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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a Jan 31. 2024

편지 하나,



                                                                                                                                                                                                                                                                


   

위트릴로,

오랜만이군요. 정확하게는 5년만입니다. 편지함을 들춰보니 2017년 2월 24일에 제가 보낸 편지가 있군요. 그날 쓴 편지는 꿈 이야기였지요. 신기하게도 종교의식을 하는 무리들이 ‘인샬라’라고 외치는 생생한 꿈이었습니다. 그때로부터 꽤 시간이 지난 지금, 다시 그대한테 편지를 씁니다. 그렇다고 격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대도 아시다시피요. 우리는 언제나 늘 통하고 있으니까요. 



그대도 아시는 강아지 또또말이에요. 유기견이었던 또또는 생후 4개월쯤에 우연히 공원에서 만났지요. 도저히 두고 올 수 없어서 키우게 되었지요. 한 생명에 대한 책임감은 엄청나서 또또를 데리고 오던 날에는 잠을 못 잘 정도였습니다. 심상 시치료센터 건물 옆, 작은 주차 공간 안쪽에 또또의 보금자리를 마련했지요. 같이 발견했던 푸님과 제가 함께 키우는 중입니다. 푸님이 서울에서 며칠 머무르고 계셔서요. 부득이하게 또또의 운동을 시키고 먹이를 주는 일을 이번 주말까지 제가 맡아야 합니다. 여러 일정을 보니,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설쳐야겠더군요. 새벽 6시에 길을 나서서 또또한테 갔습니다. 무사히 아침 산책을 마치고, 먹이를 챙겨주고 돌아왔지요, 그 시간에 깨어나서 거리를 걷는 것은 참, 생경한 일이었습니다. 인력사무소를 지나치는데, 미처 일을 잡지 못한 이들이 주위에 서성거리고 있었습니다. 그 착잡한 모습이 짠했습니다. 늘 지나치는 경찰기동대 앞쪽에는 뻥튀기 장수가 벌써 판을 깔고 있었지요. 이렇게나 일찍! 그 부지런함에 혀를 찰 정도였습니다. 황급히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 밥을 차려드렸지요. 이후 설거지에 이어 청소를 후다닥 하고 있는데 출판사 팀장님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드디어 오늘 원고를 넘겼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위트릴로.

그러니까 이건 축하받을 만한 이야기지요? 통합 예술 · 문화 치유인 심상 시치료의 첫 사례집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것도 단일 사례와 치료사의 진솔한 이야기가 어우러진 치유 에세이 형식의 책이라니요. 봄이 오기 전에 몰입해서 수정했던 네 가지 사례 중에서 첫 번째입니다. 기저귀를 떼지 못했던 일곱 살 파랑이 이야기가 드디어 세상에 나오다니,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파란색과 파란 새가 강렬하게 자리 잡고 있는 표지를 팀장님이 보내오셨어요. 



언제나 그렇듯이 어머니는 오전 9시에서 10시까지 찬송가를 부르셨습니다. 음정과 박자도 전혀 맞지 않은 채 특유한 염불 어조로 쩌렁쩌렁하게 읊으셨지요. 10시 즈음해서 저는 또 언제나처럼 음료수를 갖다 드렸습니다. 시원하다며 금세 다 마시던 어머니는 그저 가만히 앉아 계셨어요. 저는 채근을 해야 했습니다. 가긴 어디 가노? 왜? 꽃구경? 안 갈란다. 안 가도 된다. 많이 갔다 아이가. 사흘 전부터 계속해서 말해왔는데, 어머니의 태도는 여전했습니다. 한번 만에 그래, 가자! 그런 적이 거의 없었던 어머니. 어쨌든 다시 권유해보고 그래도 안 가겠다면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지요. 재차 권유하자 어머니는 귀찮다며 투덜대더니 옷을 갈아입으셨습니다. 외출복 바지는 둔부 쪽에 걸려서 항상 제가 끌어올려 드려야 합니다. 워낙 손에 힘이 없는 탓입니다. 틀니를 챙기고, 어머니의 작은 손지갑에 사탕을 넣고, 음료수도 하나 챙겨 넣었지요. 그렇게 외출 준비를 마치고 나섰습니다. 목적지는 하동 화개장터로 가는 십리 벚꽃길입니다. 오늘부터 벚꽃이 개화한다는 뉴스를 기억하고 있었거든요. 



