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a Jan 31. 2024

편지 열셋,

-모비 딕-


    



 위트릴로,

 모비 딕을 만났습니다. 오랫동안 그저 스쳐 지나가는 정도로 이름만 들어왔던 존재였지요. 고래 이야기라는 정도로 알고 있었지만, 그다지 흥미가 없었습니다. 전쟁 이야기가 그런 것처럼요. 막상 읽기 시작하면 저도 모르게 빠져들더라도 말이지요. 일단은 썩 내키지 않아서 뒤로 미뤄두곤 합니다.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었지요. 영화 ‘더 웨일’을 보고 나서였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보려고 안달이 났지요. 대학 도서관에서 대출해와서 야금야금 아껴 먹듯 책을 읽었습니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때는 뭔가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표현해도 될는지요? 뻐근하게 영혼이 저려왔습니다.


 


 영화 ‘더 웨일’의 주인공 찰리는 작문 교수입니다. 딸 엘리가 13세 때 쓴 에세이를 고이 간직하고 있지요. 그 글은 심장병으로 죽어가는 찰리의 유일한 진정제이기도 합니다. 사이드테이블 위에 놓아두고는 그 글을 읽으며 심장 통증을 견뎌내곤 했지요. 심지어 죽는 순간까지 그러했습니다. 그 글은 이러합니다.


 

 허먼 멜빌이 쓴 걸작 ‘모비 딕’은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작중 화자인 이슈메일이 작은 어촌에서 퀴퀘크라는 남자와 누워 있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슈메일과 퀴퀘크는 교회에 갔다가 배를 타고 출항하는데 선장은 해적인 에이해브다. 그는 다리 하나가 없고 어떤 고래에게 앙심을 품고 있다. 고래의 이름은 ‘모비 딕’. 백고래다. 내용이 전개되면서 에이해브는 많은 난관에 직면한다. 그는 평생을 그 고개를 죽이는 데 바친다. 안타까운 일이다. 고래는 감정이 없기 때문이다. 자길 죽이려는 에이해브의 집착도 모른다. 그저 불쌍하고 큰 짐승일 뿐. 에이해브도 참 가엾다. 그 고래만 죽이면 삶이 나아지리라 믿지만, 실상은 그에게 아무 도움이 안 될 테니까. 난 이 책이 너무 슬펐고 인물들에게 다양한 감정을 느꼈다. 고래 묘사만 잔뜩 있는 챕터들이 유독 슬펐다. 자신의 넋두리에 지친 독자들을 위한 배려인 걸 아니까. 이 책을 읽으며 내 삶을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다행이라는 생각을... 


 

 찰리는 작문 교수답게 딸의 글에서 재능을 봅니다. 늘 사고를 치고 말썽을 부리지만, 엘리의 가능성을 믿지요. 그 ‘재능’은 똑똑함이 아니라 성찰이고 통찰입니다. 틀림없이 자신의 삶을 가꿔나갈 거라고 장담하며, 믿음이 가득한 눈으로 딸을 바라보지요. 찰리의 바람은 영화의 엔딩 너머에 있습니다. 엘리는 의젓하고 훌륭하게 자라나겠지요. 모비 딕을 죽이려는 에이허브를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라면, 무모한 집착따위는 그치게 될 테니까요.


 

 위트릴로,

 영화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말인데요. 최근에 본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에서는 가정폭력 범죄자인 프랭크의 죽음과 관련된 재판이 진행되는 장면에서 모비 딕이 나옵니다. 증인으로 출두한 목사는 자신의 성경책 위에 손을 얹고 맹세하겠다고 하지요. 목사는 잇지한테 유리하도록 증언했고, 잇지는 무혐의로 풀려나게 됩니다. 성경책에 손을 얹지 않았냐고 하자, 목사는 실은 ‘모비 딕’ 위에 손을 얹은 거라며 호탕하게 웃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모비 딕을 드디어 만났습니다.


 

 소설 속에서 내레이션을 맡은 이는 ‘이슈메일’입니다. 그 이름은 히브리어로 읽으면 ‘이스마엘’이 되지요.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서자입니다. 아내가 아니라 하녀의 몸에서 태어난 아들이지요. 이스마엘은 그 엄마와 함께 팔레스타인의 사막으로 추방당합니다.

 소설 속에서 모비 딕을 죽을 때까지 쫓는 이는 ‘에이해브’입니다. 구약성서 ‘열왕기’에 등장하는 포악한 왕인 ‘아합’을 영어식으로 읽은 것이지요. 이름부터가 서사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눈부실 정도로 하얀 고래 모비 딕한테 다리를 빼앗긴 에이해브는 모비 딕을 잡기 위해 사생결단을 하고 배에 오릅니다. 초보 선원 이슈메일은 이 모든 것을 이방인처럼 관찰하지요. 그는 피쿼드 호에 타기 전에 우연하게도 여관의 룸메이트로 퀴퀘그를 만납니다. 요조라는 작은 검둥이 신을 섬기는 식인종 퀴퀘그는 노련한 작살잡이지요.

 그리고 스타벅스의 상호를 유래할 정도로 인기 있는 일등 항해사 ‘스타벅’이 있습니다. 스타벅스의 창업자인 하워드 슐츠가 ‘모비 딕’을 사랑했을 것이라는 짐작이 갑니다. 스타벅은 참사를 앞둔 마지막 순간까지 에이해브한테 혼신의 힘으로 설득합니다.


