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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a Jul 16. 2023

소설 '모비딕' 에이허브의 심상 시치료 초기면담

좌절: 성공과 실패

[호모룩스 이야기-11] 



       소설 '모비딕' 에이허브의 심상 시치료 초기면담

                  -좌절: 성공과 실패-          




시아

   

  좌절은 마음이나 기운이 꺾이는 것, 어떤 계획이나 일이 실패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의 의미로는 어떤 일을 원하는 대로 이룬다는 뜻의 성공이 있다. 그러니까 어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성공하지 못할 때 실패의 상황에서 느끼게 되는 것이 바로 좌절이다. 



  누구든 좌절을 겪지 않을 수 없다. 그 종류도 다양해서 갖가지 일들로 인해 좌절감을 경험한다. 성공에 대한 확신이 강하고,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여길수록 그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좌절감을 크게 겪게 된다. 용맹스럽고 추진력이 강하게 일을 했지만, 제대로 일이 되지 않는다면 당연히 좌절감이 올 수밖에 없다. 그런 감정이 지나치게 오랫동안 지속하면서 상태가 깊어지면 우울증으로 진행될 수 있다. 혹은 좌절에 대한 반작용으로 도저히 실패를 받아들일 수 없는 심정으로 과하게 몰입하여 분기탱천한 나머지 헛된 도전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극단적인 상태는 좌절로 인해 파생되는 부정적 효과이며, 경계해야 한다.



  다양한 원인으로 겪는 좌절감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살아오면서 좌절을 겪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좌절감 자체는 문제 될 것이 없다. 어떤 일을 열정적으로 매달려 했지만, 잘되지 않는다면 기운이 빠지는 것은 당연하다. 억지로 서둘러 좌절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보다 실패에 대한 수용과 함께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돌아보고 안아줘야 한다. 승부욕이 강한 사람일수록 좌절감의 폭이 넓고, 양극단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 자신을 돌봐주고 자기 위로를 해주는 것도 어렵다. 자신에게 냉정하게 비판하며 마음속으로 자신한테 화살을 쏘아댄다. 실패의 가장 큰 원인으로 오로지 자신을 탓하며 창으로 자신을 찔러댄다. 어마어마한 고통 가운데 자신을 내팽개친다. 냉혹하게 자신을 공격하는 마음에는 좌절을 당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화’가 도사리고 있다. 애꿎은 자신에게 화풀이해대는 것이다. 

  ‘화풀이’라는 말은 엉터리여서, 좀처럼 화가 풀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화를 더 내게 되고, 화는 더 커지게 된다. 자신한테 내는 화도 그렇다.  



  좌절감으로 고통받는 이는 일단, 좌절을 당한 것 자체에 대한 수용과 인정이 필요하다. 그 일이 좌절로 다가오는 이유를 스스로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런 다음, 자신을 다독이며 충분히 위로를 해줘야 한다. 그렇게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나서 평온한 마음이 되면, 그다음 해야 할 일에 대해 슬기로운 생각이 떠오를 수 있다. 좌절감을 느꼈다는 것은 쉬어야 한다는 신호가 온 것이다. 충분한 휴식과 따뜻한 지지로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주면, 꺾인 기를 살릴 수 있다. 그때, 제대로 온전한 사고로 향후의 일들을 결정할 수 있다. 




     

  한 중년의 남자가 있다. 직업은 포경선의 선장이다. 미국 소설가 허먼 멜빌(Herman Melville)의 ‘모비 딕(Moby-Dick or, The Whale)’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모비 딕은 135장으로 된 장편이다. 소설 모비 딕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소설의 화자는 이스마엘이다. 선원 생활을 해본 이력은 있으나 포경선은 처음이다. 소설은 크게 세 덩어리로 구성되어 있다. 이스마엘이 포경선에 올라 항해의 목적을 알게 되기까지의 부분, 대서양에서 희망봉을 돌아 태평양까지 이어지는 항해 부분, 모비 딕과의 결투와 ‘피쿼드’호의 침몰 장면이다. 



