는 그거야, 모를 일이라며 빙그레 웃었다. 그럴 날이 오긴 할까? 넓은 뜰 안에 마음껏 뛰어놀면서 다정한 암컷 개와 살아가는 또또를 상상해보았다. 갓 태어나서 꼬물거리는 강아지 곁에 있는 또또도 떠올려보았다. 어쩐지 그림이 그려지는 것이, 영 뜻밖의 일은 아닐 지도 모른다. 어떻게 알겠는가. 우리 앞에 어떤 일들이 펼쳐질는지!     



  또또를 처음 만난 주천생태공원. 언젠가 그곳으로 한 번 더 가보자고 푸가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이유를 말하지 않았고, 그냥 그러자고 했다. 또또는 그곳을 기억할까? 굶주렸고, 막막하고 외로움에 찌들렸던 그 시절을 기억하고 있을까? 집이 생기고, 가족이 생겨서 처지가 확 달라진 또또를 데리고 그곳을 간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짜릿한 일이다. 더 이상 외톨이가 아닌 또또.      



  “그곳에서 도망가버리면, 그냥 놔두고 올 거요.”

  푸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어쨌든 그곳에 가면 목줄부터 풀어놓자고 했다. 실컷 뛰어놀면서 과거를 돌아볼 기회를 주자는 거창한 계획을 세운 것이다. 아무래도 더 더워지기 전이 좋을 것 같아서 날짜를 벼르다가 결국 일을 저질렀다. 5월 14일. 일요일. 좀처럼 차에 타지 않으려는 또또한테 설명했다. 우리가 처음 만난 그곳으로 가보는 거야! 걱정 마!      



  뒷좌석에 푸와 함께 앉은 또또는 불안해하는 기색이었다. 푸가 아무리 앉으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 차창 밖으로 시선을 두면서 꼬리를 내려뜨리고 있었다. 혼자 그렇게 두고 잠시 앞자리로 옮겨 앉은 푸가 안 되겠다며, 녀석이 불안해 보인다며 다시 뒷자리로 갔다. 첫날, 공원에서 차에 태우고 오던 날에 침을 많이 흘리고 토하기도 해서 걱정이 되기는 했다. 이번에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급경사로 구부러진 길이 이어지자 침을 흘려댔다. 물티슈로 대충 닦아 내던 푸는 갑자기 웃었다.      



  “이 녀석이 나한테 딱 붙어있어요. 이렇게 해야 안심이라는 듯이 말요.”

  평소에도 또또는 내 살갗에 밀착해서 앉곤 했다. 지독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랑하는 이들은 늘 어딘가 자연스럽게 닿게 되니까. 푸는 이런 밀착이 어색한 지 연신 같은 말을 했다. 이 녀석이 나한테 딱 붙어있어요! 


     

  나는 운전을 하면서도 뒷좌석을 자주 흘낏거리며 바라보았다. 우리는 가족이 아닌데, 가족이다. 가족일 수 없는 데도 가족이다. 혈연관계나 법적 관계가 아닌 가족. 묘하고 신비로운 가족. 이 세상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가족. 우리끼리인 가족. 



  우여곡절 끝에 생태공원에 도착했다. 약속대로 목줄을 풀어주고, 풀밭에 자리를 깔았다. 예상과 달리 또또는 우리 주변에만 서성거렸다. 가지고 간 간식거리를 주자 날름 삼켜 버렸다. 싸 가지고 간 고구마를 먹자 또또는 입맛을 다셨다. 나가 놀아! 라고 푸가 말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또또는 야생 기질을 다 내버린 것만 같았다. 탈출 사건이 있었던 것도 불과 두 달 전인데, 또또는 달아나지 않았다. 고구마 껍질을 벗겨주자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이번에는 껍질 채 던져주자 주저하더니 껍질을 벗겨내려고 힘을 쓰고 있었다. 어허~ 껍질은 안 먹겠다 이거지? 푸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고급스러워진 또또. 노숙 개가 아니라는 사실이 더없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가지고 간 고구마를 다 먹고 나서 그네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또또가 따라왔다. 많이 많이 뛰어놀렴. 얼마든지! 그렇게 말하면서 훠이훠이 가보라는 손짓을 했다. 휴일인데도 사람들이 드물었다. 

  어때, 기억나? 여기서 우리가 만났잖아! 이런 말도 해보았다. 또또는 얌전했다. 우리가 버릴까 봐 그래? 그러지 않아. 그냥 놀아라고 온 거야. 걱정말고 뛰어놀렴.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또또는 우리 주변만 맴돌고 있었다.      



  나는 좀 다른 방법을 써보았다. 냅다 달려 보았다. 그러면 또또도 같이 뛸 테니까. 활기차게 뛰다 보면 자유롭게 다니지 않을까 해서였다. 효과가 있었다. 갑자기 또또는 흥을 되찾은 듯 자유를 만끽하기 시작했다. 쏜살같이 내달려서 도로 위까지 올라가려고 했다. 그곳은 간혹 차들이 다녀서 위험했다. 그때였다. 아래쪽에 떨어져 있던 푸가 손을 쳐들어서 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또또! 거기 가면 안 돼! 돌아와!”

  또또는 뛰어가다 말고 멈춰서 돌아보았다. 손짓을 하고 있는 푸를 보면서 일초간 망설이는 듯했다. 돌아갈까? 그냥 무시하고 가버릴까? 아마도 그 순간, 그런 두 가지 마음이 공존하고 있었지 않았을까? 또또는 달려왔다.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도망치려면 얼마든지 칠 수 있었다. 그런 다음에도 또또는 엄청난 속도로 달려갔다가 이내 돌아왔다. 우리의 눈 밖에 벗어나는 거리까지는 가지 않았다. 공원이 익숙한 듯 여기저기를 내달렸다. 이곳에서 머물렀던 때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더 이상, 그 당시의 내가 아니라는 것을 땅과 하늘한테 제대로 알리듯 달리고 또 달렸다. 그러다가도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왔다. 보세요! 나 여기 있어요! 그러듯이. 


     

  자리 위에서 누워서 하늘을 봤다. 구름을 모았다가 흐트렸다가 장난치는 하늘. 푸르른 하늘 한 가운데 드러 누운 것만 같았다. 나뭇잎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햇살들. 온몸에 새순이 돋아오를 것만 같은 순간, 또또가 나타나서 내 얼굴을 핥기 시작했다. 간지러워서 마구 웃었다. 이 순간을 잊을 수 있을까. 언젠가 아무 것도 기억할 수 없을 때가 되어서도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다. 오월의 싱스러운 바람이 내 머리를 찬찬히 쓸어주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푸는 촉촉한 음성으로 말했다.      



  “나, 정말 감동했어요. 또또가 이제 정말 가족이라는 것을 오늘 확실히 알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또또는 목줄에 매여 있기에 마지못해 있는 속박된 존재가 아니었다. 자유로운 순간에도 푸와 나를 의식하며, 우리가 함께 한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감동할 만했다!      



  돌아오는 길에도 여전히 굴곡진 길에서 불안해하고 침을 흘렸지만, 그래도 무사히 돌아왔다. 가뜩이나 날려대는 또또의 털이 차 시트를 엉망으로 해놓았지만, 그래도 좋았다. 목줄 없이 양껏 뛰어 놀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어서도 좋았다. 도망가지도 않고, 자유시간을 제대로 즐긴 똑똑한 또또!              










 * ‘또또이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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