 

 “오오, 선장님! 지금이라도, 사흘째 되는 날이라도 단념하기에 늦지는 않습니다. 보세요! 모비 딕은 당신을 노리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신이 모비 딕을 미친 듯이 노리고 있단 말입니다.”

 이 말이 먹혀들지 않은 게 당연하겠지요. 전설의 모비 딕은 바로 코앞에 있고, 삶의 모든 것을 다 걸었던 에이해브는 물러서지 않습니다. 과정은 거대한 서사시 같지만, 결말은 물거품에 불과합니다.


 

 피쿼드 호 쪽으로 힘껏 달려들어 배를 침몰시킨 모비 딕은 유유히 사라집니다. 갑자기 사라진 배처럼 에이해브도 선원들도 모두 사라지지요. 언젠가 열병을 앓은 퀴퀘그를 위해 준비해둔 관을 변형시켜 만든 부표를 잡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이슈메일은 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배에 탔던 몇몇 이들이 아직도 아른거립니다. 퀴퀘그는 수영 실력도 뛰어나서 실수로 물에 빠진 이들을 곧잘 구해내곤 했지요. 그랬던 그도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에이해브는 제대로 모비 딕과 대적할 틈도 없이 밧줄의 고리에 목이 감겨 바다로 빠지고 말았지요. 그 참혹한 광경이 펼쳐지기 전, 에이해브가 만났던 바다에 저도 함께 있었습니다.

  바다는 평원 그 자체였지요. 푸른 목장처럼 잔잔하고 평화로웠습니다. 그 어디를 둘러보아도 넓은 평야인 바다. 수천 개의 보석이 박혀 있는 찬란한 바다. 그 순간, 에이해브는 아름다움에 겨워서 눈물을 흘립니다. 이슈마엘은 이렇게 말하고 있지요. “드넓은 태평양도 그 작은 눈물 한 방울 같은 보물을 갖고 있지 않았다.”라고요. 



 소설의 마지막 장을 차마 덮지 못하고 그대로 두었습니다. 고래 뼈로 만든 인조 다리 한쪽으로 절뚝거리며 걸어 다니는 에이해 브의 낮고 거친 음성도 그립습니다. 서툰 발음이지만 매사에 당차던 퀴퀘그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온몸이 하얗고 유난히 튀어나온 이마 위 혹, 그 너머에 복잡하게 새겨진 주름들로 영특해 보이는 모비 딕. 오래전 던진 에이해브의 작살이 부러진 채 등에 꽂혀있습니다. 수면 위로 솟구쳐 올라올 때 우윳빛 몸에서 떨어져 나간 바닷물이 함께 분수처럼 솟아오르다가 마침내 산산 조각나는 유리알처럼 표면으로 돌아오는 장면도 떠오릅니다. 거대한 위용으로 신비스럽기만 한 모비 딕. 그리고 피쿼드호의 사람들.


 

 스스로 미쳤다고 여길 정도로 모비 딕한테 몰입했던 에이해브는 인간이 가진 욕망과 감정을 그대로 표상하고 있습니다. 복수와 원한에 가득 차서 끈질기고 집요하게 대상을 쫓아가지만, 결국 모든 것이 허무해지는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위트릴로, 복수의 끝은 허무입니다. 

 모비 딕이 모비 딕일 때 제대로 살아갈 수 있듯이 인간도 인간일 때, 인간다울 때 온전히 살아갈 수 있겠습니다. 세상에는 원한을 도저히 내려놓지 않는 에이해브 같은 이들이 숱하게 있겠지요. 그만 마음을 접고 집으로 가자고 하는 스타벅의 말을 절대로 듣지 않습니다. 그러는 동안 인간은 맹수처럼 변하고 맙니다. 맹수가 된 인간은 위험하기 그지없습니다. 양심의 소리를 들려주는 스타벅의 말을 듣는다면, 소설은 다르게 써질 게 분명합니다. 모비 딕을 그냥 지나쳐가는 선원들과 하얀 대리석 같은 모비 딕한테 손을 흔들어주는 에이해브 말입니다. 도무지 그런 인간이 없으므로, 인간은 파멸하고 모비 딕은 깊이 잠수한 채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모비 딕은 모든 향유고래가 그러하듯이 언젠가 태양 쪽으로 머리를 둔 채 회한 많은 눈을 감겠지요. 

 소설 ‘모비 딕’ 속의 모비 딕은 모비 딕을 낳고, 또 그 모비 딕이 모비 딕을 낳을 테지요. ‘모디 딕’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인간은 이방인처럼 자주 빠져나와 자신을 바라볼 것입니다. 결국 그렇게 해서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딕’이 탄생된 것이지요. 



 위트릴로,

 세상의 이방인으로 저 역시 그렇게 살아가겠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그대한테 편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2023. 6. 11. 시아-





 * 이 편지는 어머니에 대한 양가감정을 극복하고 만성 알코올 중독으로부터 해방한 모리스 위트릴로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경계성 인격장애’인 구순이 넘은 제 어머니와 연관되어 치유와 관련한 체험을 공감해줄 위트릴로한테 띄우는 간곡한 글입니다. * 

작가의 이전글 편지 열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