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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a Mar 02. 2023

[호모룩스-4]  '3000년의 기다림' 그리고 타피오

 

     [호모룩스 이야기-4]                                 




                                                ‘3000년의 기다림’ 그리고 타피오                



                

  늦여름 아침 출근길이었다. 해맑은 햇살이 사방에서 통통 튀고 있었다. 부신 눈을 살며시 감으며 오르막길을 올랐다. 던적스러운 내 신발을 훌쩍 벗어 던지고 싶었다. 그때였다. 타피오를 만난 것은! 



  신발은 어이없게도 그녀 앞에 떨어졌다. 눈 덮인 핀란드 숲속, 그녀는 자작나무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녀의 하얀 머리칼이 나무 주위에 너울거렸다. 하얀 드레스 자락도 눈과 하나가 된 채 펼쳐져 있었다. 신발은 그녀의 폭신한 하얀 치마 위에 있었다. 부득이하게도 그녀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일 미터쯤 떨어진 자리(그녀의 치마 길이가 그 정도 되었다)에 엉거주춤 서 있는 나를 바라보더니 그녀는 손을 들어 가까이 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나는 물 위에 뛰노는 햇살처럼 반짝이는 옷자락을 맨발로 밟고는 곁으로 다가갔다. 그러는 동안, 그 불과 몇 초밖에 안 되는 순간, 졸음이 쏟아져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그녀의 무릎 위에 머리를 뉘고는 잠이 들었다. 막 잠에 빠지려는 무렵, 우리는 정식으로 인사를 나눴다. 그녀는 활짝 웃으며 자신이 ‘타피오’라고 했다. 



  얼마나 잠들었을까? 나는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삼천 년쯤은 잔 것만 같았다. 눈을 떠보니, 여전히 나는 경사진 길을 오르고 있었고 직장 건물이 보였다. 십칠 년 전, 그날 타피오를 만난 것은 순 엉터리였던가? 그게 뭐 어땠다는 건지, 별 대수롭지 않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그렇지 않다. 그날, 내가 타피오를 만난 것은 실화다.     



  조지 밀러 감독의 영화 ‘3000년의 기다림’도 이렇게 시작한다. ‘내 이름은 알리테아. 이 이야기는 실화다. 하지만 동화라고 해야 믿을 법한 이야기다.’ 서사학자 알리테아는 컨프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튀르키예의 이스탄불로 간다. 도착하던 즉시 핑크 양가죽 재킷을 입고 사향내가 나는 전설 속 인물을 만난다. 그는 “이스탄불의 미스터리”라고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는 사라진다. 단순한 환영일 뿐이라고 여기던 그녀. 강당에서 그녀는 자신의 견해를 밝히기 시작한다.    


  

  “한때 이야기가 우리의 존재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유일한 수단이었죠. 맞아요. 우리는 불가사의와 재해 뒤에 있는 미지의 힘을 서로 이야기하면서 이름을 붙였죠. 인류는 구체적이고 강력하고 친근한 신들을 모든 문화의 신화 속에서 언급해왔습니다. 제우스, 포세이돈, 아테나, 토르와 그 자손들까지. 신화체계가 있고 과학이란 게 있죠. 과거에 알던 것은 신화였습니다. 지금 아는 것은 과학이라고 하고요. 언제가 되든 인류의 창조 이야기는 과학적 서술로 교체될 겁니다. 공들인 과학으로 인해 모든 신과 괴물들은 존재 이유를 다 하고 은유로 전락하고 말 겁니다.”

  그때, 전설 속 또 다른 인물이 청중 가운데서 괴성을 질렀다. “헛소리!” 영혼을 관통하는 그 소리에 알리테아는 쓰러지고 만다. 



