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만남: 축복처럼
과제를 잘하지 못했다고 라가 말했다. “잘 살고 있어!”라는 말이 어쩌면 그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고 했다. 하루 정도는 시늉은 냈다고 했다. 아침은 놓치고 점심때 겨우 한번 했다는 거였다. 그날 저녁에 어머니의 ‘발작’을 마주했고, 모든 것은 어둠으로 가려졌다고 했다. ‘발작’은 욕설과 고함인데, 시도 때도 없이 갑자기 나타난다고 했다.
그 ‘발작’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그게 얼마나 느닷없는지, 얼마나 마음을 후벼 파는지, 만신창이로 만들어버리는지 처절할 정도로 알고 있다. 어머니는 잘 우셨다. 이제는 너도 알 때가 되었다. 내가 말이다. 결혼을 두 번 했다. 처음 결혼해서 네 오빠 둘과 언니를 낳았다. 그런데 남편이 바람을 피우더니 나를 쫓아냈다. 옷 보따리 하나 달랑 들고 자식들도 다 놔두고 집을 나와야 했단 말이다. 처음에는 이혼을 안 해주려고 했는데 그놈이 외갓집으로 찾아갔던 거야. 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마구 때렸다. 이혼 안 해 준다고. 그래서 그 당시 신문에도 기사가 날 정도였다. 그게 지긋지긋해서 내가 이혼을 해줬다. 그리고 나중에 네 아빠를 만나서 너희들을 낳은 거다.
어머니 얘기를 처음 들은 것은 열 살 때였다. 그 묵직한 이야기를 듣기에는 나는 아직 어렸다. 그런데도 귀에 쏙 들어왔다. 그 말을 털어놓으면서 입에 허연 거품까지 내던 어머니. 농도 짙은 눈물을 흘리던 어머니를 잊을 수 없다. 어머니의 울분은 곳곳에서 삶의 솔기를 뜯고 튀어나오곤 했다. 아버지가 출근하고 나면 끊임없이 아버지 욕을 해댔다. 온갖 욕설을 내뱉으며 빨래하고 설거지도 했다. 특히 청소할 때 어머니는 사납기 그지없었다. 방을 닦고 또 닦으면서 욕을 해댔다. 언니와 나는 날마다 두들겨 맞았다. 머리채를 잡힌 채 몇 시간이고 욕을 하는 어머니 앞에서 졸기도 했다. 그러면 어디서 함부로 졸고 있냐며 뺨을 맞기도 했다. 추운 겨울, 문밖으로 쫓겨나가기도 했다. 온몸에 멍이 드는 것은 예사였다. 그렇게 실컷 두들겨 패고 나서 분노가 꺼지면, 멍든 자리에 안티푸라민을 발라주기도 했다. 뭐가 맞는 것인지, 어떤 모습이 정말 어머니인지 헷갈렸다. 너무나 오랫동안 어머니는 ‘발작’을 해왔다. 파리채나 몽둥이로 때로는 손바닥으로 닥치는 대로 때렸다. 12살 때 친구 집에 놀러 가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친구 어머니는 상냥했고, 고함이나 욕설을 내뱉지도 않았다. 고요하고 정갈한 집 분위기가 너무나 부러웠다. 세상에, 이렇게 조용하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살 수가 있구나! 하도 고함을 듣고 살다 보니, 모든 집이 그런 줄로만 알았던 거였다. 그 친구 집을 다녀온 다음에 우리 집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날마다 고함과 욕 소리가 나는 집이 정상일 리가 없었다. 그걸 그때 처음 깨달았다.
‘발작’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한번 시작했다 하면, 두세 시간은 기본이었다. 어머니의 발작이 그쳤다고 해도 그게 다가 아니었다. 한번 그런 모진 욕을 듣고 나면 계속 그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대로 내 머릿속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그 어떤 일을 해도 욕이 따라다녔다. 폭우를 맞고 어둠 속에서 쏘다닌 것 같은 꼬락서니였다. 햇빛이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드물었다. 어머니가 퍼부은 익숙하고 저속한 욕은 나를 함부로 땅바닥에 메다꽂았다. 나는 하수도에 머무는 잿빛 시궁창 쥐가 되고 말았다. 어머니의 욕과 고함과 화와 짜증이 고여있던 내 머릿속은 느닷없이 터지곤 했다. 욕이 메아리가 되어 자꾸만 울려 퍼지곤 했다. 마음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아주 오랫동안 어머니의 발작은 나 때문이라는 생각에 시달려야 했다. 화냥년아, 미친년아, 지랄하네, 돌은 년아, 잡년아... 우리 가족은 점점 미쳐 가고 있었다. 어머니와 덩달아서 같이 미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라는 잘 살 수 있는 가능성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잘 살고 있지도 않고, 잘 살 수도 없다는 거였다. 그런데 ‘잘 살고 있다’는 말이 가당키나 하냐고 따졌다. 애초에 그 말을 ‘에너지 말’로 정한 것은 라였지만, 라는 화가 단단히 난 듯했다. 어머니한테, 어머니를 그렇게 만든 상황한테, 이 세상한테, 모든 부정을 그대로 바라보고 있는 무능하기 짝이 없는 신한테! 그리고 자신한테! 심지어 치료사한테까지. 화가 난 라는 차라리 모든 것을 포기해버리고 싶기도 하다고 했다. 오늘도 오기 싫은 몸을 간신히 움직여서 온 거라고도 했다. 라는 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자꾸 과제 따위를 챙기지 말라고! 나, 여차하면 이제부터 안 올 거야!
