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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a Jan 31. 2024

편지 열둘,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속 예언-

    

위트릴로,

그를 만난 것은 스무 살을 막 넘길 무렵이었습니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만났지요. 보자마자 한눈에 반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 허나 사랑에 속박되지는 말라.

 차라리 그대들 영혼의 기슭 사이엔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서로의 잔을 채우되, 어느 한 편의 잔만을 마시지는 말라.

 서로 저희의 빵을 주되, 어느 한 편의 빵만을 먹지는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그대들 각자는 고독하게 하라.

 비록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저마다 외로운 기타 줄들처럼.


 서로 가슴을 주라, 허나 간직하지는 말라.

 오직 삶의 손길만이 그대들의 가슴을 간직할 수 있다.

 함께 서 있으라, 허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서 있는 것을.

 참나무와 사이프러스 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큰 울림으로 제 가슴에 자리했습니다. 구속과 잔소리와 욕설을 버무려서 얽히고설킨 것이 사랑이라고 여겼지요. 그는 늘 사랑에 속고 속았던 제 영혼의 참담한 문을 두드렸지요. 그렇다고 제가 그의 말처럼 사랑을 잘한 것은 아닙니다. 더없이 푸르고 싱그러웠건 나이가 무색하게도 늘 멍이 든 채 살았지요. 그러다가 이제, 이 땅보다 다른 세상에 관심이 옮겨가는 지금 이 시기에, 비로소 그의 말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도 함께 서 있되 너무 가까이 서 있지 않게 되었지요.

사실, 그가 한 이 말들은 알미트라가 ‘결혼에 대하여’ 물었던 것에 대한 답이었지요. 그렇지만 단지 부부간의 사랑만 일컫는 것이 아닌 듯합니다. 모든 사랑에 대한 현명한 마음가짐이 담겨 있다고 여겨집니다.  



위트릴로,

그를 만나서 반한 것까지 얘기했던가요? 그런 다음 그를 다시 만나지는 않았습니다. ‘예언자’를 통해 만났던 그는 곧 오래된 기억 속으로 묻혔지요. 그러다가 5월을 하루 앞둔 날, 그를 다시 만났습니다. 이번에도 우연이었지만, 도서관이 아니라 라디오 방송이었습니다. 한 프로그램에서 영화를 소개했고, 그가 ‘예언자’에서 말했던 ‘아이들에 대하여’를 읊고 있었습니다.  



 그대들의 아이라고 해서 그대들의 아이는 아닌 것. 

 아이들이란 스스로 갈망하는 삶의 딸이며 아들인 것.

 그대들을 거쳐 왔을 뿐 그대들에게서 온 것은 아니다. ..............


 그대들은 활, 그대들의 아이들은 마치 살아있는 화살처럼 그대들로부터 앞으로 쏘아져 나아간다.

 그리하여 사수이신 신은 무한의 길 위에 한 표적을 겨누고 그분의 온 힘으로 그대들을 구부리는 것이다. 그분의 화살이 더욱 빨리, 더욱 멀리 날아가도록.

 그대들 사수이신 신의 손길로 구부러짐을 기뻐하라.

 왜냐하면 그분은 날아가는 화살을 사랑하시는 만큼, 또한 흔들리지 않는 활도 사랑하시므로.  




위트릴로,

마치 첫사랑을 만나듯 그를 떠올렸습니다. 해서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애니메이션 영화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를 보았지요. 그의 잠언시 ‘예언자’는 스승 ‘알무스타파’한테 질문을 던지는 여인 ‘알미트라’가 등장하지요. 그녀는 스승의 답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며 마지막 장 ‘고별’에 이르러서는 ‘예언녀’가 됩니다.



영화 속에서 ‘무스타파’는 불온한 시를 쓴 죄로 구금을 당한 시인이지요. 귀양살이하는 무스타파 집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카밀라의 딸이 바로 ‘알미트라’입니다. 아버지의 사망으로 충격을 받은 알미트라는 실어증을 앓고 있지요. 그러던 그 소녀가 무스타파한테 마음을 열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스타파의 구금이 해제됩니다. 그가 고향으로 떠나는 배를 타기 위해 항구로 가는 이동하는 동안 만나는 마을 사람들한테 시를 들려주지요. 총 8편의 시들과 애니메이션 영상들이 합쳐져서 절묘한 아름다움을 빚어냅니다.  

