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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a Jan 31. 2024

편지 둘,

 

위트릴로,

또또가 없어졌습니다. 또또가 없어졌습니다. 또또가......

이 말을 도저히 할 수가 없군요. 할 수 없는 말을 하자니, 자꾸 눈물이 납니다. 



또또는 이제 9개월이 된 강아지, 만나기 전에 먼저 꿈속에서 만났지요. 일년 전, 크지도 작지도 않은 강아지 한 마리가 꿈속에서 저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지요. 또또는 진천 생태 공원에서 깡마른 채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차마 그대로 둘 수 없어서 데리고 왔지요. 그렇게 결정하기 직전, 또또는 치명적인 몸짓을 해왔습니다. 땅바닥에 벌렁 눕더니 배를 보인 채 다리와 꼬리를 흔들었지요. 또또가 그렇게 하는 것을 이후로는 본 적이 없을 정도였어요. 또또를 데리고 온 다음 날, 엄청 비가 내렸습니다. 푸와 저는 다행이라고 말하며, 감사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너무 서툴렀습니다. 어떻게 해야 저 작은 생명체한테 도움이 될지 고민하기 시작했지요. 푸는 삼십여 년 전 기억을 떠올렸지요. 키우던 개가 갑자기 대문이 열린 틈에 나가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했습니다. 피투성이가 된 채 몸을 질질 끌고 들어와서 주인 품에 안겨서 눈을 감았다고 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다른 이름은 생각할 수도 없다는 듯 ‘또또’라고 부르기 시작했지요.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서 혹시나 인식표가 있는지 확인부터 했지요. 없다는 말을 듣고 키워야겠다는 마음을 굳혔습니다. 수의사는 또또가 사 개월 된 발바리라고 했지요. 



우리는 서둘러 사료를 사서 주고, 또또 집을 사고, 업자를 불러서 그 집 주위에 울타리를 쳤어요. 그러느라 생활비의 삼 분의 이나 되는 돈이 들었지만,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먹이 그릇, 목줄과 하네스, 장난감과 방석을 차례차례로 마련하기 시작했습니다. 덕지덕지 붙은 눈곱을 제거하는 빗과 털을 고르는 빗을 준비했지요. 겨울에는 한데에서 자는 게 마땅치 않은 것 같아서 현관문 안에서 재우기도 했지요. 어느 날은 거금을 들여서 근사한 침대 크기의 푹신한 방석을 사주기도 했지요. 속상하게도 또또는 그 침대 위에 잘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이곳저곳 물어뜯어서 너절한 방석 위에다 자꾸 몸을 뉘었지요. 침대를 쓰도록 하기 위해 푸와 나는 갖은 애를 써야 했습니다. 먹이를 침대 위에 던져주기도 하고 차근하게 설명해주기도 했지요. 너는 이제 노숙하는 개가 아니야. 버젓하게 집도 먹을 것도 있어. 넌 품격있게 살 자격이 돼! 



또또가 편안하게 침대에서 자던 날, 우리는 손뼉을 쳤습니다. 야구공을 던지면 물고 오기도 하고, 먹으라고 할 때까지 먹이에 손대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아예 소리도 내지 않던 또또는 기가 살아났지요. 명랑하게 잘도 짖어대고 무척 쾌활했습니다. 누구든지 다가와서 말을 걸면 꼬리를 흔들며 반겼지요. 건물 옆에 마련한 울타리 문은 늘 열려있었습니다. 또또는 골목 명물이 될 정도였어요. 또또의 팬도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대여섯 살부터 팔십 대까지 팬층도 다양했지요. 인근 초등학생들은 여럿이 무리를 지어와서 또또와 놀았습니다. 또또는 순하고 영리하고 밝아서 누구든지 좋아했고 누구와도 어울렸지요. 호기심이 많아서 잠시라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고 냄새를 맡아댔지요. 또또 덕분에 같은 건물에 사는 화가 A씨와 육사 출신 B씨는 말문을 트고, 밥도 같이 먹게 되었습니다. 또또 덕분에 저는 초등학생 6학년과 4학년 형제를 알게 되고, 푸의 그림들을 보여주기도 했지요. 또또 덕분에 푸는 고양이 엄마를 알게 되고, 그녀로부터 또또 간식을 주기적으로 잔뜩 받기도 했습니다. 또또 덕분에 우리는 행복했습니다. 