두 시간을 내처 달려서 도착했습니다. 벚꽃들은 아직 만개하지 않은 채였습니다. 무대 위로 올라설 준비를 하며 토슈즈 끈을 당기고 있는 발레리나 같았지요. 인자 조금 있으면 다 피겠다! 어머니가 별로 섭섭해하지 않고 말씀하셔서 다행이었습니다. 아직 많이 피지도 않았는데 왜 왔냐고 역정을 내실 법도 한데 말이지요. 그래도 쌍계사 쪽으로 갈수록 활짝 핀 벚꽃나무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같은 꽃이라도 성질 급한 것들은 먼저 피었네! 차창 밖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어머니가 한마디 하시더군요.



미리 검색해두었던 식당을 향해갔지요. 더덕구이 정식으로 유명한 집이었습니다. 주차하고 막 들어서는데 어머니가 화장실부터 가야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서빙을 하는 남자한테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를 물어봤지요. 뒤로 죽 나가서 안쪽으로 계단을 따라 올라가라고 했습니다. 바쁜 시간 때문이었을까요? 퉁명스러웠습니다. 이걸 어쩌나. 어머니는 워커가 아니면 잘 걷지 못하십니다. 워커를 잡고 계단이라니, 어떻게 가야 할까, 난감했습니다. 그건 댁의 처지고 내 상관할 바 아니라는 식으로 남자는 뚱하게 어머니 쪽을 삼 초간 쳐다보더니 시선을 돌렸습니다. 일단, 음식을 시켜놓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더덕구이 정식 두 개를 달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를 모시고 화장실을 향해갔지요. 건물 뒤쪽으로 작은 통로가 있었습니다. 죽 걸어가니 부엌 뒤편이 나왔습니다. 아궁이에 메추리 알을 가득 올려놓고 요리하는 여자가 보였습니다. 그냥 주방이 아니라 한데였습니다. 청결해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화장실에 어디인지 물어보니, 딱하다는 듯 어머니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장애인 화장실에 가야지 여기까지 오세요? 밖에 장애인 화장실이 있는데!”

그러면서 마지못해 한쪽을 가리켰습니다. 벽돌 몇 개가 놓여있는 곳을 밟고 올라서니 드디어 화장실이 나왔습니다. 그렇게 다녀와서 자리에 앉아 있었지요. 홀 서빙 남자는 다른 테이블은 수시로 들락거리면서 어머니와 제가 있는 쪽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오 분, 십 분, 십오 분이 흘렀습니다. 많이 바쁘구나, 검색에서 일등으로 뜨는 곳이니 관광객들이 많은 게 당연하지, 그렇게 생각하며 기다렸지만 좀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기요! 제가 아까 음식을 시켜놓고 화장실을 갔다 왔거든요.”

그제야 홀 서빙 남자가 저를 쳐다봤습니다. 동그랗게 눈을 뜬 채 저를 쏘아봤습니다. 



“알고 있어요! 바빠서 그러니까 좀 기다려야 한다고 했잖아요!”