무스타파는 이상한 시인입니다. 그가 가는 곳곳마다 사람들은 그를 환영하며 잔치를 열고 그를 영광스럽게 여기며 떠받들지요. 그는 시인을 넘어서 교주처럼 뭇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그를 아는 이들은 그를 좋아하지 않으면 못 배길 것처럼 행동하지요. 그는 자신의 사상을 전향하겠다는 각서에 사인을 거부함으로써 총살을 당하고 맙니다. 그렇지만 그의 영혼은 자유롭게 날아서 무수한 새가 되어 날아가게 되지요.  

영화에서 선과 악은 뚜렷합니다. 무스타파를 좋아하는 쪽은 선이고 그를 음해하고 죽이는 쪽은 악이지요. 확연한 이분법적인 설정이 영화에 대한 몰입을 슬쩍 지우게 합니다. 무스타파가 가진 여유로움과 미소, 모든 것을 전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표정, 양쪽 관자놀이에 드리운 흰머리, 지혜와 성찰이 충만한 몸짓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저는 무스타파를 싫어하는 쪽이니 제가 영화 속 인물이라면, 저는 선한 쪽이 아닐 테지요.  



위트릴로,

영화만 얘기하자면 별로 할 얘기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영화를 통해 다시 만난 그, 칼릴 지브란이 들려주는 얘기를 듣자니, 이렇게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항상 마음속에 존재하는 이들, 이제 두 살이 된 손자, 딸과 사위를 떠올렸습니다. 작년에 발간된 책 ‘하와이안 드림’을 읽고, 화가 난 딸과 사위를 생각합니다. 하와이에서 국내로 왔지만 제게 연락 한번 하지 않는 그들은 활을 떠난 화살입니다. 카카오톡도 차단해서 연락할 길이 없는 그들 곁에 나는 여전히 언제나 늘 머물러 있습니다. 기다리지 않음으로써 기다리고, 가까이 있지 않음으로써 가까이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울지도 않고, 속상해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일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절호의 기회라고 여기며 모든 것을 섭리에 내맡기고 있습니다. 사랑은 오래 기다리고, 모든 것을 참는다는 말씀을 고스란히 겪고 있는 중입니다. 무스타파를 보는 모든 이들이 그를 추앙하며 박수를 보내는 것하고는 반대로, ‘하와이안 드림’을 보는 이들은 하나같이 저한테 인상을 찌푸리고 심지어는 이런 책을 왜 냈냐고 따지기도 했습니다. 오죽하면, 딸과 사위가 단절했겠습니까. 저는 대역죄를 저지른 어미가 되고 말았습니다.  



위트릴로,

그대는 아실 겁니다. 피상적인 친근함 대신 진솔한 직면을 선택했던 제 마음을요. 그대는 아실 겁니다. 그저 모든 것을 파묻어버리고 아무 일도 없는 듯 덮어버리는 것 대신 불순물을 골라내어 깨끗이 하기 위해 용기 내어 들춰냈던 것을요. 그대는 아실 겁니다.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나 사랑해서 돌이켜보자고 한 것을요.  



그래서 기꺼이 구부러진 활이 되었던 것이지요. 화살은 돌아오지 않겠지만, 세월이 흘러 화살이 다시 활이 되는 날, 알지 못하는 어느 순간에 변신한 화살을 만날 수 있겠지요. 감히 예언하건대, 분명 그럴 겁니다. 큰 배 모양을 한 구름 위에 앉아서 손을 흔드는 그, 칼릴 지브란이 저기 보이는군요. 모든 것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감사하지 않는 순간마저도 감사합니다. 



-2023. 6. 6.  시아-       




 * 이 편지는 어머니에 대한 양가감정을 극복하고 만성 알코올 중독으로부터 해방한 모리스 위트릴로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경계성 인격장애’인 구순이 넘은 제 어머니와 연관되어 치유와 관련한 체험을 공감해줄 위트릴로한테 띄우는 간곡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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