사건은 2023년 3월 23일 저녁에 일어났습니다. 사흘 전부터 푸는 서울에 가야 해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또또의 먹이와 산책 때 줄 간식을 하나하나씩 봉지에 넣어 놓았다며 당부했습니다. 푸가 서울에 있는 나흘 동안 또또의 산책과 먹이를 주는 것은 오로지 제 책임이었습니다. 어머니 밥을 차려드리고, 집안일을 하고, 부리나케 또또한테 와서 하루 두 번 산책을 시키고 먹이를 주었지요. 그렇게 별 탈 없이 시간이 흘렀습니다. 3월 23일, 목요일은 오전에 꽤 많은 비가 왔습니다. 푸는 저더러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으니 또또의 목줄과 연결된 끈을 슬림한 끈으로 하라며 미리 알려주기도 했지요. 푸의 말대로 그 끈으로 연결해놓고 언제나 그랬듯이 울타리 문은 열어두고 일하러 갔지요. 오전 일정을 마치고 오후 한 시 반쯤 해서 다시 또또한테 왔습니다. 대개 오후 산책은 네 시나 다섯 시에 하는데 그럴만한 시간이 안 될 것 같아서 미리 온 거였지요. 늘 다니던 여고 뒤편으로 해서 우리는 걷거나 뛰었습니다. 한 사십 정도였을 거예요. 도중에 간식을 주기도 하고요. 또또는 신나게 잘도 뛰어다녔지요. 나중에 올게. 밥은 나중에 먹자. 나는 더 놀고 싶어하는 아쉬움 가득한 또또의 눈을 뒤로 하고 일하러 갔습니다. 



위트릴로,

그렇게 일을 하고 또또한테 바로 왔어야 했어요. 먹이를 주고 울타리 문을 잠갔어야 했어요. 일정을 막 마치고 나가려고 할 때, 학생이 질문을 해왔고 답변을 하고 나니 십 분이 초과 되어 있었습니다. 또또한테 가려고 네비게이션에 입력을 했다가 취소했습니다. 어머니가 저녁을 드실 시간인 여섯 시가 가까워졌기 때문이지요. 딴에는 현명하게 하느라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지요. 어머니 밥을 차려드리고, 그다음에 또또한테 가자. 평소보다 두어 시간 늦게 밥을 줘도 크게 문제될 게 없을 거야. 저녁에 또또랑 공원을 몇 바퀴 돌자. 가로등 불빛 속에서 목련 향기를 맡으며 또또랑 데이트하는 거야! 



그렇게 생각해서 어머니 저녁을 차려드리고 설거지를 끝내고 삼십 분 정도를 걸어서 왔습니다. 또또! 밥 먹자! 배 많이 고팠지? 그렇게 말하면서 다가갔지요.

또또는 없었습니다. 개 집안에도 울타리 뒤편에도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줄을 보니, 끊어져 있었습니다. 도망간 줄로 알고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자주 산책하던 코스대로 훑고 지나갔지요. 그 어디에도 또또는 없었습니다. 머릿속은 텅 비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또또가 이 줄을 끊고 갈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요. 푸한테 카톡을 보내서 화가 A씨의 연락처를 받아서 전화를 했습니다. 놀라면서 밖으로 나온 화가 A씨와 함께 골목을 샅샅이 훑어보기도 했지요. 



“오후 네 시에 또또를 봤어요. 제가 일 마치고 와서 들어가면서 간식을 주기도 했거든요. 그때만 해도 잘 있었는데, 이놈, 어디 멀리 가지 않았을 거예요.”

그 말에 힘입어서 다시 돌아다녀 봤지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글쎄요. 여러 냄새가 나니까요. 발정기라서... 암컷 냄새를 맡고 돌아다닐 수도 있고. 그러다가 낯선 곳에서 여기가 어디지? 그러면서 못 올 수도 있고.,,”

A씨는 지인한테 연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지인이 소개한 유기견 보호소에 최근에 찍은 또또 사진과 연락처를 보내는 작업을 했습니다. 푸는 별다른 도리가 없으니 그만 귀가하라며 카톡을 보내왔지요.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지만. 믿기지 않았습니다. 또또가 도망가다니! 내가 잘 못해 준 게 뭐가 있었을까? 많이 못 놀아줘서일까? 좀 더 간식을 많이 주지 않아서였을까? 줄을 끊을 정도로 몸부림을 쳐가면서 도망갈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 A씨 말대로 생리적인 현상 때문일까? 