  에이허브 선장이 이끄는 포경선 ‘피쿼드’호는 애초부터 흰고래 ‘모비 딕’을 쫓기 위해 바다로 간 것이다. 이스마엘은 예리하면서도 낭만적인 오페라나 서사시를 쓰듯이 피쿼드호에서 일어나는 일을 얘기한다. 선장 에이허브는 오래전 모비 딕한테 자신의 다리를 잃었고, 고래 뼈로 만든 의족으로 지탱하고 있다. 선장의 일념은 모비 딕을 잡아서 복수하는 것에 있다. 



  급기야 태평양에서 모비 딕을 만나서 사흘간 대격투를 벌인다. 에이허브 선장은 모비 딕에게 던진 작살 밧줄이 목에 감기는 바람에 끌려가 버린다. 성난 모비 딕은 피쿼드호를 들이받아 박살 내버린다. 



  유일한 생존자인 이스마엘은 자신과 우정을 쌓았던 식인토인 퀴퀘그가 열병에 걸려 죽음을 대비해서 만들었던 관에 매달려서 버틴다. 그러다가 고래한테 잃은 아들을 찾아다니는 선장이 탄 레이첼 호에 의해 구조된다. 




  에이허브 선장은 소설의 사건을 일으키는 주요한 인물이다. 흰머리 향유고래인 모비 딕(Moby Dick)은 ‘거대한’이라는 모비(Moby)와 남자의 성기를 일컫는 딕(dick)의 합성어다. 

  실제로 에식스 호를 사납게 공격한 늙은 수컷 알비노 이빨 고래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다. 향유고래 특유의 권투 장갑 모양의 머리로 두 차례 박치기하여 선체에 구멍을 내면서 238톤의 에식스호를 단 10분 만에 침몰시켰던 사건이 있었다. 칠레 남부 모카섬에 주로 나타나서 포경선을 공격하는 늙고 거대한 ‘모카딕’라는 흰색 알비노 향유고래가 19세기에 존재했다고 한다. 일반 고래는 포경선만 보면 도망가기 바쁜데 거대한 모카딕은 오히려 맹렬히 달려들어 이마로 박치기를 하고 큰 꼬리지느러미를 내리치면서 매우 난폭하게 고래잡이배와 선원들을 공격했다고 한다. 1838년에 이 고래가 잡혔을 때 몸에 19개의 작살이 꽂혀 있었고, 엄청난 양의 고래기름과 용연향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향유고래는 수컷이 암컷보다 훨씬 크게 성장한다고 알려져 있다. 길이 26m, 몸무게가 80톤이 넘는 늙은 수컷 알비노 향유고래, 사납기로 유명한 모카딕(Mocha Dick)이란 거대한 흰고래를 보고 허먼 멜빌이 ‘모비 딕’을 탄생시켰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의 다리를 앗아간 모비 딕에 대한 복수에 혈안이 된 에이허브를 만날 차례다. 그는 실패에 대한 극도의 분노로 남은 인생을 오로지 모비 딕을 잡는데 투자할 생각이다. 소설 ‘모비 딕’은 1851년에 세상으로 나왔지만, 이 글에서는 시간적 배경을 현대로 할 것이다. 미국에서는 17세기에 고래잡이가 시작되었으나 1924년에 마지막 포경선이 출항한 이후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의 선언으로 포경이 금지되었다. 한국은 1985년 11월 1일로 포경을 금지하였다.





  에이허브는 64세다. 십 년 전에 모비 딕한테 잃은 오른쪽 다리는 의족을 한 상태다. 불법 포경으로 법의 저촉을 받은 적도 두 번이나 된다. 다시 포경을 한답시고 선원을 모집하자 그의 가족들이 경찰서에 신고했다. 경찰은 에이허브한테 심리치료를 받지 않으면 정신건강의학과에 입원하라는 강경한 권유를 해왔다. 그는 입원만은 도저히 할 수 없다며, 내키지 않지만 억지로 심상 시치료 센터를 방문했다. 



