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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a Jan 31. 2024

편지 여섯,

-하와이안 드림-



    

위트릴로,

위험한 책을 냈습니다. 기쁜 소식을 늘 먼저 전해주던 내 친구 아사, 아시지요? 후배 샨티윤과 함께 조촐한 자리를 마련했을 때였어요. 아사는 지인들한테 나눠주려고 몇 권을 구입했다며 사인을 해달라고 했지요. 책을 산 사람이 사인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니, 아사가 그랬지요. 그건 맞는 말이지. 내가 샀으니까. 그래도 네가 썼으니까 사인해주면 더 좋아할 것 같아. 이모저모 각을 잰 듯한 반듯한 말이었어요. 책을 산 것은 아사고, 생색은 내가 내는 셈이었지만, 어쨌든 그 책에 사인을 해줬지요. 그때만 해도 몰랐습니다. 식당에서 카페로 자리를 옮겨서 아사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너, 이 책. 사위와 딸한테 고발당하기 십상이다. 어쩌자고 이런 책을 썼니?”

아사의 말은 이어졌습니다. 



“한 삼 분의 이 정도 읽었거든. 사위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불러 앉혀놓고 얘기하면 되잖아. 왜 아무 말도 안 하고 속만 썩었던 거냐. 답답해서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그리고 이런 치부를 들추는 거 아닌 것 같다. 사돈댁에서는 뭐라고 하겠냐?”

아사의 나무람은 자못 진중했습니다. 이런 철딱서니 없는 친구 같으니라고! 이런 말이 눈빛을 통해 내 가슴을 찔러댔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친구의 따끔한 말에 정신을 차리지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아사가 정작 따지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다음 말에서 그의 진심이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구절은 뭐야? 아사는 그러다 말 것이라고? 내가 뭘 그러다 말 거라는 거야! 나는 계속할 거라고! 주위에서 뭐라고 하겠어? 친구라는 사람이 내가 어영부영 이러다 말 거라고 하다니! 정말 그런 줄 알 거 아냐? 나는 죽을 때까지 할 거란 말야!!!”

아사는 삼 년 전부터 사주 관상에 집중하고 있었거든요. 먼 거리까지 가서 스승님한테 배우고, 알게 된 것을 주위에 베풀고 있었습니다. 역학의 신세계를 경험한 이후 모든 것이 그 안에서 해석되고 결정되었습니다. 사소한 일 하나하나가 다 역학의 세계 안에서 꿰어 맞춰지고 평가되었습니다. 언젠가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하소연했던 내게 아사는 이런 말을 해왔지요. 



“그 사람 일진이 오늘 안 좋아서 그래. 오늘이 아니라 내일 같은 얘기를 꺼냈으면 답변이 달라졌을 거야.”

아사는 역학이라는 견고한 틀 안에 갇혀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오로지 역학 이야기였지요. 



“너는 사주가 바윗돌에 앉은 난초 격이야. 물이 없어. 물만 만나면 인생이 확 풀릴 거야. 물이 들어오는 때가 있어, 그때가 적기지!”

아사는 그 말을 수도 없이 반복했습니다. 소설 속에서 저는 그 구절을 적었지요. 신점을 보는 이와 역학을 하는 친구가 있었지만, 그들의 말은 일견 맞기도 했고 틀리기도 했다고. 아사는 발끈하며 말을 이어갔습니다. 



“내가 언제 물이라고 그랬어! 불이라고 그랬지! 물이 아니라 불이라니까! 불이 와야 운수가 터진다고! 뭐라고 알아들은 거야! 왜 그렇게 적은 거야!”

이 대목에서 나는 뜨악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숱하게 ‘물’이라고 해놓고 이제 와서 ‘불’이라니! 나는 물이든, 불이든 그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물질을 포함해서 육적인 조건이 사주 역학이라면, 영적인 힘은 그 모든 조건과 상황을 한꺼번에 뒤엎는 것에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사가 매달 카톡으로 보내오는 한 달 운세도 제발 보내지 말라고 당부했던 차였습니다. 나는 더 이상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친구는 견고한 틀 안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을 태세였거든요. 어쨌든 그날, 저는 아사한테 미안하다고 했지요.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소설일 뿐이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도 했지요. 그 말이 그에게 다가간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그대로를 쓴 거잖아. 무슨 소설이라고 그래.”

아사가 한마디 더 쏘아붙였습니다. 그래도 소설이라고 낸 거라며 우겼습니다. 그 정도는 우길 수 있다고 여기면서요. 그 문제의 소설은 자전적 소설인 ‘푸른 침실로 가는 길’의 후속작 격이었지요. ‘푸른 침실로 가는 길’이 어느 정도로 허구냐며 요청에 응해 인터뷰하러 갔던 경인방송 피디가 물어봤던 적이 있었지요. 그 질문이 나오면 답변하려고 일부러 준비해간 멘트가 있었습니다. 역사 소설 만큼요. 그리고 거울 만큼요. 거울은 남김없이 비춰주지만, 그렇더라도 거울은 거울일 뿐입니다. 