그는 그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제 귀가 고장 난 것도 아닌데 말이지요. 안쪽 주방에서 지금 준비하고 있다는 여자의 목소리가 연이어 들려왔습니다. 그러고도 꽤 많은 시간이 걸렸지요. 어머니는 식당이 여기 말고 없나? 그렇게 조바심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다른 곳에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홀 서빙 남자의 무례한 태도를 보자면 실은 바로 일어나고 싶기도 했지요. 어떻게 할까 망설이고 있을 때 마침내 음식이 나왔습니다. 남자는 아주 빨리, 사무적으로 말했지요. 더덕은 한번 뒤집어서 드세요. 재첩회는 초고추장을 뿌려서 드시고요. 너무나 재빠르게 속사포처럼 쏘듯이 말해서 놀랄 정도였습니다. 친절은 어디론가 도망가 버린 게 틀림없었습니다. 심지어 남자는 계산하면서 잘 먹었다고 인사하는 손님한테 대꾸 한마디도 하지 않더군요. 그렇게 기분이 잡쳐진 채 먹는 음식이 맛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워낙 맛이 까다로운 어머니는 그래도 맛없다는 말을 하지 않고 식사를 하셨어요.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목소리가 걸걸한 여자 네 명이 들어와 자리에 앉았습니다. 내가 말야, 검색해보니 십 리 벚꽃길이 가깝고 좋더라고. 내 덕인 줄 알아. 이 집이 더덕구이가 유명해요. 여기 오면 이렇게 먹어봐야지. 그렇게 떠들썩하게 말하고 있었지요. 그 무리 중에 한 여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도 어머니 모시고 올 걸 그랬다.”

그 말에 다른 이가 말했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다리가 아파서 안 가려고 그래.”

그 말에 앞에 말했던 이가 다시 말을 받았습니다. 



“뭐, 걷는 길이 아닌데 그래. 그냥 드라이브하는 길이잖아.”

그런 다음 잠시 침묵이 이어졌습니다. 오 초간 말이지요. 그 오 초 동안 그들은 각자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렸을까요? 아직 지상에 살아 계시거나 혹은 이미 하늘로 적을 옮기신 어머니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 초가 지나자 그들은 다시 떠들어대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더욱 크게, 더 요란스럽게요. 나물이 나오자 큰 그릇을 가져달라, 반찬을 더 달라, 수시로 종업원을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어머니와 나는 너무나 얌전하게, 단 한 번도 종업원을 부르지 않고 밥을 먹고 나왔습니다.



위트릴로, 우리 ‘쏘냐’ 아시지요? 이번에 장기 렌터로 새로 맞이한 우리 쏘냐, ‘러시아에서 온 지혜의 여신이라고 제가 이름 붙인 쏘냐’에 올라서 시동을 거니, 화면에 음식점에 대한 평가를 해라는 메시지가 뜨더군요. 잠시 망설이다가 단호하게 엄지 손가락이 바닥으로 향한 그림을 클릭했습니다. 그렇게 나쁜 평은 처음으로 해본 거였지만, 그게 솔직한 제 마음이었습니다. 아마도 그 음식점에는 두 번 다시 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시, 돌아오는 길에 섬진강과 수줍고 설렘 가득한 벚꽃을 보았지요. 벚꽃나무 가지마다 분홍빛깔이 부풀어 오르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벚꽃보다는 지천으로 핀 개나리, 산수유들로 노란빛이 사방팔방 펼쳐져 있었습니다. 벚꽃이 한창일 때, 이곳은 차들로 붐벼서 오지도 가지도 못할 지경일 겁니다. 조만간 곧 그렇게 되겠지요. 



위트릴로,

그렇게 귀가해서 또 황급하게 어머니의 양말을 벗겨서 빨고 저녁밥을 안치고, 또또한테 가서 저녁 운동을 시키고 다시 돌아와서 어머니 밥을 차려드렸습니다. 이렇게 하루해가 후딱 가버렸군요. 내년에도 다시 어머니와 벚꽃 십리 길을 가게 될까요? 알 수가 없습니다. 만약 가게 된다면, 벚꽃이 개화한다는 발표가 난 첫날은 지나서 가야 할 듯합니다. 만약 어머니와 가지 못한다면, 저는 운전대를 잡고서 자꾸 뒤를 돌아볼지도 모릅니다. 뒷좌석에 앉아서 차창 밖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어머니, “벚꽃아 안녕! 잘 있거라!”라고 하던 어머니 쪽으로 내 오른손을 자꾸 뻗을 것 같습니다.



 -2023. 3. 23. 시아-


            


 * 이 편지는 어머니에 대한 양가감정을 극복하고 만성 알코올 중독으로부터 해방한 모리스 위트릴로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경계성 인격장애’인 구순이 넘은 제 어머니와 연관되어 치유와 관련한 체험을 공감해줄 위트릴로한테 띄우는 간곡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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