  에이허브는 48세에 결혼을 해서 50세 때 낳은 아들이 있으며 아내와는 열한 살 차이다. 아들은 중학교 1학년으로 학교생활에 충실히 잘하고 있으며, 아내는 최근 베이비시터로 돈을 벌고 있다. 가정형편은 중 정도이며, 에이허브가 따로 일하지 않더라도 가계에는 지장이 없을 정도다. 에이허브의 아내는 남편이 취미생활이나 소일거리를 찾아서 일상을 보냈으면 좋겠다고 하며, 불법 포경에 대한 마음을 그만 내려놓기를 원하고 있다고 했다. 포경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면, 에이허브는 만점짜리는 아니어도 꽤 성실한 남편이라고 했다. 그의 성격은 일에 대해서는 꼼꼼하고 치밀하며 깔끔하고 전반적으로 성마른 편이면서도 온순한 구석이 있어서 친한 이들한테 정을 많이 느끼고 물질을 많이 베푸는 편이라고 한다. 최근 오 년 전부터 부쩍 에이허브는 술을 자주 마시며 모비 딕에 대한 저주의 말을 해대곤 했다고 한다. 



  에이허브의 부친은 10년 전에 위암으로, 모친은 5년 전에 담낭암으로 돌아가셨다. 부친의 생전 직업 또한, 포경선 선장이었으며, 모친은 가정을 성실하게 돌봤다고 한다. 에이허브한테는 동생이 한 명 있는데, 예전에 모비 딕한테 에이허브가 다리를 빼앗긴 날에도 동생과 함께였다고 한다. 일등 항해사였던 동생은 이후 도박으로 전 재산을 날리고 이혼한 뒤 알코올중독으로 지내다가 최근 6개월 전에 치사량의 술로 생을 마감하였다. 에이허브는 동생의 뒷바라지를 줄곧 해왔고, 동생이 죽기 전까지 헌신적으로 간호했다고 한다. 최근 들어 술을 마시면, 동생을 들먹거리며 모비 딕에게 저주의 말을 심하게 하며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러한 정보는 에이허브의 부인으로부터 들은 것임을 밝혀 둔다.        





         

에이허브의 초기상담


  에이허브는 약속한 시간 보다 삼십 분 늦게 도착했다. 치료사는 시간을 넘기자 에이허브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으나 그는 받지 않았고, 미리 양해를 부탁하는 메시지도 없었다. 그렇게 삼십 분이 지난 시각에 그는 의족을 한 발을 쿵쿵 짚으면서 계단을 올라와서는 불쑥 들어섰다. 

     

-치료사: (반가운 음성으로) 어서 오세요. 연락이 안 되어 걱정했습니다.      


-에이허브: (무뚝뚝한 음성으로 치료사를 똑바로 쳐다보며) 뭐, 안 올까 봐서요? 이렇게 왔잖소!     


-치료사: 약속한 시간보다 삼십 분 늦게 오셔서요.     


-에이허브: (퉁명스럽게) 아, 뭐. 그럴 수도 있지 않소? 차가 밀리는 바람에 그랬소. 휴대폰을 진동으로 하는 바람에 소리를 못 들었소.      


-치료사: 네, 선생님. 솔직한 마음으로는 썩 내키지 않았을 텐데도 이렇게 참석하셔서 감사합니다. 무척 많이 뵙고 싶었습니다.      


-에이허브: 나를요? 뭘 기대한다고 보고 싶었다니, 그런 소리를 하는 거요?     


-치료사: 선생님에 대해서는 자세히 들은 바는 없지만, 고래잡이를 평생 해오셨고, 법으로 금지된 이후로도 그 꿈을 놓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요. 저도 고래를 무척 좋아합니다.      