돌아오는 내내 나는 나를 자책했습니다. 후배 샨티윤한테 전화를 하면서 또또가 도망갔다고 알렸습니다. 그 말을 하는데 자꾸 눈물이 났습니다. 위트릴로! 네. 맞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또또는 도망간 것으로 알았으니까요. 샨티윤은 또또가 줄을 끊고 갔다니, 그 도망갈 때 심정을 생각해보라고 하더군요. 울지 마라며, 내가 울면 함께 슬퍼진다고 했습니다. 한 번씩 얼굴 보는 세 명이서 조만간 함께 꽃구경하자는 말로 저를 달래기도 했지요. 샨티윤이 했던 말 중에서 한마디의 말이 제 마음을 진정시켰습니다. 줄을 끊고 갈 때 말에요. 또또는 해방감과 자유를 느꼈을 테지요. 목줄로 묶어가면서 길들이는 게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탈출의 기쁨을 누렸다면, 오히려 함께 기뻐해 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견뎠습니다. 영리한 또또가 돌아올 거라는 희망을 가지면서요. 오늘, 오전에 서울에서 돌아온 푸와 전화 통화를 하기 직전까지 말입니다. 푸는 또또의 끊어진 줄을 봤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거요? 또또가 저절로 끊고 도망간 게 아닙니다. 누군가 또또를 작정하고 데리고 간 거예요. 그냥 가자고 하면 안 갈 게 분명하니, 이렇게 줄만 끊어서 간 거죠. 끊는 것요? 가위, 칼 이런 게 없으니 여기 시멘트에 문질러서 끊어서 간 겁니다. 딱 보니, 그래요. 이 줄은 그냥 끊어지는 줄이 아닙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누군가 일부러 그랬다니! 푸는 최근 들어 불안하다는 말을 자주 해왔습니다. 또또가 하도 예쁘고 똑똑해서 지나가던 사람들이 한 번씩 다 만져본다고 했어요. 어떤 남자는 일부러 차를 세우고 또또와 얘기를 걸다 갈 정도였습니다. 그 우려는 이제 사실이 되고 만 거지요. 

그러니, 또또는 자유와 해방의 기쁨을 누린 것도, 암컷을 만나러 쫓아다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낯선 곳에서 낯선 이의 손길을 마주하며 어리둥절해 있을 게 분명했습니다. 자꾸만 눈물이 쏟아지는데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은 쌀쌀한 밤에 한데에서 자지 않았을 거라는 것, 그래도 굶주리지는 않았을 거라는 사실 때문이었지요. 그런데도 슬펐습니다. 혀로 얼굴을 핥던 또또, 무릎에 얌전히 안겨서 턱을 내 팔에 기대던 또또, 내가 자주 불러주었던 노래도 자꾸만 떠올랐거든요. ‘생일 축하합니다’라는 곡조에 또또 이름을 넣어서 불러주었던 오로지 또또를 위한 노래였지요. 우리 또또 사랑해, 우리 또또 행복해. 사랑하는 우리 또또. 우리 또또 행복해! 

푸와 나는 또또의 집 앞에 이런 글을 적어놓기로 했습니다.  



위트릴로,

또또는 돌아올까요?

그는 왜 또또를 데리고 간 것일까요? 팔아서 돈을 벌려는 생각은 아닐 텐데 말입니다. 누구한테도 받지 못했던 관심과 애정을 또또한테서 받고, 그게 너무나 좋아서 충동적으로 그렇게 한 것일까요? 

“또또를 데려간 사람은 이 근처에는 얼씬도 안 할겁니다.”

푸는 그리움과 억울함, 안타까움이 교차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또또가 없어지고 나서 이상한 일이 자꾸만 일어났습니다. 팬트리 룸이 흥건해서 보니, 세탁세제 통이 갈라져서 세제가 흘러넘쳐 있는가 하면, 찬장에 두었던 밥뚜껑이 떨어져서 깨지고, 욕실 거울에 부착해 놓은 칫솔대는 힘을 잃고 자꾸만 떨어집니다. 저는 아침마다 또또가 없는 세상이라고 되뇌며 눈을 뜹니다. 



위트릴로, 

또또는 돌아오게 될까요? 

알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섭리라면, 그대로 흘러갈 거니까요.

아무렇지도 않게 어머니 등을 밀어드리고, 설거지를 하고, 쌀을 안치고, 청소를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학생들을 만나고, 행동주의 학파 이론을 강의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고 있는데,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2023. 3. 25. 시아-




 * 이 편지는 어머니에 대한 양가감정을 극복하고 만성 알코올 중독으로부터 해방한 모리스 위트릴로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경계성 인격장애’인 구순이 넘은 제 어머니와 연관되어 치유와 관련한 체험을 공감해줄 위트릴로한테 띄우는 간곡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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