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 기억을 먹다 --- 1

by Sia



프로그램 첫날, 라는 제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인생의 첫 기억에 대해 말해보자고 했다. 할 수 있는 가장 처음의 기억. 그게 중요한 이유가 있다. 모든 처음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그것은 감정과 연결되어 마음에 점을 찍게 된다. 누군가에 대한 첫인상도 그렇지만, 나 자신과도 그렇다. 삶에 대한 첫인상은 삶의 자국으로 자리 잡게 된다. 날마다 생각하지 않더라도 그 파장은 크다. 삶의 첫 발자국은 나머지 걸음들을 그쪽으로 향하게 만든다. 일부러 떠올리려고 하지 않더라도 첫 기억은 별안간 찾아온다. 희번덕이며 번개처럼 왔다가 가곤 한다. 그럴 때마다 기억의 흔적은 선명해진다. 한층 더 뚜렷해지는 기억은 삶의 곳곳에 흩뿌려진다.


모든 삶이 그렇듯이, 그 흔적에도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 ‘가능성’은, 당연히 그럴 수도 없지만, 있던 일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있던 일을 새롭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면 햇살에 꼬들꼬들 말린 감말랭이처럼 먹기 좋게 된다. 그렇게 되면 기억을 곱씹을수록 감칠맛이 난다. 긍정의 기억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부정의 기억은 그러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결국 해내야 한다. 첫 기억을 수정하는 게 아니라 첫 기억을 수용하는 것 말이다.


라는 왼쪽으로 눈을 굴리다가 말했다.

-아마도 한 살 때였을 거예요. 오뚝이 장난감이 놓여있는 곳으로 기어갔어요. 엄마는 바로 옆에는 있지 않아도 어딘가 있었어요. 나는 장난감 쪽으로 계속 기어갔어요. 그냥 그랬어요. 그게 다예요. 뭐, 아무렇지도 않아요.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아요. 오뚝이 장난감은 멀리 있고, 나는 안간힘을 다했다, 이 정도.


이 기억은 무엇을 의미할까? 하필이면 왜 이 기억일까? 기억을 말하는 라의 단어들을 주목해야 했다. ‘오뚝이’, ‘엄마’, ‘어딘가 있는’, ‘멀리’, ‘안간힘’. 골백번 넘어져도 일어나는 오뚝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똑같이 일어나는 오뚝이. 그리고 어딘가 있지만 보이지 않는 엄마. 그 오뚝이처럼 안간힘을 다해야 하는 나. 첫 기억은 현재까지 뿌리를 뻗고 있다. 사실, 라의 그다음 말에 더 초점을 맞춰 보았다. ‘뭐, 아무렇지도 않아요’.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 한 살배기 나뿐만 아니라 지금의 나한테도 아무렇지 않다고 둘러대고 있다. 그저 고생할 뿐 아무렇지도 않고, 그저 아플 뿐 아무렇지도 않고, 그저 힘들 뿐 아무렇지도 않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말을 갖다 붙인다고 아무렇지도 않은 게 아니다. 오히려 복잡해지고 모순덩어리가 된다. 이 ‘덩어리’들은 부피를 부풀려 나간다. 이것이야말로 강렬한 억압이다. 끽소리 하지 말고 잠자코 있으라고 자신을 내리누르는 격이다. 나는 라가 말한 것을 그대로 재현했다.


-그러니까, 여기 오뚝이가 있어요. 나는 아직 걷지도 못하는 한 살 아이예요. 오뚝이한테 가까이 가고 싶은데, 오뚝이를 만지고 싶은데 오뚝이는 너무 멀리 있군요. 나는 기어서 오뚝이한테 가고 있어요. 그런데 아무리 기어도 오뚝이한테 다가갈 수가 없어요. 엄마는 보이지 않아요. 어딘가 있는 것 같긴 한데. 혹시 엄마가 바로 옆에 있었더라면 어땠을까요?


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엄마는... 박수를 보냈을 거예요. 잘 기어간다고요. 대신 오뚝이를 일부러 옮겨서 가져다주지 않아요. 그런 게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요. 기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잖아요. 안간힘을 다하는 것도 사실, 나쁜 건 아닌 것 같아요. 엄마가 그랬는데, 사실은 제가 돌 전에 조금씩 걸었대요. 그런데 첫 기억 속의 나는 기어갔어요. 그게 편했나 봐요.


라의 이야기가 풍성해졌다. 가물었던 마음에 촉촉한 비가 내린 것도 같았다. 그 순간, 나는 라의 ‘안간힘’을 라가 말한 방식으로 받아들이자고 나를 설득했다. 억압의 스펙트럼을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이왕이면, 한 걸음 더 나가보면 어떨까. 첫 기억 속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말을 걸어보자고 했다. 라는 이렇게 말했다.


“라야. 힘들었구나. 그렇지만 결국 오뚝이 인형을 잡았네!”

박수를 보내보자고 권유했더니 라가 그렇게 했다. 나도 함께 박수를 보냈다. 한 살배기 아이가 어리둥절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충분히 칭찬해 주자고 했다. 라는 다시 박수를 보내면서 말했다.


“잘했어. 잘하고 있어!”

나도 덩달아 따라 했다. 우리는 “잘했어, 잘하고 있어!”라는 말을 하며 손뼉을 쳤다. 라는 그렇게 자신한테 격려의 에너지를 보냈다. 과거의 자신한테 또, 현재의 자신한테.


내 첫 기억은 세 살 무렵이다. 장롱을 바라보고 앉아있다. 누룽지 한 그릇을 들고 숟가락질을 하고 있다. 얼마나 고소하고 맛나는지 모를 정도다. 세상 전부가 이렇게 맛날 것만 같다. 반질반질한 장롱의 표면에 누군가가 보였다. 내가 비춰 보이는 거였지만, 장난기가 발동했다. 숟가락으로 누룽지를 퍼서 맞은편에 보이는 아이한테 내밀었다. 줄까? 안 주지! 그렇게 혼자 키득거리며 놀고 있었다. 줄까? 안 주지! 결국은 내 입으로 가져가는 누룽지 바나나킥!


이 기억은 상반된 마음이 들게 한다. 세상이 고소하다고 여겼던 어린 시절의 순수. 그리고 살아갈수록 세상은 맛나지 않다는 사실. 고소는 어린 시절의 고소가 아니라 빈정거리는 고소로 변해서 나를 괴롭혀댔다. 게다가 그런 나를 스스로 고소해 삶의 심판대에 세우곤 했다. 내 삶을 꿰뚫는 엄중한 심판관은 나를 치욕의 감옥에 가두었다. 수십 년 동안 나는 발가벗은 채 거리를 헤매는 꿈을 꿨다. 옷을 입어야 하는데, 옷이 없었다. 거리에 많은 이들이 나를 흘낏흘낏 쳐다보며 손가락질했다. 발가벗은 채 버스 뒷좌석에 웅크리고 앉아있기도 했다. 승객들 모두 멸시의 눈초리로 수군거렸다. 집을 향해 뛰어야 하는데 웬일인지 발이 땅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허공을 향해 팔을 허우적댔지만 소용없었다. 잊을만하면 또다시 그런 꿈을 꾸었다. 그 꿈은 도대체가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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