-에이허브: 그거 참! 번지수를 잘못 짚었소. 내가 고래를 좋아해서 잡으러 다닌 줄 아시오? 이거, 무슨 치료사라는 사람이 이래?     


-치료사: 고래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면, 왜 잡으려고 하셨는지요?     


-에이허브: 그럼, 도둑과 강도와 사기꾼을 좋아해서 경찰이 잡으러 다니나? 무슨 말을 그렇게 해? 그놈들을 잡아 족쳐야 하는 직업이라서 하는 것이지. 나도 마찬가지요. 평생 고래를 잡아 왔지만, 그놈들을 잡아야 하는 직업 때문에 했던 거요. 다아~ 먹고 살자니 할 뿐이었소. 그밖에 다른 뜻은 없소.     


-치료사: 그러셨군요. 선생님 말씀이 맞습니다. 직업이셨군요. 그렇지만 고래잡이를 금지한 다음에도, 공식적으로는 직업을 그만두셨는데도 계속해서 고래잡이를 나가지 않으셨던가요? 그럼, 직업과는 좀 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만.     


-에이허브: 그건, 좀 그런 게 있지요. 내가 그걸 얘기해야겠소? 굳이?     


-치료사: 처음 만나는 저한테 속말을 털어놓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은 압니다. 저도 그럴 거예요. 하지만 저는 고래를 참 좋아하는데... 크고 거대한 몸집을 가지고 있지만, 고래는 영특하고 젖으로 키우면서 일반 물고기와는 다른...     


-에이허브: (팔짱을 끼고 턱을 위로 치켜들면서) 허, 참... 선생! 지금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말이라는 것 알고 있소? 그리고 단 한 번이라도 고래를 직접 본 적이 있소?     


-치료사: 아뇨. 실제로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에이허브: (여전히 팔짱을 낀 채) 그래놓고 무슨 딴소리를! 고래 이야기는 내 앞에서 꺼내지도 마시오!     


-치료사: 그래도 저는 고래가 참 좋습니다. ‘흰수염 고래’라는 노래도 있어요. YB 노래인데,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이런 가사의 노래입니다.(노래를 검색해서 틀어준다.) 

  너 가는 길이 너무 지치고 힘들 때

  말을 해줘 숨기지마 넌 혼자가 아니야

  우리도 언젠가 흰수염 고래처럼 헤엄쳐

  두려움 없이 이 넓은 세상 살아갈 수 있길

  그런 사람이길

  더 상처 받지마 이젠 울지마 웃어봐     


-에이허브: (팔짱을 풀며 목 근육을 좌우로 풀며) 참, 웃기는 노래군. 흰수염 고래? 난 그 녀석을 알아. 수염뿐만 아니라 온통 흰고래를 알고 있지. 녀석은 괴물이요. 괴물! 이마에 주름이 잡혀있고 아가리가 우그러진 고래지. 대가리라 희고 오른쪽 꼬리에 구멍이 세 개 뚫려있소. 물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꼬리를 좀 묘하게 놀리고 물을 내뿜는 것도 유별나지. 향유고래치고는 무성한 덤불처럼 넓게 퍼지고 굉장히 빨라. 그리고 몸뚱이에 박힌 작살들은 모두 마개 뽑이처럼 비틀려 있지. 오른쪽 지느러미 근처에 있는 여러 개의 작살은 바로 내 것이오! 내가 꽂은 것이란 말이오. 그 녀석의 물보라는 곡식 가리처럼 크고 해마다 양털을 깎은 뒤 수북이 쌓아놓은 양털처럼 하얗지. 돌풍이 찢어진 삼각돛처럼 꼬리를 흔들어대지. 머리와 혹이 우유처럼 하얗고 몸뚱이 전체가 주름투성이인 괴물 녀석이 바로 모비 딕이야!      


-치료사: 그렇군요. 모비 딕이 바로 선생님의 다리를 앗아갔군요.     