헤어질 무렵, 고등학교 일학년 때부터 알고 지내왔던 친구인 아사를 안아주었습니다. 공감을 받지 못해서 슬픈 마음을 서둘러 주워 담고는 말이지요. 아사는 너무나 놀랍게도 배웠던 사주 역학을 엉뚱한 곳으로 풀어내 버린 채였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또 아사는 펄쩍 뛰겠지만 말에요. 아끼는 후배 샨티윤한테 연락을 해서 물질의 때가 몰려오는 운세라고 했지요. 결국 샨티윤의 명의를 빌려서 대출을 받았고 엄청난 대출이자들이 이들 사이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저는 너무나 속상했지요. 얼른 해결해야 한다고 정색을 했지만, 쉽게 끝날 일이 아닌 게 분명했습니다. 돈과 거리가 멀었던 순수했던 친구가 어쩌면 이리도 변했을까요? 너무나 괴로워서 며칠 잠을 설치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애써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을 알았지요. 저는 그날 이후 세 명이서 만나지 않으려고 합니다. 샨티윤은 태연하게 말했지요. 선배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세요. 맞는 말입니다. 억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다만, 저는 멋진 친구 하나를 잃은 듯한 느낌도 듭니다. 그 친구를 앗아간 것은 물질이고 사주 역학이지요. 이제 뜻깊은 일이 있더라도 그 친구한테 연락을 잘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게 못 견디게 슬픈 일이지만, 어쩔 수 없기도 합니다. 



위트릴로,

그 문제작에 대해 ‘구루님’은 선뜻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주 좋아요. 참 좋습니다. 딸과 사위도 보여줄 수 있으면 해요. 자신을 비쳐 볼 수 있는 책입니다! 특히 마음 속의 자신과 대화하는 부분, 압권입니다!”

호탕하게 말해준 구루님이 있었지만, 주위의 시선은 그렇게 곱지 않았습니다. 제가 진행하는 시민 대상 강의 때마다 달려오곤 했던 분은 아예 침묵하기만 하셨지요. 그 이전의 책만 해도 길고 멋진 감상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시던 분이 말입니다. 심상 시치료 수강생이었던 한 분은 비밀 일기장을 들춰보는 것 같다고도 했습니다. 언젠가 같이 딸이 있는 하와이에 놀러 가자고 했던 교수님 한 분은 이렇게 말했지요. 



“우리, 못 가겠군요! 그곳에 가면 안 될 것 같아요.”

그러니, 이 책은 뭔가 단단히 잘못된 것만 같습니다. 사실 불편하고 껄끄럽고 답답한 내용입니다. 달콤한 하와이에서 죽도록 마음고생한 이야기니까요. 이런 글을 쓰려고 하다니, 저는 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합니다. 



위트릴로,

급기야 이틀 전에 제 딸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 책 읽었어. 오빠의 아픔을 서슴없이 썼던 것처럼 엄마는 엄마도 모르게, 때로는 엄마 자신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서 나를 아프게 한 순간들이 많았어. 한국 들어가는 게 기쁘지 않았는데... 마음 둘 곳이 없어서 그런 것 같아. 정말 슬프다.”

딸은 오월 중순쯤 손자와 사위와 함께 한국에 오기로 했지요. 저한테 퉁명스럽게 대했다가도 풀어지며 다정하게 연락해오기도 했는데. 올해 들어서는 아예 연락을 잘 해오지 않았습니다. 언제쯤 오는지, 와서 어떻게 지낼 것인지 기대하며 계획을 세우고 싶은데도 전혀 의논하지 않았지요. 딸은 마음의 문을 완강하게 닫고 있었습니다. 나는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딸을 슬프게 하다니요! 그러니 이 책은 모두 수거해서 불살라야 할까요? 아프고 쓰라린 이야기를 저는 왜 구태여 쓴 것일까요? 



저는 두 번이나 결혼하고 이혼했습니다. 사기도 당하고 멍청하게 살았지요. 숱하게 자살을 꿈꾸고 실제로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어머니한테 휘둘린 채 살아왔습니다. 뿌리째 저를 흔들며 어머니는 끊임없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어머니는 괴물이었고, 저는 늘 피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랬으니 딸이 제대로 자랄 리가 없었습니다. 아빠는 없고, 엄마는 우울했고, 주로 자신을 돌봤던 외할머니는 난폭했으니까요. 딸의 아픔은 모두 제 잘못입니다. 그러니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세월이 흘렀고, 저는 죽지 않고 살아났습니다. 신이 매 순간 저를 이끌어주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신의 은혜로 정신을 차려서 이전과는 너무나 다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를 사랑하게 되는 놀라운 체험을 했고, 심리치료사가 되었지요. 딸한테 손을 내민 것은 그즈음이었습니다. 딸은 제가 내민 손을 완강하게 뿌리치기 시작했지요. 딸이 갓 스무 살을 넘겼을 때부터였습니다. 그런 용서와 화해의 발걸음을 ‘푸른 침실로 가는 길’에 그대로 남겼지요.


