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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a Feb 15. 2023

[또또 이야기 - 1]




                                                                또또               



         

  그는 인적 드문 진천생태공원에 있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푸른 하늘에 안긴 태양이 너그럽게 햇살을 뿌려대던 10월 2일. 푸와 나는 그곳에 갔다. 옥정 호수 쪽으로 가보지 않겠냐는 내 제안에 푸는 한마디로 거절했다. 그러니 그곳에 간 것은 순전히 푸의 뜻이었다. 널찍한 공원에는 두 무리들이 있었다. 한쪽에는 공놀이하는 남자와 두 아이였고, 일미터쯤 떨어진 옆에는 두 남녀가 음료를 마시면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공원 안쪽까지 차를 몰고 와서 시동을 껐다. 사놓고 한 번도 펴지 않았던 자리를 꺼냈다. 기껏 싸간 것이 밤과 포도가 전부여서 그걸 꺼내 놓았다. 그때, 그가 다가왔다. 조심스러운 걸음걸이였지만, 염치 불고하게도 다가온 듯했다. 삶을 밤을 스푼으로 퍼서 놓아두니 냉큼 먹었다. 이번에는 포도를 놓아주니 역시 순식간에 먹었다. 며칠 동안 굶주린 것이 틀림없었다. 실은 그때는 몰랐다.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 잘생겼는지 어떤지 아예 살펴보지도 않았다. 그냥, 배고픈 한 존재가 다가왔고, 지금 당장 충분히 먹을 것이 필요하다는 것 말고는 더 이상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푸도 부지런히 밤을 스푼으로 떠서 건넸다. 우리가 가진 몇 안 되던 먹을거리가 떨어졌다. 느긋하게 가을의 정취를 즐기려던 마음도 달아났다. 오직 그에게만 사로잡혀서 어떻게 해야 할지 궁리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버렸으리라. 누가 그렇게 몹쓸 짓을 했을까. 푸는 아마도 놀이에 열중인 아이의 아버지가 그를 데리고 갈 거라고 했다. 아이들이 그러자고 졸라댈 거라고 했다. 혹시나 여기에 지금 놀러 온 사람이 데리고 온 것이지 않냐는 확률이 전혀 없는 가정도 했다. 푸는 벌떡 일어나서 행동에 옮겼다. 공원에 있는 이들을 찾아다니며 그를 데리고 왔냐고 물었다. 모두 고개를 내저었다. 부지런히 공을 차던 남자는 자신들이 오기 훨씬 전부터 있었던 것 같다고만 답했다.      



  안됐지만, 이제 돌아가자고 푸가 말했다. 그는 아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우리를 보고 있었다. 급기야 자리를 걷으려고 할 때 그는 치명적인 몸짓을 해 보이기까지 했다. 갑자기 땅바닥에 몸을 눕히더니 배를 위로 향하게 드러내고 꼬리를 흔들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애교를 다 부린 것이리라. 우리가 데리고 가면 좋겠다고 하니, 푸는 고개를 저었다. 걷은 자리를 트렁크에 싣고 차에 올라타면서 한 번 더 말했다. 우리가 키우면 좋겠어요. 옥상에다 묶어 키워도 되잖아요? 이번에는 푸가 고개를 젓지 않았다. 삼 초간의 침묵이 흐른 다음, 차에 올라타면 그렇게 하자고 푸가 말했다. 차 뒷문을 열어놓고 그가 올라타기를 기다렸다. 그는 차 가까이까지는 다가왔지만, 차에 오르지 않았다. 몇 번을 타라고 손짓을 해도 소용없었다. 단호하게 푸가 말했다. 그냥 갑시다!     



  어쩔 수 없이 차를 몰고 갔다. 그가 뒤따라 왔다. 푸가 속도를 좀 더 내라고 했다. 또 그가 뒤따라 왔다. 더 속도를 내라고 푸가 말했다. 뒤따라오던 그가 멀찍이 멀어졌다. 그렇게 삼십 분을 가다가 푸가 말했다. 혹시, 내일도 그 자리에 있으면 데리고 옵시다. 그 말에 실소하며 내가 말했다. 내일 올 바에야 지금 한 번 더 가 봐요. 네?     



  그렇게 그곳으로 다시 오게 되었다. 가던 길을 다시 돌아갔으니 한 시간은 족히 걸렸을 것이다. 여전히 그가 그 자리에 있었다. 우리와 헤어졌던 그 자리, 그 장소에서. 마치 우리가 그를 버리기라도 했듯이. 차에서 내리자 그는 반갑게 뛰어와서 꼬리를 흔들었다. 아이와 놀던 남자는 보이지 않고, 다른 쪽에 있던 남녀도 없었다. 새로 보이는 한 팀이 있었지만,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데리고 가요. 네? 그냥 머물게만 하면 드는 돈은 제가 다 낼게요. 이번에도 나는 채근하듯 말했지만 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누가 보면 납치한 것으로 알 거 아뇨? 차 문을 열어두면 올라타는지 봅시다. 올라타면 데리고 가고, 아니면...

  푸는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했다. 내가 그를 안고 뒷좌석에 올라탄 거였다. 얼떨결에 푸는 뒷좌석으로 가서 그와 동석하게 되었다. 나는 차를 몰고 푸의 작업실로 향했다. 심하게 침을 흘린다며, 이렇게 침을 흘리니 주인이 버린 게 아니겠냐며 푸가 말했다. 그러다가 얼마 가지 못하고 차를 멈춰야 했다. 그가 멀미를 심하게 해서였다. 아까 먹었던 얼마 되지 않던 음식 내용물을 차바닥에 고스란히 토해버렸다. 계속 굴곡이 심한 길을 달려야 했고, 그가 또 멀미하지 않을까 해서 마음이 급했다. 다행히도 더 이상 토하지는 않았지만, 엄청난 침을 흘린다며 푸는 계속 투덜댔다.     



  “나이도 많이 들었나 봐. 이빨도 다 빠지고 몇 개 안 남았어요.”

  이빨을 잘 살펴보지 않았던 나로서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몸체를 보나 얼굴을 보나, 중년 정도는 되지 않았나 했다. 장년의 시기를 막 넘긴 나이 정도일 거라고 짐작했다.  



  푸의 작업실에 도착하기 직전, 팻마트에 들어 사료를 샀다. 개 목걸이도 하나 샀는데, 그것 말고 무엇을 더 사야 할지 그때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막상 도착하고 보니 그를 옥상에 둘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오랫동안 청소를 하지 않은데다가 지붕으로 덮여있어서 옥상은 어둡고 더럽다며 푸가 안되겠다고 했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실내 층계참 작은 공간에 그를 두었다. 푸는 정성껏 스티로폼으로 개집을 만들었다. 그때 우리는, 그 집이 하루밖에 가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몰랐다.      



  그런 다음 푸는 푸의 집으로, 나는 내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스티로폼 집 안으로 들어갔을까? 작업실 한 귀퉁이에 그를 두고서 돌아왔다. 사료를 허겁지겁 게눈 감추듯 먹는 그가 계속 눈앞에 아른거렸다. 이제 한 생명을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저녁 내내 그 생각으로 어깨가 무거워졌다. 뭐라고 부를까요? 돌아오면서 내가 묻자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 푸가 말했다.      



  “또또예요. 또또.”        





 * ‘또또이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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