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만남: 마음을 알아차리다 --- 1

by Sia

두 번째 만남: 마음을 알아차리다


일주일 동안 나는 그다지 잘 살지 못했다. 키우는 강아지와 뒷산에 올라갔는데 넘어져서 왼쪽 어깨가 탈골되었다. 극심한 통증이 몰려와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낙엽이 지천인 풍광에 기운이 넘쳐서 폴짝거리다가 당한 일이었다. 꼬박 일주일간 암슬링을 하고 있어야 했다. 불편하지 짝이 없었지만 별 수 없는 노릇이었다. 몸도 그렇지만, 마음도 굴곡진 길을 걸어야 했다. 구순이 넘은 어머니는 기껏 사 온 반찬을 젓가락으로 밀치면서 말했다. 너나 먹어라!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간식을 먹기도 하고, 자리를 자주 이탈하기도 했다. 아무리 타일러도 매한가지였다. 못마땅했지만 자꾸만 지적할 수도 없었다. 그 모든 것을 억지로 참아냈다.


라는 어땠을까? ‘잘 살고 있어!’라고 할만했을까? 삶의 에너지를 내도록 하는 말이지만, 불운이 계속될 때도 이 말을 할 수 있을까? 어깨가 불편하고 어머니는 불평해 대고 학생들은 불손하기만 한데, 잘 살고 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닐까? 그래도 나는 해보기로 했다. 내가 정한 에너지 말은 아니지만, 라를 응원하고 싶어서였다.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 데도 ‘잘 살고 있어!’라고 나를 부추겼다. 머리가 도리질을 치며 거부했지만, 가슴으로 토닥였다. 그렇지만 잘 살고 있어. 잘 살지 않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 잘 살고 있는 걸. 잘 살고 있어. 잘 살아야만 그 말을 하는 게 아니야. 잘 살지 않아도, 이렇게 버텨내기만 해도, 하루하루를 보낸 것만 해도 잘 살고 있는 거야. 납득할 수 없다는 머리를 스스로 쓰다듬어 주기도 했다. 잘 살고 있어. 잘했어.


라는 과제를 해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 말을 잊어버린 게 아니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고 했다. 게다가 그 말을 하는 것이 어렵다고 했다. 사나흘 동안 하지 않다가 겨우 하루에 한 번 할 정도였다고 했다. 지금 한번 해보자고 했다. 라가 말했다.


-잘 살고 있어. 어색해요. 나는 잘 살고 있지 않은데... 그런 것 같지 않는데요.


일주일 동안의 내 얘기를 들려주었다. 일주일 동안 불운한 일들이 이어졌지만, 라의 에너지 말을 하면서 라를 응원하고 있었다고 했다. 라는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지금껏 눈길을 피하던 라가 처음으로 나와 눈을 마주친 것이다. 라는 미안하다고 했다. 이제부터는 과제를 잘하겠다고, 억지로라도 해봐야겠다고 했다. 나는 고맙다고, 기대하겠다고 했다. 라가 과제를 적어왔다며 공책을 내밀었다. 라한테 직접 읽어보라고 했다.

“참 곱고 맑다. 원래 저곳에서 있다가 내려와서 온갖 얼룩이 묻어버렸다. 저렇게 티 없이 맑은 마음으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을 하늘로 보낼 수 있다고 배웠는데 하늘의 기운이 내 마음으로 찾아올 수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곱고 맑은 마음이 되면 좋겠다.”


하늘의 푸른빛을 제대로 담아 온 글이었다. 곱고 맑은 마음이라는 글자에 하늘색 색연필로 동그라미를 그려주었다. 곱고 맑은 마음을 원한다면, 지금 당장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했다. 공책에 이렇게 써보자고 했다.


“나는 곱고 맑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라는 그렇게 쓰기는 했지만, 영 석연치 않은 듯했다. 곱고 맑은 마음은 먼 훗날, 언젠가는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 이 순간 그렇게 할 수 있다. 그게 마음의 놀라운 법칙이다. 물론 그 반대도 가능하다. 나는 어둡고 탁하고 썩어빠진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 그렇게 된다. 마음은 형체가 없기에 마음먹은 대로 흘러간다. 내가 그렇게 여기면, 그대로 이뤄진다. 마음에 힘이 실리는 것이다. 원한다면, 그 소망을 지금 현재, 이 순간에 가지고 누리면 된다. 얼마나 간단한가!


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어색하긴 할 것이다. 그동안 모든 긍정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으므로. 오히려 부정의 그림자가 익숙할 것이다. 그렇지만 언제까지나 익숙한 것에 속아서 살 수는 없다. 색연필 중에서 마음에 드는 색깔을 골라보라고 했다. 라는 분홍색을 선택했다. 방금 쓴 글에 이 색으로 빙 둘러치고 별을 다섯 개 그려보자고 했다. 라는 그렇게 했다. 다시 한번 더 선언하듯 읽어보자고 했다. 라가 소리 내어 읽었다. 세 번을 반복해서 읽어보라고 했다.


-나는 곱고 맑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곱고 맑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곱고 맑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라는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지금 라는 곱고 맑은 마음을 먹은 것이다!

이루마의 ‘Love me’ 음악을 배경으로 다음 시를 낭송하게 했다.



여인숙

잘랄루딘 루미



인간이라는 존재는 여인숙과 같다.

매일 아침 새로운 손님이 도착한다.

기쁨, 절망, 슬픔

그리고 약간의 순간적인 깨달음 등이

기대하지 않았던 방문객처럼 찾아온다.

그 모두를 환영하고 맞아들여라.

설령 그들이 슬픔의 군중이어서

그대의 집을 난폭하게 쓸어가 버리고

가구들을 몽땅 내가더라도.