딸을 낳고 나서 몸조리는 아예 꿈도 꾸지 못하고 보름도 안 되어 직장을 구해야 했습니다. 퉁퉁 부은 발을 억지로 신발에 구겨 넣고 출근해야 했지요. 그렇게 살아냈습니다. 바로 그 대목에서 딸은 엄청난 분노를 제게 쏘아대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예쁜 자식을 두고 돈을 벌러 갈 수 있어? 나를 버렸던 거잖아!

아무리 달래고 사과해도 딸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분노와 원망과 부정과 애탄 마음이 뒤범벅된 채로 딸은 매섭게 돌아섰지요.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엄마라고 하던 고등학교 때의 딸을 더 이상 만날 수가 없었지요. 너무나 힘들어도 그 말만 생각하면 웃음이 머금어지던 그때로부터 너무 멀리 와 버린 것만 같습니다. 그 말을 한 적이 있었다고 하니, 딸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랬어? 실수한 거야! 



그래도 겉모습 안에 가려진 딸의 진솔한 마음을 생각했습니다. 딸을 얼어붙게 만든 것도 바로 저였을 테니까요. 나는 받아보지 못했던 산후조리 간호를 딸한테 아낌없이 해주고 싶었지요. 그렇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자신을 돌아보면서 조금 더 나은 성숙한 마음으로 가까운 이를 대하려는 각오는 산산이 부서졌지요. 잘해주느라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냉대와 질타였습니다. 괴로워서 견딜 수 없었던 52일간이었지요. 그걸 그냥 가슴에 묻고 저만 알면서 넘어가면 되지 않았냐고요? 



위트릴로,

그걸 거부하려고 글을 썼습니다. 가슴에 묻다니요? 그저 훌훌 털어버리고 싶었습니다. 더한 것도 견뎌냈던 내 삶을 떠올렸습니다. 이만한 일들쯤이야 그저 품어내고 안아버려야겠다고 작정했습니다. 나한테 잘 대해주지 않아서 나도 잘해줄 필요가 없어, 그럴 마음이 나지 않아, 이렇게 인과응보라는 뻔한 논리를 내세우는 세상한테 따뜻한 온기를 끼얹고 싶었습니다. 화사한 꽃비를 내리고 향긋한 꽃을 바닥에 깔고 싶었지요. ‘하와이안 드림’은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가까운 이들의 무수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있는 그대로 남김없이 드러냈지만, 결국 그 모든 혼란과 모순에도 눈 질끈 감고 안아주려고 말이지요. 예정대로 딸의 집에서 돌아온 12월 중순. 2주일간의 격리 동안에 집에 틀어박혀서 울컥 쏟아내듯 쓴 글이었지요. 



위트릴로,

차라리 딸한테 보내주지 말아야 했을까요? 하필이면 보내 달라고 요청한 택배 물건들을 넣다 보니 자리가 남았습니다. 하필이면 내 손이 ‘하와이안 드림’ 책한테 뻗었고, 무언가에 홀리듯이 책을 상자 안에 넣었습니다. 이제 이 책이 딸한테 단단히 불온서적이 되어버렸으니, 어쩌면 좋은가요? 그나마 이어져 있던 혈연의 끈조차 외면당할 처지입니다. 



딸한테 카톡을 받은 십 초 만에 제 마음은 놀랍게도 진정되었습니다. 기적처럼 평강이 이어졌습니다. 그대한테 말하고 있는 지금까지도요. 예전에 저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딸이 슬프다면, 저는 몇 배나 더 슬펐고 딸이 괴로우면 저는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이 감정의 분리가 낯설고, 또한 기적이라고 여겨집니다. 성경의 마태복음 10장 34절에 나오는 한 구절이 계속 제 영혼에 맴돕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대충, 그저 그렇게,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얼버무리고 슬쩍 눙쳐버리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바라보며 직면하는 것은 너무나 아프고 쓰라리기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그게 진짜 삶일 테지요. 자신을 속이기를 멈추는 것부터 하려고 합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인생을 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살아가려고 합니다. 

제 인생은 실패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 이다지도 저를 부정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매 순간이 기적입니다. 실패했는데도 이렇게 살아나가고 있으니까요. 신의 은총이 저를 지탱하게 합니다. 이다지도 찬란하고 아름답게 살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이 책은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니, 저한테 던지는 돌을 기꺼이 맞겠습니다. 세상한테 소리치겠습니다. 어서, 뭇매를 때리듯 얼마든지 돌을 던져보세요.




-2023. 4. 17. 시아-



                




 * 이 편지는 어머니에 대한 양가감정을 극복하고 만성 알코올 중독으로부터 해방한 모리스 위트릴로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경계성 인격장애’인 구순이 넘은 제 어머니와 연관되어 치유와 관련한 체험을 공감해줄 위트릴로한테 띄우는 간곡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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