  이후 그녀는 자신을 초청한 이와 함께 들린 기념품 가게에서 불에 그을린 유리병 하나를 발견한다. ‘체슈미 뷜뷜’이라는 이름의 ‘나이팅게일의 눈’이라는 뜻을 가진 병이었다. 1845년쯤 인지르쾨이에 유리장인들이 있었고, 이런 나선형 청백 패턴을 주로 만들었다고 가게 주인이 들려주었다. 자신도 모르는 이끌림으로 그 병을 사 가지고 온 그녀는 놀랄만한 일을 겪게 된다. 우리가 잘 아는 알라딘 램프 속 진(Jinn)이 그곳에서 나온 것이다. 역시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한다. 그녀는 선뜻 소원을 말하지 않는다. 이야기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학자답게 신중하다. 소원 성취형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망측한 욕망만 드러낸다는 사실을 그녀는 잘 알고 있다. 소원 이야기들은 하나도 해피엔딩이 없다며, 그따위에 속지 않겠다고 한다. 소원을 하나도 빌지 않으면 어쩌냐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녀한테 진은 “재앙입니다!”라고 말하며 엄청난 고통을 드러낸다.      


  한편, 진은 입에서 살살 녹을 ‘난에 노코드치’라며 병아리콩, 정향, 피스타치오를 한 상 차려준다. 진의 말이 맞았다. 오랫동안 서사를 연구해왔지만, 이제 과학을 더 믿게 된 알리테아 비니의 마음이 녹기 시작했다.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들려주는 진과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는 알리테아. “제가 갇힌 것은 갈망 때문이지 다른 뭐가 있겠습니까?”라고 자신을 고백하면서 “저는 진짜로 존재합니다. 우리는 함께 할 일이 있죠.”라고 하는 진. 어릴 때, 천식으로 힘들 때마다 항상 곁에서 지지해주던 ‘엔조’라는 남자애가 있었는데 그게 유치하게만 여겨지던 어느 날, 난로에 태워버렸다고 고백하는 알리테아.    


  

  일생 동안 겪었던 굵직한 일들을 털어놓고 난 두 사람. 아니, 한 사람과 한 정령. 그들은 사랑하게 된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짓인가. 알리테아는 수백 년 전, 진이 사랑했던 제피르처럼 한 손으로 글자를 훑어가며 책을 읽는 습관이 있다. 그녀처럼 해박하기도 하고 고집이 세고, 또 그녀처럼 다리를 떠는 습관도 있다. 제피르가 “당신을 만났던 걸 잊어버리면 좋겠어!”라고 홧김에 소원을 말한 것처럼, 알리테아도 하마터면 당신을 “우리가 만나지 않았으면 하고 빌고 싶어지네요.”라고 한다. 그 순간, ‘나이팅게일의 눈’은 가차 없이 깨진다.


  모든 의심과 비웃음과 냉철한 판단과 이성적인 평가들을 내려놓고 사랑의 물결이 들이닥친다. 마침내 알리테아는 이렇게 말한다. “소원이 있어요. 당신을 사랑하게 됐어요. 그러니까 당신도 날 사랑해줬으면 해요. 우리의 고독이 하나가 됐으면 해요. 당신이 시바 여왕에게 느꼈던 갈망, 천재 제피르에게 줬던 그 사랑, 그걸 원해요.”

  알리테아의 깨어난 갈망은 날개를 달았다. 정령과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그녀는 런던의 집으로 진을 데리고 온다. “요즘 세상에 살기 좋은 곳은 아니지만, 당신이 있다면 한결 나을 것 같아요.”라고 하는 그녀. 앙칼지게 싸우던 이웃집 여자들에게도 ‘난에 노코드치’를 선물하면서 진을 소개한다. 적당히 행복하고 홀로 지내던 그녀. 혼자인 것은 선택이었고 지성을 발휘해서 자립적으로 살았기에 거추장스러울 것 없었다. 그게 제대로 된 삶이라고 자신을 합리적으로 설득해왔다. 이제 단단한 마음의 껍질을 벗고 그녀는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나의 정령이 말하길. 정령의 왕국에서 정령들이 모이면 서로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한다. 그들에겐 이야기가 호흡과 같고 이야기가 의미를 만든다고 했다. 나는 인간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야기는 무한하게 변화하는 모자이크의 한 조각이다.”