그렇다 해도 각각의 손님을 존중하라.

그들은 어떤 새로운 기쁨을 주기 위해

그대를 청소하는 것인지도 모르니까.

어두운 생각, 부끄러움, 후회

그들은 문에서 웃으며 맞으라.

그리고 그들은 안으로 초대하라.

누가 들어오든 감사하게 여겨라.

왜냐하면 모든 손님은 저 멀리에서 보낸

안내자들이니까.



라가 시를 잘 느낄 수 있도록 안내했다. 시의 숲 속에서 마음껏 나무 향기, 꽃향기, 풀향기를 맡으며 햇살을 즐겨보라고 했다. 이 시를 쓴 잘랄루딘 루미(1207년~1273년)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란과 튀르키예의 시인이자 이슬람 법학자이자 이맘(성직자)이자 철학자였다.


인간을 여인숙이라고 상상해 보자. 머무르기를 원하는 존재들이 찾아온다. 기쁨과 즐거움만 오면 얼마나 좋겠는가. 현실은 그렇지 않다. 꺼려지는 절망이나 슬픔, 혼란이나 괴로움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렇지만 부정적인 존재가 온 뒤에는 불현듯 깨달음도 찾아온다. 시인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환영하지 말라고 한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그 모두를 환영하고 맞아들이라고 한다. 부정적 존재가 싫어한다고 금세 떠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부정에 부정이 더해져서 더 큰 부정을 낳으면서 부피가 커지게 된다. 시인은 한술 더 떠서 떼거리를 얘기하고 있다. 슬픔 같은 부정들이 무리 지어 온다면 어떻겠는가. 숨 쉴 틈도 없이 부정의 도가니 안으로 빨려 들어가 버릴지도 모른다.


살아오면서 그런 순간들을 숱하게 경험했다. 심리적 고통의 최대치에는 늘 어머니가 있었다. 어머니의 폭력적인 말과 행동들이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아직도 살고 있어? 안 죽었어? 이쯤 되면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하는 거 아냐? 라며 보이지 않는 괴물이 나를 조롱하고 있었다. 괴물은 바로 어머니였다! 나를 이루는 집이 난폭하게 쓸려가는 것, 가구들을 몽땅 내가는 것. 오랫동안 젖었던 익숙한 느낌이다. 나는 자주 망가졌고 허물어졌다. 나라는 존재가 산산조각이 나서 흩어져버리는 기분까지 들었다. 숱하게 자살을 꿈꿔 왔고, 서너 번은 시도까지 해보았다. 손목을 긋거나 바다에 뛰어들었다. 그런데도 부정적인 감정들을 환영하고 맞아들이라니! 그것은 쉽지 않다. 아니, 너무나 어렵다. 실제로 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나를 죽이려 드는 것을 환영하라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나한테 찾아오는 존재가 긍정이든 부정이든 가릴 것 없이 존중해야 하는 이유 말이다. 어떤 새로운 기쁨을 주기 위해 나를 청소하는 것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마치 태풍처럼. 모든 것을 휩쓸어가고 난장판이 되는 듯하지만, 결국 자연이 하는 정화 작용처럼. 상황에 따른 감정, 생각이나 기분들이 끈덕지게 찾아온다. 일테면 어두운 생각, 부끄러움, 후회 등등이다. 그 모든 존재를 웃으면서 맞이하고 기꺼이 안으로 초대하라고 시인은 전한다. 말도 안 되는 짓이지만, 뭐 어떤가. 거부한다고 해서 그 존재들이 도망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더 자주 장기 투숙하게 될 것이다. 사실 나는 여인숙 주인이다. 그 존재는 아무리 두렵고 무섭다고 하더라도 객이다. 나는 슬픔이고, 나는 불안이며, 나는 근심이 아니다. 나는 늘 여인숙 주인으로 존재한다. 아무리 오래 머물러 있다고 해도 객은 객이다. 그러니 나는 고유한 나이지, 그런 부정을 각인할 수 없다. 긍정만을 두고 감사히 여기고 부정은 싫어하기 일쑤이지만, 시인은 그러지 말라고 한다. 그 어떠한 존재가 오더라도 웃으며 안으로 초대하고 감사히 여기라고 한다. 모든 손님을 도대체 누가, 저 멀리에서 보냈을까? 그 손님이 ‘안내자’라고 하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무엇을 안내하는 것일까?


-그건, 신인 것 같아요.

라가 말했다.


-마음이 자라나는 것을 안내해주는 것 같은데요. 고통이 지나가면 성장한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것 같아요. 시의 느낌은 뭐랄까. 갇혀있는 공간을 뚫고 나오는 것 같아요. 그동안 저는 우울과 하나라고 여겨왔어요. 나는 우울이고 우울은 나이고요. 그런데 이 시를 읽고 나니 나는 우울이 아니고, 우울은 왔다가 가는 손님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우울과 나를 분리할 수 있다니, 참 신기해요.


그건 당연한 사실이다. 라는 우울한 채 태어나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부정 덩어리가 된 채로 이 세상에 오지 않았다. 이건, 육체나 기질, 유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을 이루는 비물질적인 정신이나 마음의 상태를 의미한다. 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울을 다스리는 방법을 배운 것 같아요. 그동안 우울한 상태가 되면 지긋지긋해서 견딜 수 없었거든요. 내가 죽어야 끝나겠구나! 이 생각밖에 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우울이 다가와도 웃으면서 맞이하라니, 한 번도 생각조차 해보지 않던 것을 이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울한테 감사도 하고요. 제가 성장하도록 신이 보내셨으니까요. 종교요? 한때 교회를 다녔는데 지금은 안 가요. 그렇지만 신이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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