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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a Jan 31. 2024

편지 셋,


 

위트릴로,

푸가 적어놓은 게시글을 보고, 두 명이 전화를 해왔다고 합니다. 한 젊은 여자가 개를 데리고 다니는 것을 봤노라는 제보였다는 겁니다. 인상착의를 자세히 들어보니, 저를 두고 하는 말이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또또가 사라진 그 날 오후에 제가 또또와 산책했던 것을 누군가 보고 전화를 해온 거였지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푸는 이웃들의 관심이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또또를 찾기 위해서 지혜를 모았습니다. 푸와 화가 A씨는 인근 빌라 주인한테 연락을 취했지요. 주인은 타지에 일이 있어서 가는 중이라며 내일쯤 돌아와서 보여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니 내일이면 범인이 밝혀질 게 뻔했지요. 누가 도대체 우리 또또를 데리고 갔을까요? 푸는 이렇게 말했어요. 



“만약에 학생이 그랬다면요. 그저 충동적으로 그랬다면 신고는 안 하려고 합니다. 신고하면 절도죄가 성립되는데 그 학생의 앞날에 크게 지장이 있지 않겠어요?”

푸의 말에 나는 발끈했습니다. 그래도 우리 또또는 찾아야 하잖아요! 신고를 안 하고 어떻게 찾나요? 초범이면 훈방 조치 될 수도 있으니 신고는 해야 해요! 어쨌든, 내일이면 밝혀질 게 뻔합니다. 혹시 어른이라면, 할아버지라면 어떻게 할 거냐며 푸한테 질문을 던지기도 했지요. 푸는 학생 말고는 바로 신고하겠다고 했습니다. 예상을 깨는 뜻밖의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보았습니다. 담배를 꼬나물고 또또의 리드줄을 시멘트 바닥에 문질러서 끊어내는 긴 생머리의 젊은 여자. 혹은 오십 대 중반의 뚱한 표정의 여자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푸는 푸대로 저는 저대로 상상의 날개를 마구 펼쳤지요. 있지도 않은 몇몇 용의자 대여섯 명을 함부로 떠올려댔습니다. 그렇게 푸와 저는 얘기를 나누며 걷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푸가 전화를 받더니 심각한 표정이 되었습니다. 이윽고 전화를 끊고는 이렇게 말했어요. 



“옆 빌라 사장님이 CCTV를 확인했답니다. 또또가 4시 15분경에 혼자서 식당 골목을 가로질러 가더랍니다.”

그 말만 간신히 하고는 푸는 공허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더군요. 혹시 시멘트에 문질러서 끈을 끊어주었던 누군가가 있지 않았겠냐고 제가 물어보았지요. 푸는 실소를 머금으며 말했습니다. 



“그럼, 또또한테 밖에서 만나자고 약속이라도 한 사람이 있었다는 말이요?”

그렇게 말한 뒤 푸는 걸음을 재게 놀렸습니다. 그래도 모르니 CCTV로 4시 15분 전에 또또 곁에서 수상한 짓을 한 이가 있는지도 봐야 할 것 같다고 했지요. 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묘한 배신감을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지금껏 저를 얼마나 예뻐했는데, 이렇게 도망을 가? 

마음을 추스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제는 두 번 다시 또또를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무리 노력해도 내 힘으로 찾을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무기력해졌습니다. 또또는 붙임성이 있으니 어딘가에서 행복하게 잘 살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가슴은 아팠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또또가 사라진 세상이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오르곤 하지요. 푸는 갈림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집 나간 18살, 사춘기 아이 꼴이 된 거요. 뭐, 어쩔 수 없지요. 혼자 나갔다니, 혼자 들어오길 기다릴 수밖에!”

그건 참으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집 나간 개를 어떻게 하면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을까요? 아직은 차가운 3월의 밤인데 며칠을 어떻게 지냈을까, 다시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감기에 걸리지는 않았을까? 배가 고플 텐데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콜롬비아 친구 세바는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조부모가 키우던 개였는데 잃어버린 지 2년 만에 우연히 마트에서 발견했다는 거였어요. 그 사이 새로운 가족을 만나서 지낸 모양인데, 새 주인이 데리고 다니는 개를 우연히 맞닥뜨렸다고 했어요. 그래서 다시 찾아왔다는 거였지요. 그러니, 만약 또또가 오지 않아도 새 주인한테 사랑받으며 살다가 우연히 만날 수도 있다고 거였습니다. 