-에이허브: 말도 마시오. 그놈은 나를 파괴하였소, 영원히 의족에 의지하는 신세로 만든 놈이요. 어디, 나만 그런 줄 아시오? 내 가여운 동생,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죽게 만든 놈이오. 그놈은 가증스럽기 짝이 없소. 내가 고래잡이를 계속하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은 모두 그놈을 잡기 위해서요.      


-치료사: 그러셨군요. 얼마나 원통하셨을까요? 저로서는 감히 짐작도 가지 않을 정도로 힘드셨겠습니다.      


-에이허브: 그건, 당해본 자만이 알 수 있는 거요. 내가 전에 모비 딕을 찾으려고 다녔을 때 런던의 새뮤얼 엔더비호를 만난 적이 있었소. 그 배의 선장은 그놈한테 왼팔을 당했더군. 우리는 고래 뼈로 만든 팔과 다리로 황새치의 이빨이 부딪치는 것처럼 악수했소. 오므릴 수 없는 팔과 뛰지 못하는 다리로 말이오. 그 부머 선장은 겁쟁이였소. 다시는 모비 딕을 만나고 싶지 않다고 했지. 나머지 팔마저 잃어버리면 어쩌냐고 몸을 사리더군. 나는 속으로 혀를 끌끌 찼지. 놈을 피하다니, 그건 사내대장부가 아니오.       


-치료사: 선생님은 사내대장부의 기개로 녀석을 잡고 싶으셨던 거군요!     


-에이허브: 바로 그거요. 그런 욕망이 없다면, 그건 사내가 아니오! 나는 40년 동안 뱃사람이었소. 내 인생을 걸고 모비 딕을 잡을 거요. 기필코 잡아서 내 인생을 보상받을 거요.     


-치료사: 모비 딕을 잡아서 선생님의 인생을 보상받고 싶어 하시는 거군요.      


-에이허브: 맞소. 이제야 이야기가 좀 통하는구먼. 사람들은 내가 왜 금지한 고래를 잡으러 다니는지 이해를 못 해요. 고래가 아니라 나를 잡지 못해서 난리들이지. 다들 나보고 고래에 환장했다고 하더라고. 고래는 내 오른 다리만 앗아간 것이 아니오. 내 자존심을 앗아갔던 거요. 게다가 내 동생, 불쌍한 동생의 목숨까지도요.     

-치료사: 선생님의 동생이 모비 딕한테 죽임을 당했나요? 고래 잡던 현장에서요?     


-에이허브: 그건 아니오. 동생은 내가 처참하게 다리를 잘리고 피투성이가 된 것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고 기겁을 했지. 내 다리 한쪽을 모비 딕이 이빨 사이에 끼운 채 고개를 흔드는 것을 봤단 말이오. 그때 혼이 나갔던 동생은 더 이상 배를 타지 않았소. 가진 돈을 몽땅 도박에 날렸지. 이혼한 뒤로는 술만 냅다 마셨소. 그 순하디순한 동생이 망가지는 꼴을 도저히 볼 수가 없을 지경이었소. 그러다가 동생은 6개월 전에 하늘나라로 떠났지. 한번은 동생이 그러더군. 형의 다리는 모비 딕이 아니라 운명의 신이 가진 창끝에 매달려 있다고. 다른 창끝에는 자신의 영혼이 너덜거린 채 매달려 있다고 말이오. 그 동생은 처참한 장면을 목격한 그 날부터 제정신으로 살지 못했소.     


-치료사: 그러셨군요. 동생의 삶까지 합쳐서 더욱 모비 딕에게 분한 마음을 가지셨을 것 같습니다.      


-에이허브: 그렇소. 바로, 그거요. 나는 그 괴물을 죽이지 않으면, 절대로 눈을 감지 않겠소. 그게 내 꿈이고 내가 해야 할 일이요.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소.     


-치료사: 그럼, 모비 딕하고 이런 대화를 나눠본 적은 있으신가요? 이를테면, 선전포고 같은 것요. 그래야 제대로 만나서 싸울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에이허브: 그게 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요?     


