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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a Feb 27. 2023

[호모룩스-3]
따뜻하지만 난폭한 영화 '정이'   

[호모룩스 이야기-3]    


  

                 따뜻하지만 난폭한 영화 정이               



         

  곳곳에 시체들이 즐비하다. 인간이 아니라 로봇이다. ‘시체’는 죽은 인간의 몸을 이르는 말이니, ‘로봇 잔해’라고 해야 맞는 말일 것이다. 지금부터 백 년은 족히 지난 날이다. 해수면 상승과 자원의 고갈로 인류는 우주로 이주해야 한다. 수십 년에 걸쳐서 달과 지구의 궤도면 사이 우주 공간에 80여 개의 ‘쉘터’를 만들어 시민들을 이주시킨다. 쉘터 8호, 12호, 13호는 스스로 ‘아드리안 자치국’이라고 선언하며 지구와 다른 쉘터들을 공격한다. 이들로 인해 연합군과 아드리안 사이에 치열한 전쟁이 일어난다. 이런 설명들이 자막으로 깔리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용병 로봇 윤정이는 치열하게 로봇들과 싸운다. 마지막 고비를 통과하지 못하고 매번 실패하고, 그런 윤정이는 폐기처분 된다. 그는 식물인간이 된 윤정이의 뇌 복제로 탄생한 로봇이다. 영화 ‘정이’의 이야기는 비교적 단조롭다. 뇌 복제가 합법적으로 유행하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다. 크로노이드(KRONOID)는 이를 전담하는 회사다. 특히 윤정이 뇌를 복제한 로봇을 통해 내전을 끝내려고 하는 군수 사업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그렇지만 매번 윤정이 로봇은 결정적인 순간에 실패하고 만다. 윤정이의 딸 서현은 이 연구소의 팀장이다. 엄마 모습을 한 복제 로봇들은 단순히 로봇일 뿐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훈련에 실패한 로봇을 폐기 처분한다. 그러던 서현이 폐암 판정을 받는다. 자신의 삶이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통보받는다. 그러던 어느 날, 용병 프로젝트는 조기 마무리된다. 연합군과 아드리안 간에 화해협정이 이뤄진 것이다. 마지막 훈련 때, 서현은 폐기 처분할 정이 로봇을 도망가게 한다. 그러다가 잡히는 위기에 처하게 되자 급히 다른 로봇한테 정이의 뇌를 넣어준다. 그러다가 서현은 소장이 쏜 총에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엄마의 뇌가 이식된 전투 로봇이 서현을 안는다. 서현은 다급하게 말한다. 


  “어서 가요! 자신만 생각하면서 살아요. 자유롭게 살아요!” 

  엄마의 모습이 아닌데 여전히 엄마처럼, 딸에 대한 기억을 일부러 서현이 다 지웠는데도 불구하고 로봇은 자신의 얼굴로 서현의 뺨을 비비댄다. 지난날, 치열한 전쟁터에 나가기 전 정이가 딸 서현한테 그랬듯이. 죽어가면서도 서현은 로봇한테 이 세상 모든 행운이 함께 하기를 빈다. 



  뇌 이식, 가상현실, 최첨단의 AI 시대에 맞지 않게 암은 아직 정복되지 않았다. 이미 뇌를 복제한 상태인데도 식물인간 상태로 늙은 엄마를 만난다는 설정도 잘 이해 가지 않는다. 논리는 엉성하지만, 감성은 살아있다. 딸은 항상 의문을 가진 게 있었다. ‘엄마는 제대로 자신의 인생을 살지도 못하고 늘 나 때문에 희생하기만 했는데, 혹시 나에 대한 원망은 없었을까?’라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연구소 직원은 ‘저것들한테’ 면담하면서 물어보라고 한다. 마지막 훈련을 막 마친 정이 로봇은 서현이에게 말할 게 있다고 한다. 간절한 어조로 딸의 수술이 잘 되었는지 물어본다. 서현은 그렇다고 답한다. 정이는 오늘 온종일 딸이 무사히 잘 돌아오라는 소원을 빌어서 건네준 작은 인형을 자신이 잃어버려서 마음이 안 좋았다며 고백한다. “우리 딸이 그거 꼭 잃어버리지 말라고 했는데...” 그 말에 서현은 참았던 오열을 터뜨린다. 그러니까 용병 정이가 매번 작전에 실패한 것은, 그 인형이 계속 맴돌며 집중을 흐리게 한 탓이었다. 엄마를 지켜주려고 준 인형이 오히려 엄마를 죽게 했다는 기막힌 아이러니 앞에서 서현은 통곡한다. 오랫동안 가졌던 ‘자신에 대한 원망’ 운운하는 의문은 그 눈물에 씻겨 흘러가 버리고 만다.      



  영화는 따뜻하다. 엄마의 뇌를 가진 로봇은 그냥 로봇일 따름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딸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엄마의 마음을 읽어낸 딸은 로봇을 탈출시킨다. 엄마의 품에 안겨서 얼굴을 비비대던 딸. 세상 전부였던 엄마. 엄마의 전부였던 딸. 


  영화 ‘정이’는 난폭하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먹고 살기 위해 3교대를 뛰면서 용병처럼 살았다. 치열한 삶의 전장으로 나서야 했고, 딸한테 살갑게 작별 인사 한번 나누지 못했다. 늘 바빴고, 바쁘지 않을 때는 무던히도 외로웠다. 뺨을 비비면서 딸과 웃음을 나누지 못했다. 같이 마음껏 웃음을 터뜨리며 장난치던 때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이제 서른 살이 넘은 내 딸은 자신을 두고 전쟁터에 왜 나갔냐고, 자신을 버려둔 게 아니었냐며 화가 잔뜩 나 있다. 아마도 나는 살아생전 딸한테 용서받기 글렀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영화 ‘정이’를 내 딸이 본다면 가뜩이나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일 것이다. 이 따뜻하고 난폭한 영화 ‘정이’를 어쩌면 좋을까. 영화 속 서현을 연기한 강수연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영화를 한창 찍을 당시에 자신이 그렇게 될지 결코 몰랐을 것이다. 내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 그때 내 가련한 딸은 나를 용서해줄까? 엄마 얼굴을 하고 엄마 뇌를 가진 무수한 로봇들이 고통에 못 이긴 비명을 질러도 눈 한번 깜빡하지 않는 서현이 마침내 폭풍 같은 오열을 터뜨리듯이 내 딸도 그렇게 울게 될까? 부디, 그러지 않기를. 제발이지 내가 하늘로 홀가분하게 날아오를 수 있도록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주기를 바란다. 내 간절한 바람과 달리 많이 울고 만다면, 이렇게 다독여줄 것이다. 


  “이 세상 모든 행운이 함께 하길!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 딸아.”             




 호모 룩스(HOMO LUX)는 빛으로서의 인간을 일컫습니다라틴어로 인간이라는 호모(HOMO)’와 빛인 룩스(LUX)’가 결합한 단어입니다


  * ‘호모룩스 이야기는 치유와 결합한 시사와 심리예술과 문화에세이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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