  그녀는 이렇게 회상한다. 진과 함께 지내던 어느 날, 그녀는 온갖 전자기파와 도시의 소음에 수척해져 가는 진을 떠나보낸다. 그녀는 아껴두었던 소원을 꺼낸다.      



  “사랑은 선물이에요. 대가 없이 주는 선물. 누가 요구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내가 우릴 속였어요. 내가 그 소원을 말하는 순간 소원을 들어줄 능력을 빼앗은 거예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알았어야 했는데. 또 실수할 순 없어요. 나의 정령, 이 세계가 버겁다면 소원컨대 당신이 있을 자리로 돌아가세요. 어디가 되든 간에.”



  진은 돌아가지만, 돌아온다. 가끔씩 그는 그렇게 찾아와서 최대한 오랜 시간을 버티다가 그녀가 그만 가라고 애걸해서야 겨우 갔다가는 다시 찾아왔다. 실은 그녀 곁이 그가 있을 자리이기 때문이다. 진은 그녀가 죽기 전에 돌아오겠다고 했고, 그것으로 알리테아의 마지막 소원은 이뤄졌다. 그녀에겐 그것으로 충분했다. 영화를 이렇게 마친다.      

  세상 구경을 막 하기 시작한 진이 인류가 놀라운 존재라고 하자 알리테아는 이렇게 말한다.



 “공학 기술, 그 대단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여전히 무지해요. 혼란한 감정을 억누르지 못할 땐 불안과 공포로 가득 차 서로에게 등을 돌리죠.” 

  진은 답한다. 



  “그야 인간이니까요. 그건 본성입니다.”      

  알리테아는 심드렁하게 대꾸한다.      



  “그러니까 이야기는 영영 달라지지 않아요. 증오가 승리하죠. 증오는 널리 퍼지고 사랑 보다 오래 가요. 나는 사랑 얘기만 하고 싶은데.” 

  진은 부드럽게 알리테아를 응시하면서 말한다.      



  “인간은 정말이지 모순덩어리군요. 인류는 수수께끼입니다.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면서도 최선을 다해 지능을 발휘하죠, 대단한 이야기입니다. 어디로 흘러갈지 궁금합니다.”     



  그러니, ‘3000년의 기다림’을 담은 내가 쓴 이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갈지 궁금하다. 진이 처음으로 사랑했던 시바가 솔로몬한테 냈던 마지막 문제에 솔로몬이 답했던 것처럼. 여자가, 아니 인간이 가장 갈망하는 것은 무엇인가? 정령은커녕 산타까지, 신까지 믿지 않는 21세기에 이 영화는 ‘이야기의 힘’을 얘기하고 있다. 진은 세헤라자데가 되어 무자비하게 ‘상상’의 목을 베어버리는 샤흐리야르 왕인 알리테아의 영혼을 잠재웠다. 사랑 안에서 다시 태어난 알리테아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영화는 이야기가 가진 치유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그 힘은 우리의 삶을 어루만져주고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준다. 세상 모든 이들의 아름다운 시간을 간직한 햇살이 그 추억을 뿜어내면 윤슬이 된다고 어느 순간 그냥 믿어버린 것처럼. 그 믿음 때문에 바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처럼.      



  숨죽여 있던 우뇌에 찬란한 바람이 불어오는 영화를 보고 난 다음 날이었다. 하얀 머리칼을 휘날리며 찬찬히 숲을 거닐고 있는 티피오를 보았다.  





   


 호모 룩스(HOMO LUX)는 빛으로서의 인간을 일컫습니다라틴어로 인간이라는 호모(HOMO)’와 빛인 룩스(LUX)’가 결합한 단어입니다


  * ‘호모룩스 이야기는 치유와 결합한 시사와 심리예술과 문화에세이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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