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트릴로,
봄을 낚고 싶었습니다. 벚꽃이 다 지기 전에 말에요. 오늘 저녁부터 비바람이 몰아친다고 하니까요. 며칠 비가 내리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꽃들이 다 떨어지고 말 테지요. 화사함의 극치를 달리는 꽃잔치에 어머니의 팔짱을 끼고 갔습니다.
늘 그렇듯이 그 과정은 별로 순탄하지가 않습니다. 일단, 어머니를 설득해야 했지요. 이틀 전부터 말해서 승낙을 받았지만, 당일 컨디션이나 기분에 따라 번복하기 일쑤입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운을 뗐습니다. 다행히도 어머니는 가겠다고 했고, 늘 그렇듯이 “나는 안 가도 된다. 어디 가고 싶은데도 없다. 많이 갔다 아니가.”라고 두세 번 반복했지만, 그나마 순조롭게 집을 나섰습니다. 한 번씩 먹고 싶다며 노래를 부르듯 말하는 치킨을 먼저 주문했지요. 오늘은 오전에만 있는 학교 강의를 마치고 귀가해서 어머니와 치킨을 먹었습니다. 그런 다음 어머니를 태우고 달렸지요.
그렇게 얼마쯤 가는데 잠이 쏟아졌습니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삼십 분 정도 자고 싶었습니다. 자꾸만 감기려는 눈을 억지로 뜬 채 달렸지요. 예전에 어머니를 태운 채 가다가 차를 멈추고 잠깐 쉬어 본 적이 있었지요. 잠깐 잠이 와서 쉬겠다고 사정을 말했지만, 어머니는 얼른 가자고 보채기만 했었습니다. 너무 피곤하니 쉬어야 겠다는 말이 어머니한테 통하지 않았습니다. 빨리 집에 가서 쉬라는 거였지요. 그러니 어머니를 모시고 갈 때는 각오를 해야 했습니다. 쉬면 안 돼! 자면 안 돼! 눈을 부릅뜨고 있어!
슬프게도 나는 내게 억지를 부리고 있었습니다. 왜 사서 이 고생을 하는 거냐고 나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이렇게 답했습니다. 2023년의 봄, 벚꽃의 절정을 이번 해에는 더 이상 보지 못할 거니까요. 올해 91세인 어머니가 다음 해 봄을 지상에서 맞게 될지 어떨지 장담할 수가 없으니까요. 이 환한 봄기운을 어머니한테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긴밀하게 계획을 짰던 거였지요. 목적지는 옥정호수였습니다. 늦게 피고, 늦게 지는 탓에 그곳은 지금쯤 벚꽃이 만발했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그 예상이 맞았습니다. 벚꽃들로 얼룩져있는 산들, 샛노랗게 뻗쳐 올린 개나리들, 봄 무대 위로 성큼 올라온 자목련들, 천 개의 손가락을 뻗은 싸리꽃들이 지천이었지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 2악장이 흐르고, 무수한 꼬리를 흔들며 벚꽃이 헤엄치며 달려나가고, 한창 기세 좋게 부는 바람의 물결을 타고 옥정 호수길을 달렸습니다. 무수한 꽃들이 제 눈동자를 마사지해주었지요. 어느 틈에 잠이 달아나고 상쾌해졌지요. 참, 아름답구나. 더 다른 말을 찾을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오줌 마렵다. 화장실 가자.”
집에서 나오기 전에 분명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이제 겨우 한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도 어머니는 요의를 느끼셨나 봅니다. 한적한 드라이브 길에 화장실이 있을 리 만무했습니다. 어떻게 할지 당황스럽기만 했지요.
“여기, 아무도 없네. 좀 세워봐라.”
지나다니는 차가 없긴 했습니다. 한쪽 옆에 차를 세우니 어머니가 내리자마자 바지부터 내렸습니다. 급하셨던가 봅니다. 그래도 하마 누가 볼세라 나는 두리번거려서 주위를 살폈지요. 다행히 아무도 없었습니다. 관절이 많이 약하고 붓기도 잘하는 어머니는 무릎을 제대로 굽히지 못했습니다. 엉거주춤 앉은 것도 선 것도 아닌 자세를 취했고, 나는 내린 바짓자락을 잡아드렸지요. 여간 불편한 자세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쉬~”라고 하면서 소변이 잘 나오게 소리를 먼저 냈습니다. 어머니는 반쯤 내게 몸을 기댄 채로 요행히 볼일을 해결했습니다. 왼쪽 신발 아래쪽과 양말에 소변이 묻긴 했지만요. 어머니는 다시 차에 오르면서 양말을 벗어 손수건에 싸면서 집에 가서 빨아야겠다고 하시더군요. 그래도 급한 불을 꺼서 다행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차에 오르고 나니 차 한 대가 천천히 올라오더군요. 간발의 차이로 위기를 넘긴 셈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이제 느긋하게 경치를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참, 좋다. 좋구나. 그렇게 감탄하면서요.
오래전, 아직 학교에 가기도 전일 때 저도 그랬을까요? 하도 급해서 그만 노상에서 쉬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때 어머니가 지금의 저처럼 제 곁에 있었겠지요. 불편함을 덜어내라고 “쉬~”라는 소리를 저한테 해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처 제가 기억하지 못하고 있지만 말에요. 화사하고 세련된 벚꽃 아래에서 쉬를 한 어머니. 봄날의 기억 속 사진첩에 어머니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겠지요. 어머니가 이 세상에 없는 날에는 볼일을 본 이곳에서 차를 세워 놓고 한참을 가만히 서 있을 것만 같습니다.
옥정호수 길을 한 바퀴 돌고 나서 금산사를 향했습니다. 그쪽 벚꽃도 만나야지 이 봄을 봄답게 보낸 것이 될 것 같아서였지요. 역시 예감이 맞았습니다. 연분홍빛, 새하얀빛, 진분홍빛, 같지만 조금은 다른 빛깔의 옷을 입고 벚꽃들이 줄지어 서 있었지요. 저 봄을 고스란히 다 간직할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품을 수도 만질 수도 없는 봄을 다만 눈으로 넘겨보며 지나왔습니다. 이렇게 살아오고 있지만, 도무지 잡을 수 없는 삶처럼 말이지요.
위트릴로,
돌아오는 길에 김밥을 샀습니다. 사 온 김밥과 바나나와 딸기로 저녁상을 차려드렸지요. 어머니가 벗어놓은 바지와 양말과 손수건을 빨고 나니 비가 내립니다. 가뭄 끝에 내리는 금비가 사위를 적시는 밤입니다. 이렇게 올해의 봄도 흐르고 있습니다.
-2023. 4. 4. 시아-
* 이 편지는 어머니에 대한 양가감정을 극복하고 만성 알코올 중독으로부터 해방한 모리스 위트릴로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경계성 인격장애’인 구순이 넘은 제 어머니와 연관되어 치유와 관련한 체험을 공감해줄 위트릴로한테 띄우는 간곡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