-치료사: 제대로 전쟁을 치르려면 상대편한테 선전포고하는 게 상식이잖습니까? 그래서 모비 딕한테 이 사실을 전하고, 제대로 만나보자고 청하는 것이지요. 한판 붙어보자! 이런 방식으로 말입니다.      


-에이허브: 그게, 가당찮기라도 한 소리요?     


-치료사: 네! 물론입니다. 인간에게는 ‘마음’이 있으니까요. 마음은 3차원의 존재가 아니라 4차원 이상의 존재여서 어디든, 언제든, 어떤 곳이든 갈 수 있습니다. 다른 이와 마음을 합칠 수도 있지요. 사람하고도, 동물하고도 말입니다. 선생님도 이런 말을 들어보셨지요? ‘마음이 콩밭에 가 있다!’ 육체는 지금, 이곳에 있지만, 마음은 자유자재로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다는 말이지요. 조금 전에 선생님도 지금, 이곳 치료실에 앉아 계시지만, 마음만은 태평양 한가운데에 이미 가셨다고 여겨집니다.      


-에이허브: 좋소. 그럼. 어떻게 하는 거요? 내가 제대로 모비 딕한테 선전포고를 해보리다.      


-치료사: 너무나 쉽습니다. 다만, 제가 하자는 대로 잠시 따라와 주셔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볼까요?     


-에이허브:(고개를 끄덕이며) 좋소. 그렇게 하겠소.     


-치료사: 자, 그럼 복식호흡부터 해보겠습니다. 마음으로 만나는 것이니까 잠시 뒤에는 눈을 감을 겁니다. 그래야 마음의 눈이 떠지니까요. 지금은 호흡부터 하겠습니다. 천천히 내쉬는 것부터 해볼까요? 후~~~하고 입으로 충분히 길게 내쉬어 보세요. 몸을 공이라고 여겨보세요. 공에 가득 찬 공기가 입을 통해 빠져나가는 것을 상상해보세요. 내쉬는 것에 집중하면, 저절로 들이마실 수 있습니다. 들이마실 때는 코로 충분히 깊게 마셔보세요. 그다음, 다시 길게 내뿜습니다. 네, 아주 잘하고 계시군요. 바로 이 방법이 복식호흡입니다. 이제 눈을 감고 반복해보겠습니다. 배에 양손을 올려보세요. 네, 좋습니다. 천천히 입으로 약간 소리나 날만큼 내쉬면서 공에 공기가 빠져나가는 느낌을 느껴보세요. 배가 쏘옥 들어갑니다. 그다음 코로 천천히 들이마시면서 배가 볼록해지는 것을 손으로 느껴보세요. 아주 잘하고 계시군요. 좋습니다. 자, 이제는 다시 후~하고 소리가 날 만큼 입으로 숨을 내쉬어 보세요. 화와 스트레스가 빠져나가서 사라집니다. 들이마실 때는 코로 마십니다. 배가 약간 볼록해지면서 싱그러운 공기가 들어옵니다.(3분간 반복함.)



    자, 이제는 들이마실 때 ‘감사’를 떠올려보세요. 감사라는 단어를 그저 떠올리면 됩니다. 내쉴 때는 화와 스트레스가 빠져나가서 사라지는 것을 그대로 느껴보세요.(3분간 반복함.)



    네, 아주 잘하고 계십니다. 좋습니다. 이제. 잠시 뒤 제가 세 번을 세면 모비 딕이 헤엄치는 태평양 바다 한가운데에서 모비 딕을 만날 겁니다. 그리고 서로 대화를 나눌 거예요. 제가 세 번을 세겠습니다. 하나, 둘, 셋!