시궁창 쥐한테 잘 살고 있다고 하면, 쥐는 코웃음을 칠 것이다. 뭐라고? 지금 나를 놀리는 거야? 비웃는 거야? 미치고 팔딱 뛰겠네! 이제는 아니지만, 과거의 어느 순간에는 분명 존재했던 그 쥐를 떠올리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예전에는 쥐가 결단코 사라질 리가 없었지만, 지금은 꼼짝없이 쫓겨나갈 뿐이다. 나는 지금은 아무런 힘이 없는, 조금 세게 후~ 하고 불면 날아갈 게 뻔한 케케묵은 쥐의 불평을 들었다. 라한테 처음, 에너지 말을 정했을 때로 돌아가자고 했다. 이 말을 들을 수 있으려면 어떤 조건 같은 것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럼요. 정말 잘 살아야 들을만한 거죠.
잘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 라는 부정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거라고 했다. 발작에 말려들어서 덩달아 발작하지 않을 수 있는 거였다. 가까운 이, 특히 가족이 휘두른 칼에 다치지 않을 재간이 없다. 그렇지만 내가 ‘잘 살 수 있다면’, 휘두르는 칼의 반경을 벗어날 수 있다. 아니, 칼한테 벗어나야만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모든 초점이 어머니한테 맞춰져 있는 셈이다. 그러니 잘 살 수 있을 가능성은 사실 없다. 정말이지 아예 없다. 어머니한테 휩쓸리지 않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건 철저하게 어머니한테 속해버린 삶이다. 속속들이 어머니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 ‘네가 나를 벗어난다고? 아직 멀었다. 너는 결코 나를 벗어날 수 없어!’ 이런 환영을 경험하면서 어떻게 잘 살 수 있겠는가. 어둠을 없애는 가장 쉬운 방법은 어둠을 발로 차고 때리는 것이 아니다. 불을 켜면 어둠이 물러간다. 그러니, 잘 산다는 것은 마음의 불을 켜는 것이다. 그러면 어머니가 휘두르는 칼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삶이 빛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마음에 불을 켤 수 있을까? ‘잘 살고 있다’는 말은 어떤가? 라의 생각에 의하자면, 그 말은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을 담보로 하고 있다. 잘 살아야지 그 말을 들을 자격이 있다. 그 말을 온전히 수용하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산이 너무 많다. 게다가 오랫동안 ‘발작’의 영향권에 있었기에 잘 되지도 않는다. 그 말은 끈덕지고 끈질긴 강압을 강요한다. 마음이 건강해진 이후라면 좀 다르다. 이 말에 딴지를 걸지 않을 것이다. 별 거부반응 없이 이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라의 높이에서 생각해봐야 한다. 라한테는 잘 살고 싶은 갈망은 있지만, 삶 속에서 그게 잘 이뤄지지 않는다. 그런 자신과 세상을 탓하고만 싶어만 진다.
잘 살고 있지 않아도 말해줄 필요가 있다. 신의 눈에서 보면, 우리는 누구나 어린 아이다. 아무리 나이를 먹었더라도 아이다. 사랑의 빛인 신은 이렇게 말해줄 것이다. ‘괜찮아’. 잘하지 않아도 잘한 것 없어도 괜찮아. 혼동 가운데 헤어 나오지 못하고 원망과 앙금들이 가득하더라도 괜찮아. 실수투성이이고 제대로 해낸 것이 없더라도 괜찮아.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라니? 또 다른 강압이 아닐까? ‘괜찮아’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신호다. 뭔가를 잘해야 한다는 조건을 걸지 않고 수용한다는 표현이다. 존재 자체로 소중하고 귀하다는 사랑이다.
과거는 어떠했던가. 회한이 가득 차서 할 말도 없게 만든다. 그렇게 하지 않았어야 했는데, 저질렀던 잘못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렇지만 신은 또 말한다. 이렇게 안 죽고 살아있어서 기특하다고. 과거의 잘못을 거름 삼아 자라나고 있어서 기쁘다고. 그래서 말하고 있다. ‘잘했어!’라고. 잘하지 못했는데, 잘한 것이 없는데 잘했다고 하는 것, 이 역시 횡포는 아닐까? 신은 그저 너그럽게 속삭인다. 모든 잘못들이 어우러져서 지금의 자신이 있게 되었다고. 그러니, 지나온 내 과거한테 오로지 말할 뿐이다. 잘했다고.
미래는 어떠할까? 감히 짐작할 수도 없다. 암담하고 처참하다. 중요한 것은 살아있다는 것이다. 삶을 섭리에 맡기면서 조금 더 나은 나를 꿈꿀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해주자. ‘잘할 거야.’라고. ‘잘 될 거야’가 아니다. 수동적으로 받아먹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다. 하늘이 나에게 다가오기를 가만히 서서 기다리는 내가 아니다. 내가 하늘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가슴을 활짝 열고 우주의 기운을 받아들이며 주문처럼 부르는 것이다. 잘할 거야!
이 세 가지 말은 내가 나를 안아주는 말이다. 동시에 신이, 우주의 에너지가 나를 포옹해 주는 말이다. 그런 느낌을 상상하며 말해보자. 현재, 과거, 미래 순서로. 괜찮아. 잘했어. 잘할 거야. 이번에는 동작까지 하면서 말해보자. 팔을 엇갈리게 해서 가슴께에 갖다 댄 채 나를 토닥토닥해 보자. 눈을 감고 토닥토닥하면서 말하자.
괜찮아, 잘했어, 잘할 거야.