위트릴로,

만약 2년 뒤에 우연히 또또를 만나게 된다면, 나는 다시 찾아오지 못할 것 같습니다. 다시 찾아온다면, 새 주인은 얼마나 마음이 찢어질까요? 너무나 아쉽지만, 새 주인과 정을 쌓으며 산 세월을 존중해줄 것 같아요. 한 제자는 살아있는 모두는 죽을 때까지 인연을 맺고 떠나보내기를 반복하도록 저주받았으니, 또또하고는 헤어질 시기가 일찍 찾아왔을 뿐이라고 생각하라고 하더군요. 너무 오래 슬픔 속에 있지 않기를 기도한다고 카톡으로 전해왔습니다. 왜 다들 많이 슬퍼하라는, 슬픔의 축복해주지 않을까요? 왜 다들 조금만 슬퍼하라고, 오래 슬퍼하지 말라고 할까요? 슬픔의 바닥까지 내려가라고는 왜 하지 않는 걸까요? 바닥으로 내려가야 바닥을 차고 다시 날아오를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다시, 오늘 아침에 또또가 없는 세상이라고 생각하며 눈을 떴지요. 그렇지만 늘 하던 아침 기도 시간에는요. 웬일인지 가슴속에서 별빛이 찰랑거려왔습니다. 뭔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오늘은 수업이 없는 날이라서 쉬면서 로버트 C. 솔로몬의 책 ‘사랑을 배울 수 있다면’을 읽고 있었습니다. 정오가 막 지날 때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또또를 평소에 많이 아껴주던 길고양이 엄마였지요. 동물보호 관리시스템에서 유기동물이라고 공고된 것을 봤는데 우리 또또 같다고 했습니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부랴부랴 나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지요. 제자분들과 식사 중인 푸한테도 전화를 해서 상황을 알렸습니다. 막 나가려는데, 푸가 다시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찾았습니다. 바로 식사를 끝내고 제자 차로 가서 우리 또또를 만났어요.”

아!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위트릴로,

이 말밖에 더 이상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서둘러 마트에서 음료수 한 박스를 사서는 동물병원으로 향했지요. 병원 앞에서 푸가 또또를 데린 채 서 있었습니다. 병원에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나서 차에 푸와 또또를 태워서 돌아왔습니다. 신기하게도 또또는 며칠 사이에 부쩍 큰 것 같았어요. 제 온 옷에 털을 묻힌 채였지만, 그냥 또또를 안고 있었지요. 또또는 제 얼굴을 핥고 제 손에 턱을 괴고는 가만히 안겨 있었습니다. 동물 병원에서 나오기 직전에 또또를 데리고 온 사람이 누군지 물어봤지요. 동물병원 간호사는 모니터를 보고 적은 쪽지를 내밀었습니다. 그곳은 애견카페였습니다. 어떻게 해서 또또는 그곳으로 갔을까요? 또또를 산책시키면서 쪽지에 적힌 전화번호대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곳은 애견카페가 아니라 애견유치원이었습니다. 바로 개들의 천국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알게 되었지요. 



3월 23일 목요일, 오후 4시 15분께 갑자기 또또는 앞으로 돌진하는데, 리드선이 끊기고 맙니다. 길을 따라 죽 걸어 네 블록쯤 아래로 내려가면 애견유치원이 나오지요. 바닥에 냄새를 줄기차게 맡으면서 그곳으로 또또가 들어갑니다. 유치원 선생님들은 대번에 또또가 순하고 사람을 잘 따른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임시로 이름을 ‘땅콩’(왜 땅콩이라고 했는지는 내일 찾아가서 인사드리며 물어보려고 합니다)이라고 짓습니다. 그곳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 날 바로 이 지역의 유기견 보호시설로 등록되어있는 ‘박영재 동물병원’으로 데려다준 거였습니다. 그리고 병원에서는 동물보호 관리시스템에 또또 사진을 올려놓은 거였지요. 



또또는 나가자마자 5분 만에 그런 럭셔리한 곳을 스스로 찾아간 거였습니다. 세상에나!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곳, 너무나 넓고 안락한 인조풀밭을 뒹굴며 친구들과 놀면서 지냈겠지요. 그곳은 애견호텔을 겸하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동물병원에서는 또 편안하게 다른 친구들을 만나면서 이틀을 지냈던 거였어요. 우아하고 격조 높은 분위기를 맛보고 온 또또! 가출해서는 누릴 것은 다 누리며 그렇게도 원하던 개 친구들과 실컷 어울리기까지 하다니! 그러니, 이제 큰일 났습니다. 나가면 고생이 아니라 멋진 곳에서 잘 놀 수 있다고 알게 된 또또의 기를 꺾어놓으려면 한동안 신경전을 벌여야 할 것 같습니다. 

또또가 돌아왔다는 사실을 사방팔방으로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후배 샨티윤이 이렇게 카톡을 보내왔습니다. 또또 만날 수 있으니 ‘또또’인가 봐요!’ 이제 맥이 풀린 푸는 일찍 잠을 자야겠다며 카톡으로 하루 마무리 인사를 보내왔습니다. 또또가 찾아간 개 유치원의 인스타그램에는 견주를 찾는다는 공고가 있지요. 또또가 빨간색 하네스를 한 채 개 유치원 앞마당으로 들어서는 모습, 넓은 잔디밭을 배경으로 순한 눈으로 바라보는 또또, 그곳에서 준 먹이를 먹고 있는 또또가 고스란히 남아 있지요. 이제 이 사진들을 보며 웃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오로지 감사드릴 뿐입니다.  




-2023. 3. 27.  시아-










 * 이 편지는 어머니에 대한 양가감정을 극복하고 만성 알코올 중독으로부터 해방한 모리스 위트릴로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경계성 인격장애’인 구순이 넘은 제 어머니와 연관되어 치유와 관련한 체험을 공감해줄 위트릴로한테 띄우는 간곡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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