    선생님 앞에 모비 딕이 있습니다. 우윳빛 몸뚱이를 가진 그 모비 딕이 바로 앞에 있어요. 먼저, 모비 딕이 선생님한테 말을 걸고 있습니다.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 이제, 선생님이 답을 합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눠보시기 바랍니다. ... (3분 정도 뒤) 자, 이제 대화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모비 딕과 대화가 끝났다면, 고개를 한번 끄덕여주시기 바랍니다.(에이허브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이제, 다시 세 번을 세면, 눈을 뜨고 지금, 현재, 이 순간으로 돌아오면 됩니다. 제가 세 번을 세겠습니다. 하나, 둘, 셋! 눈을 떠보세요.     


-에이허브: (눈물을 흘리면서) 아... 아, 이런....(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     


-치료사: (말없이 티슈를 건네주면서 따뜻한 눈으로 보면서 기다린다.)     


-에이허브: (티슈로 눈물을 닦으면서) 이런, 초면에 내가 이렇게 망가지는군요. 나, 원 참... 이거, 이토록 생생하니, 거짓이라고 할 수도 없고... 별 희한한 체험도 다 하는군요.      


-치료사: 선생님. 괜찮습니다. 여기는 진솔한 마음이 오가는 곳입니다. 여기서는 울어도 웃어도 고함을 질러도 좋습니다.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에이허브: 모비 딕이 그러더군. 왜 나를 이토록이나 찾아 헤맸냐고. 자신은 나한테 아무런 원한이 없다고 하더군. 작살이 여러 개 꽂힌 오른쪽 지느러미가 의족을 한 내 오른발처럼 불편하기는 하지만, 나한테 화가 나지 않는다고 했어요. 그래서 나는 그렇지 않다고 했지. 나는 늘 화가 나 있고, 내 오른 다리를 가져간 너를 꼭 잡아서 내 운명을 보상받아야겠다고 했지. 모비 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소. 아주 아주... 너무나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소. 그 눈이 너무나 진지하고 슬펐는데, 그 녀석이 슬픈 이유를 내가 알겠더군요. 녀석이 가련하게 여긴 것은 자신이 아니라 바로 나였소. 오랫동안 내가 가진 분노와 동생의 삶에 대한 저주를 온통 자신한테 퍼붓는 나를 가련하게 여기고 있었소. 나는 부러 그 시선을 외면했지. 이 괴물아! 내 발아래 무릎을 꿇을 때까지 나는 너를 쫓는 것을 멈추지 않겠다! 이렇게 외쳤지. 그런데 말이오. 내가 배를 타고 있었던 게 아니었소. 그 녀석도 물속에 있지 않았소. 나는 날개가 달린 것도 아닌데 공중에 떠 있었고, 녀석도 물을 뿜어 올리고 나서 잠깐 뛰어오르듯 공중으로 뛰어올랐는데 그대로 멈춘 채였지.그러니까 우리가 대화를 나누던 순간에는 둘 다 공중에 있었지요. 녀석의 슬픈 눈을 더 이상 바라보기 싫어서 얼굴을 돌린 채 그 말을 했소. 선전포고를 제대로 한 거지. 녀석은 그런 나에게 코를 들이밀었소. 그러더니 나를 등에 태우더란 말이지. 아주 좋은 시기였소. 작살을 내리꽂기에 말이요. 그런데 아쉽게도 작살이 없었소. 맨주먹으로 녀석을 마구 갈겼지. 녀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달리더군. 물 위를 달리는데 바람이 무척 상쾌했소. 그러다가 하늘로 날아오르더군.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평화롭고 아름다운 느낌이 강하게 내 가슴에 밀려왔소. 그냥 눈물이 났소. 그냥 말이오. 그리고는 눈을 떴지.     


-치료사: 얘기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저도 눈물이 나는군요. 저도 마찬가지로 왜 그런지 알 수 없는 눈물입니다. 선생님, 앞으로 12번 정도 진행하면서 왜 그런지를 우리가 함께 알아나가면 어떨까요?     

-에이허브: 그것, 참 좋은 생각이오. 사실, 모비 딕을 본 게 환상인지, 공상인지, 그저 상상인지도 모르겠소. 이렇게 한번 만나서는 잘 모르겠으니 앞으로도 몇 번 만나면 좋겠소. 그러면 녀석을 더 잘 잡을 수도 있지 않겠소?     


-치료사: 네. 선생님. 앞으로의 만남에서는 지각이나 결석 없이 제때, 잘 도착하셔야 하는데 약속해줄 수 있으실까요?     


-에이허브: 당연하지요. 내 오늘은, 미안했어요. 정말 오고 싶지 않은 자리여서 나도 모르게 지각을 했나 봅니다. 나는 한 번 한 약속은 결코 어기지 않아요. 그게 제가 사는 방식입니다. 모비 딕을 잡겠다는 것도 내가 나와 한 약속이어서 깨지 못하는 거요. 다음 시간부터는 어깃장 부리지 않고 잘 나오겠습니다. 그나저나 모비딕을 만난 것은 진짜가 맞소? 아니면 순 엉터리인 거요?     


-치료사: 그 답은 선생님이 이미 알고 계신 듯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생생하게 느끼셨던가요? 아니면 엉터리로 지어내셨던가요?      


-에이허브: 그거야, 사실 그대로요.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소. 그거, 참. 별난 체험이군. 살다 보니 이런 이상한 체험을 다 하기도 하고... 어쨌거나, 이상하게 마음이 좀 개운해지는 것 같아요. 오늘 밤은 잠을 좀 자려나 보네.     


-치료사: 그동안 잠을 못 주무셨나요?     


-에이허브: 내가 잘 잘 리가 있겠소? 모비 딕을 잡기 전에는 늘 불면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소. 아주 오래되었어요.      


-치료사: 모비 딕과 잠깐 만나 얘기를 나누기만 했는데도 잘 잘 수 있는 멋진 예감을 가지셨군요. 이러다가 저처럼 될  지도 모르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에이허브: 뭐요? 고래를 좋아하는 것? (너털웃음을 지으며) 허허, 거 참. 경찰이 도둑을 좋아한다? 허허...     

-치료사: 수고 많으셨습니다. 조심해서 돌아가시고,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저도 덕분에 잘 잘 듯합니다. 평온한 밤 되시길 빕니다.                          







***** 에이허브의 초기상담에 대하여:


  에이허브는 특유의 집념과 함께 오랫동안 아집을 형성해왔으며, 그것으로 삶을 지탱해왔다고 볼 수 있다. 자아방어기제인 합리화를 주로 쓰면서 모든 것에 냉소적이면서 의심이 많은 특징을 보이기도 했다. 문제 안에 답을 찾는 방식으로 그가 굉장히 집착하고 있는 모비 딕을 심상으로 만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즉, 본격적인 12회기 진행을 앞두고 심상 시치료의 심상(simsang; 인간 근원의 힘을 상징한 ‘마음의 빛’을 통한 영혼 회복의 방법) 기법을 활용해서 초기상담을 했으며, 이때 고래뿐만 아니라 신과 만나는 특별한 경험을 가졌다. 이로써 마음 깊이 잠재되어 있던 평화와 감사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이후 에이허브는 주어진 프로그램을 통해 나기는 좌절의 위기를 극복하고, 고래에 집착하면 삶의 모든 문제가 보상될 거라는 헛된 믿음과 희망을 내려놓고 자신의 내면을 향해 전진하는 성찰과 통찰의 힘을 가지게 될 것이다. 





******************심상 시치료: 통합 예술 문화치유로 감성과 감수성으로 내면을 자극하여 궁극적으로 영혼을 성장시키는 새로운 심리치유로 2011년에 공식적으로 학계의 인정을 받았다.



   * 호모 룩스(HOMO LUX)는 빛으로서의 인간을 일컫습니다라틴어로 인간이라는 호모(HOMO)’와 빛인 룩스(LUX)’가 결합한 단어입니다     

   * ‘호모룩스 이야기는 치유와 결합한 시사와 심리예술과 문화에세이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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